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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칼럼] 디지털 노마드시대의 고용정책

모바일이 일상화된 ‘긱 경제’

적응 관건은 유연한 고용 시스템

정규직 위주 경직된 정책 고집땐

4차 산업혁명서 성공하기 힘들어





지난 1920년대 미국의 남부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18세기부터 노예로 정착한 흑인들은 물론이고 스페인·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에서 온 이주민들이 뒤섞이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적 교류가 이뤄졌다. 여기서 흑인들의 애환을 담은 음악과 유럽풍의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재즈다. 뉴올리언스는 항구도시인 관계로 항시 사람들로 북적였고 공연수요도 많았다. 문제는 그 수요가 일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이 때문에 재즈 연주자들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모여서 단기 공연팀을 만들어야 했다. 이들을 ‘긱(gig)’이라 불렀다. 긱은 훗날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단어가 됐다.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은 뒤 일을 처리하는 형태를 일컫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긱 이코노미가 주목을 받는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모바일이나 온라인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즉시 제공하는 주문형(on demand) 경제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고용방식의 변화다. 디지털 경제에서 1인 자영업자인 근로자들은 한 기업에 얽매이지 않고 단기 계약을 맺고 자유롭게 일을 한다. 기업도 근로자들을 풀타임으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긴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이상 이어져 온 고용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긱 경제의 대표적인 현상이 우버다. 우버는 택시기사들을 고용하지 않고 단지 플랫폼만 제공한다. 이 플랫폼을 통해 독립 계약자들이 고객과 거래를 하는 것이다. 에어비앤비도 마찬가지다. 집에 방이 남아도는 개인들은 에어비앤비의 플랫폼에 자신의 방을 홍보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구한다. 아마존도 빠른 배송과 비용 절감을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차량을 소유한 일반인을 배송요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배송요원으로 계약된 운전자들은 시간당 18~25달러를 받으며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긱 이코노미가 전문 컨설팅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영국 내 컨설턴트 가운데 31%가 특정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글로벌 노동시장에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 정책만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어디에도 급변하는 고용형태를 반영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구실 아래 노동 경직성을 부채질하는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20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19.5% 수준인 공공 부문 비정규직 비중을 오는 2022년 9.1%까지 줄인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이 같은 정책을 공공기관뿐만 민간기업에까지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할 방침이다. 이는 민간기업에 정규직 채용을 사실상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성과가 떨어지는 근로자라 할지라도 기업들이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고용형태는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길이라고 해서 가지 않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와 고용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는 고정된 형태의 일자리보다는 유연한 고용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외국의 기업들은 일감의 양에 따라 수시로 외부 인력을 배치했다가 일이 끝나면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결국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성공적인 적응의 관건은 고용방식에 달려 있는 셈이다. 이제 유연한 고용 시스템 없이는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근로자 처우 개선을 이유로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는 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경쟁력만 떨어뜨릴 뿐이다. 정부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정규직화를 고집할 게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일자리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는 4차 산업혁명도 소득주도성장도 성공할 수 없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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