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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조선왕조 건강실록] 아들 사도세자 미워한 영조…이유는 '뚱뚱해서'

■고대원 외 8인 지음, 트로이목마 펴냄

베일 속 구중심처 '건강史' 맥을 짚다

왕실의 일상 기록한 '승정원 일기'

한의학 전공자 9명 샅샅이 뒤져

사도의 과한 '식탐' 타박한 영조

명성황후 아들 사망사건 전모 등

흥미로운 '건강 미시사' 엮어





모든 역사는 불완전하다. 역사가가 과거 사실을 기록할 때 자신의 관점을 투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아무리 ‘절대 중립’의 시각을 보유한 역사가라 해도 세상만사를 낱낱이 적을 수는 없다. 모든 사극(史劇)은 이 취사선택의 과정에서 누락된 ‘퍼즐’을 상상력으로 메우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 건강실록’은 한의학 교수, 한의사 등 한의학 전공자 9명이 함께 쓴 책이다. 오늘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쯤 되는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기록한 ‘승정원 일기’는 분량이 ‘조선왕조실록’의 다섯 배나 된다. 하지만 웹사이트에 한글 번역본이 올라와 있는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승정원 일기’는 한문 그대로 게재된 탓에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저자들은 이 ‘승정원 일기’를 샅샅이 해독한 뒤 곳곳에 흩어진 퍼즐들을 불러모아 어느새 사실로 굳어진 잘못된 상상력을 바로 잡는가 하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역사를 새롭게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저자들의 전문 분야인 한의학 지식도 총동원된다.

먼저 명성황후 아들 사망 사건의 진실. 명성황후는 왕비임에도 결혼 후 수년간 남편인 고종과 합방조차 하지 못했다. 고종이 왕비보다 후궁을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후궁이 아들을 낳자 위기감이 극에 달한 명성황후는 폭넓은 독서와 타고난 총명함을 무기 삼아 고종에게 정치적 반려자로 다가서기 시작한다. 이 전략이 통했는지 고종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한 명성황후는 결혼 5년 만에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이 귀한 왕자는 태어난 지 5일 만에 허무하게 죽고 만다.

실록이 왕자의 죽음이라는 사실 자체만 짧게 기록하고 있는 탓에 일각에서는 명성황후와 그의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불편한 관계를 근거로 삼아 ‘대원군이 손자를 죽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원군이 보내온 산삼을 먹고 항문이 막혀 죽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책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명성황후의 초상화로 추정되는 그림. /사진제공=다보성갤러리


태아의 항문 형성은 대략 임신 8주차에 이뤄지는데 명성황후의 출산을 기점으로 역산해 보면 이 시기에 나라의 안위를 위협한 신미양요(辛未洋擾)가 발생했다. 책은 “신미양요로 놀란 황후의 마음에 가해진 충격이 아들의 항문 폐쇄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에 얽힌 뒷얘기도 흥미롭다. 영조가 어릴 적 총명함을 읽고 활쏘기와 무예에 빠진 세자를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세자의 과한 식탐(食貪)에 영조가 혀를 끌끌 찼다는 에피소드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놀랍게도 ‘승정원 일기’ 곳곳에는 이와 관련한 일화가 줄을 잇는다. 세자 나이 아홉 살이던 영조 19년 “세자가 숨을 쉴 때 들리는 소리가 마치 바람 소리 같더라”고 답답해하던 영조는 이듬해에는 “식사량이 너무 많고 식탐을 억제하지 못해 뚱뚱함이 심해지고 배가 나와 열 살의 아이 같지 않다”고 타박한다.

이 외에도 책은 우리가 권력 투쟁의 짜릿함에 골몰하느라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건강 미시사(微視史)’를 차곡차곡 쌓으며 제목에 걸맞은 이름값을 해낸다. 현종과 숙종이 온양(오늘날의 충남 아산)에서 온천욕을 즐기며 건강을 챙겼다는 일화, 왕실 가족들이 꿀과 약재를 물에 끓여 미용 크림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 한 토막 등은 특히 독자의 이목을 끌어당긴다.

책갈피마다 유머와 해학이 넘치지만 공인된 역사 기록과 전문 지식을 바탕에 깔고 있어 믿음이 간다. 다소 자극적인 겉면의 홍보 카피만 보고 ‘심심풀이 야사 수준의 책은 아닐까’ 하고 지레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전문 저술인이 아닌 한의학 전공자들임에도 문장이 깔끔하고 단정해 읽는 데 거슬림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1만6,0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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