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송포유 <1> 가을을 닮은 선율 'Sentimental walk'

우연과 인연이 얽힌 영화 '러브 어페어'

스크린의 감동 더해주는 모리코네의 저력

1




두 달 넘도록 이슥한 동네를 서성대고 있다. ‘그러다 훅 간다’는 의사의 경고를 접한 뒤로 산책이 ‘강요된 일상’이 됐다. 별다른 약속이 없다면(그런 날이 대부분이지만) 어김없이 집 앞 공원길을 돈다.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던 형광색 아파트 표지도 제법 익숙해졌다.

청승맞은 야행에 음악을 빠트릴 수 없다. 내 경우엔 걷기에 적당한 음악을 일부러 선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트와 걸음의 엇박이 만들어내는 생경함을 즐기는 편이다.

러닝타임을 계산해 즐겨 듣는 곡들을 핸드폰 안에 담아뒀다. 고이 모셔둔 닥터드레 헤드폰이 자꾸 눈에 밟히지만 이 나이에 할 짓은 아니다.

러브어페어


가을이 농익어가는 요즈음 플레이리스트 1번은 어김없이 ‘Sentimental walk‘(적당한 해석이 떠오르지 않는다).

1994년에 만들어진 영화 ‘러브 어페어’의 삽입곡이다. 영화음악에서는 전설의 반열에 오른 엔니오 모리코네 작품이니 미처 접하지 못한 이들도 그 파괴력을 짐작하고 남으리라.

왠지 멜로디가 귀에 익다면 한석규와 황수정이 앙상블을 이룬 오래전 커피광고 탓 일 수 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작은 섬.

낡은 피아노 앞에 앉은 숙모는 부드럽게 건반을 누르기 시작한다. 노을 탓인지 조명 탓인지, 온통 파스텔톤으로 물든 거실 가득히 건조하지만 따뜻한 소리가 퍼져나간다. 여주인공 아네트 베닝의 나지막한 허밍이 이내 뒤따라오고...

느닷없는 사랑의 열병에 혼란스러워하던 남녀 주인공은 느닷없이 찾은 이국의 땅에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뻔하다 못해 맥 빠지는 내러이티브지만 로맨틱 영화는 항상 가슴속 어딘가 쯤을 두드리는 마력이 있다.



리즈 시절의 캐서린 헵번


사실 3분이 채 안되는 이 곡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사랑의 불시착에 들뜬 남녀 주인공이 아니라 숙모 때문이다.

오스카여우주연상을 4차례나 수상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여배우 캐서린 헵번.

당시 86세의 그녀는 제작자와 남자 주인공을 겸한 워렌 비티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출연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가 그녀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하니 우연치고는 쓸쓸하고 절묘하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선율, 막 시작된 사랑, 노배우의 마지막...

공간도 사람도 음악도 운명처럼 얽힌 시퀀스다.

영화를 찾아보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007 아저씨’ 피어스 브로스넌의 청춘시절을 확인하는 수확을 거둘 수 있다.

/박문홍기자 ppmmhh68@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