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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와 함께 서울을 걷~자] 인왕산 한양도성길

인왕산 등반객이 산 정상에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다. 바로 아래가 서촌이고 중간쯤이 경복궁이다. 오른쪽에 남산도 보인다.




21세기 순성(巡城)놀이의 부활. 서울경제신문과 종로구가 공동주최해 21일 인왕산 한양도성길에서 진행되는 ‘달팽이 마라톤’ 걷기대회의 모토다.

인왕산구간은 한양도성길 뿐만 아니라 서울 전체에서 최고의 조망을 자랑한다. 내사산(內四山·한양도성 성곽이 지나가는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 등 4개의 산)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외사산(外四山)인 북한산과 아차산, 관악산 등도 시야에 있다. 특히 인왕산의 단풍이 절경이다. 바위산과 어우러진 단풍은 그 자체로 수채화다.

남산에서 바라본 인왕산(왼쪽)과 북악산 모습. 인왕산이 훨씬 잘 생겼다.


내사산 가운데 인왕산이 가장 빼어나다. 조선 개국 후 도성 조성 논쟁에서 인왕산은 유력한 주산(主山) 후보였다. 바로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의 논리였다. 하지만 ‘군왕은 남면’(남쪽을 보고 앉아 정치를 해야 한다)이라는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의 북악산 주산론에 밀린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그 앞에 궁궐을 두면 그 궁궐은 동향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였다. 하지만 산 자체만을 놓고 보면 인왕산이 북악산보다 훨씬 낫다. 아래에서 인왕산을 올려다보나, 인왕산 정상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나 모두 그렇다.

달팽이 마라톤이 출발하는 사직단의 모습.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달팽이 마라톤은 21일 오전 8시 사직단(社稷壇)에서 출발한다. 사직단은 지금은 다소 평범해졌지만 전통시대 한양(서울),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 중에 하나였다. 새로 나라를 세운 조선왕조는 1395년 수도인 한양에 경복궁·종묘와 함께 사직단을 건립한다.

사직은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을 아우르는 말이다. 사단을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나란히 배치했다. 사직단이 네모인 것은 제사 대상이 땅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해서 동그라미는 하늘을, 네모는 땅을 표시한다. 따라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 지내는 단은 네모나게 쌓았다.

사직단의 수난은 일제강점기 때 시작됐다. 일제는 사직단 주위를 훼손하고 공원으로 삼았다. 지금까지 ‘사직공원’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해방 이후에도 주위에 갖가지 시설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쪼그라졌다. 사직단을 나서 10여분 걸어가 종로문화체육센터를 지나면 곧바로 한양도성길로 접어든다.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의 초엽이다. 여유있게 걸을 수 있다.


아직은 인왕산 구간 초엽으로 다소 완만하다. 도성 성곽들의 여장들이 어깨높이에 걸쳐있다. 한양도성길 인왕산코스를 워밍업해 볼 수 있는 위치다. 얼마전까지 만발했던 길가의 코스모스가 지고 숲속에는 단풍이 물들고 있다.

한양도성길 인왕산 구간이 가파라지고 있다. 성곽의 안쪽, 바깥쪽 모두 오를 수 있다.


다시 10분정도 올라가 초소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인왕산을 등반한다. 성곽은 최근에 보수돼 깔끔하다. 성밖 숲속으로 성벽을 따라 올라갈 수 있는데 원초적인 한양도성 돌들을 가까이서 느끼고 싶다면 추천한다. 이번 달팽이 마라톤에서는 안쪽으로 순성(巡城)한다.

산을 오르면서 서울시내는 점점 넓어진다. 남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서쪽으로는 여의도가 눈에 들어온다. 숨이 가빠지겠지만 눈은 호강한다. 왼쪽으로 성곽을 끼고 오른쪽으로 단풍 숲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한양도성 밖으로 가까이 선바위가 있다. 장삼을 입은 스님 모양으로 많이 해석된다.


여기서 빼놓으면 아쉬운 것이 선바위다. 인왕산 능선으로 난 도성 길을 오르다 보면 성곽 밖으로 기괴한 바위가 보인다. 모습은 장삼을 입은 스님이다. 그래서 불교풍으로 ‘선바위(禪巖)’라고 부른다.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여기서 천일기도를 수행했다고 한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 무학대사와 정도전이 선바위 위치로 논쟁한 것이 유명하다. 무학대사는 이 선바위를 도성 안에, 반대로 정도전은 밖에 두려 했다. 불교에 대한 입장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의 결단으로 성곽은 선바위 안쪽으로 건설됐고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 무학대사는 “이제 중들은 선비 책 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이른바 ‘숭유억불(崇儒抑佛)’ 체제다. 지금도 선바위 주위에서는 불교가 무속과 결합한 기원행위를 많이 볼 수 있다.

정상에서 범바위 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중간쯤에 있는 것이 범바위다. 옆에 성곽이 오른쪽으로 삐죽히 튀어나와 있는 것이 ‘곡성’이다.


인왕산구간에서 첫 고비는 범바위를 오르면서다. 완만했던 경사가 점점 가파라지더니 범바위에서는 수직에 가깝게 오른다. 옆에 로프가 묶여있어 잡고 오르면 위험하거나 힘들지는 않다.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게 된다.

인왕산이 힘들지 않은 것은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경치 때문이다. 범바위 바로 위가 그런 곳이다. 왼쪽으로는 북악산, 오른쪽으로 남산, 멀리 낙산이라는 내사산(內四山)에 안겨있는 서울 도심이 한눈에 보인다. 바로 밑은 서촌이고 그 옆이 경복궁이다. 경복궁 앞으로는 고층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인왕산에서 보면 정도전이 경복궁을 그 자리에 놓은 이유를 알 수 있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 봐도 경복궁 자리는 서울에서 최고의 위치다.



아래를 자세히 보면 한양도성 안이 고도규제로 묶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도심에는 63빌딩이나 롯데월드타워같은 초고층 건물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내사산의 경관을 보호하기로 했다. 그중에서 가장 낮은 낙산(해발 124m)보다 높게 지을 수 없도록 했다. 광화문광장의 표고가 해발 33m니 여기에 더해 모든 건물들에는 90m의 고도제한이 적용된다. 건물주들은 불만이겠지만 그나마 서울 도심의 경관이 지금처럼 남아있는 이유다.

바위 위에는 성곽이 없다. 바위가 천연 장벽이 된 것이 인왕산의 특징이다.


한양도성 인왕산구간을 지나다 보면 성곽이 바위로 들어가는 곳이 여러 곳 있다. 특별한 기능은 아니다. 바위산이기 때문에 바위 자체로 방어 기능이 작동해 그 부분에는 성곽을 쌓지 않은 것 뿐이다. 마치 바위가 돌 성곽을 먹는 듯한 것은 순전히 기분 탓인가.

인왕산 정상 아래에 있는 치마바위의 모습. 일제강점기때 새겨진 글씨의 흔적이 다소 너저분하다.


인왕산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는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로 ‘치마바위’라고 부른다. 이 치마바위에는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있는데 이렇다.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의 전처 단경왕후 신씨가 자신의 연분홍 치마를 펼쳐놓았다는 곳이다. 중종은 앞서 신수근의 딸과 혼인했는데 연산군의 심복이었던 그는 반정 과정에서 역적으로 처단된다. 역적의 딸이라는 이유로 신씨도 쫓겨났다.

단경왕후 신씨가 중종이 자신을 생각하도록 바위에 치마를 걸어놓았다는 이야기다. 정말 경복궁에서 바로 바라다보인다. 이런 애틋함은 일제시대에 변질됐다. 중일전쟁 이후 전시동원체제를 강화하던 일제는 1939년 서울에서 이른바 ‘대일본청년단회의’를 열고 이를 기념한다며 치마바위에 글씨를 새겼다. 오른쪽 ‘동아청년단결’로부터 시작하는 100여 글자다. 해방 후 글자를 쪼아냈는데 흔적이 너저분하게 남아 있다.

한양도성 성곽이 인왕산 북쪽 능선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맞은 편에 보이는 것이 북악산이고 성곽은 계속된다.


인왕산 등반객이 멀리 북한산 쪽을 바라보고 있다. 가까이 있는 바위는 ‘기차바위’로 불린다.


정상인 치마바위를 지나면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성곽이 이어지는 맞은편 북악산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내리면 된다. 왼쪽으로 저 멀리 북한산 봉우리들도 보인다. 달팽이 마라톤 도착지인 청운공원 다목적운동장은 한달음이다.

조선 시대 성곽이 지어진 시기에 따라 돌들의 모양이 다르다. 왼쪽은 태조와 세종때, 오른쪽은 숙종때의 성곽이다.


한양도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유산이다. 조선초인 14세기 말에 세워지기 시작해 지속적인 보수를 거쳤다. 성곽에 대해 약간의 안목만 가지고 있어도 ‘이것은 태조때 만든 성벽’ ‘저것은 세종·숙종 때 돌’ 등을 이해할 수 있다.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인 셈이다.

청운문학도서관의 전경이다. 종로구 최초의 한옥도서관으로 가족들이 나들이하기 좋다.


3㎞ 거리의 짧은 걷기대회가 아쉬운 사람은 인근 청운문학도서관을 찾으면 좋겠다. 2014년 개관한 종로구 최초의 한옥도서관으로, 건물 모양부터 예쁘고 내부 시설도 아기자기해 가족과 함께 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조금 걸어나가면 윤동주문학관도 있으니 만나볼 만 하다.

덧붙여 순성놀이는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일종의 트레킹을 말한다. 원래 ‘순성(巡城)’이란 성곽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순찰이었지만 나중에 ‘놀이’로 바뀌었다. 성곽을 관리하기 위해 성곽 안팎으로 길을 내고 주위를 자연그대로 남겨뒀는데 이것이 트레킹 코스가 된 것이다.

원래 한양도성의 길이는 18.627㎞로 10시간 정도면 전체를 돌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적지 않은 구간이 도심개발로 훼손돼 옛날 분위기는 잘 안 난다. 그나마 원형을 보존한 것이 인왕산구간이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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