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관련 직업훈련학원을 10여년간 운영해온 김모씨는 최근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김씨는 “지난 9월에 정부 인증평가에서 떨어져 수강생 모집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직업훈련학원 수강료를 국가가 전액 지원해주다 보니 정부 인증에서 떨어진 훈련기관 10중 8곳은 문을 닫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청년실업을 극복할 핵심 견인차인 직업훈련기관이 줄이어 문을 닫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직업훈련기관이 난립하면서 정부 인증을 받지 못해 수강료를 지원받지 못하면 자체적으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 인증 획득 여부에 직업훈련기관의 생사가 오락가락하다 보니 교육 서비스의 질도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민간 직업훈련기관은 2014년 8,222개에서 2015년 7,730개, 2016년 6,800개로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2014년과 비교하면 2년 사이에 1,422개의 직업훈련기관이 사라진 셈이다.
정부의 교육비 지원 속도에 비해 교육 업체가 훨씬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가 학원비를 보조하는 내일배움카드 정책이 7년 넘게 이어지면서 직업훈련 사업을 하는 기관은 잠재적으로는 약 1만개에 달하지만 수강료 지원혜택을 받는 정부 인증 교육기관은 약 3,000개에 불과하다. 정부 인증에서 떨어져 수강료 지원을 못 받는 기관은 다음 평가 때까지 1년간 사실상 매출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버텨야 한다. 직업학교협의회 관계자는 “인증을 못 받은 학원은 유료강의를 열 수밖에 없다”면서 “공짜 수업이 널려 있는데 누가 돈을 내고 듣겠느냐”고 말했다. 1년에 한 번 실시하는 정부 인증이 학원의 생사를 결정하는 구조인 것이다.
정부 인증을 받는다고 끝이 아니다. 학원들 간 학생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물불 안 가리는 출혈 마케팅이 이어진다. 한 직업학교장은 “정부 인증 직업훈련기관 수가 수요에 비해 많다 보니 어렵게 인증을 받아도 학생을 유치하지 못하면 운영비도 못 건지기 십상”이라며 “일부 학원들은 프랜차이즈 경영을 도입해 수강료 수입의 30% 이상을 광고 마케팅에 투자하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인증에만 목매는 현실에서는 양질의 직업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우려하고 있다. 학생들이 산업계가 요구하는 수준의 직업기능을 갖추려면 직업훈련기관이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투자를 해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는데 지금처럼 매년 정부 평가 결과에 따라 생존 자체가 오가는 상황이 되면 이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2017년 직업훈련기관 인증 평가’를 신청한 4,801곳 중 약 1,200곳이 지난해에는 영업을 하지 않은 신생업체였다. 교육 노하우가 축적되기보다는 폐업과 날림 창업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교육 업체 대표는 “직업훈련학원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간당 급여가 낮은 무검증 강사를 채용하거나 최소 4개월 이상의 교육이 필요한 IT 관련 전문교육과정을 한두 달로 축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직업훈련기관 지원에 대한 선택과 집중 없이 지금처럼 무한경쟁 구조가 지속되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학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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