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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鏡止水] 완벽한 스님

월호 스님

계율·선정·지혜 완벽 기하는 건

AI스님 목표로 달리는 것과 같아

융통성 있는 해석·대비심 계발 등

진정한 참선의 길로 나아가야

월호스님




말 그대로 완벽한 스님이 있다. 불교의 ‘삼학(三學)’이라고 하는 계율과 선정 그리고 지혜를 완벽히 갖췄기 때문이다. 먼저 계율을 지킴에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음은 물론 술을 마신다거나 도박에 손을 대는 일도 결코 없으며 소소한 계율까지도 위반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돈에 대한 욕심도 전혀 없다.

선정을 닦는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 번 좌선을 시작하면 몇 시간, 아니 며칠이나 몇 달도 끄떡없이 앉아 있을 수 있다. 심지어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며 일체의 잡념도 일으키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 또한 출중하기 짝이 없다. ‘팔만대장경’을 모조리 외울 수 있으며 세계 각국의 언어로 설법이 가능하다. 다양한 경우에 적합한 답변을 이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질문에든 곧바로 답할 수 있다.

이 스님은 누구일까. 다만 상상 속 인물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화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것은 바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나타날 수 있는 인공지능(AI) 로봇 스님이다. 최첨단 컴퓨터와 인터넷 기능이 갖춰진 AI가 내장돼 있기 때문에 온갖 지식과 정보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실시간 검색도 할 수 있다. 또 단 한 번의 에너지 충전으로 1년 365일 미동조차 하지 않고 좌선하는 용맹정진이 가능하다. 아울러 입력된 준수사항에 100% 충실하게 반응하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계율을 어기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스님이 진정 완벽한 스님일까. 아니, 나는 이런 스님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계율 지키기에 급급해 보살행은 뒷전이 되거나, 오래 앉아 꼼짝 않고 있는 것이 참선의 궁극인 양 생각하거나,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하는 것이 대단한 공부라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결국 나의 목표가 AI 로봇 스님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떤 스님이 돼야 할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역으로 AI 로봇 스님이 갖추기 힘든 점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로봇 스님이 갖추기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일단 계율에서는 ‘개차(開遮)법’이 있을 것이다. 개차법이란 상황에 따라 계율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세속오계의 ‘살생유택(殺生有擇)’ 같은 경우다. 불가에서는 일단 불살생(不殺生)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살생해도 무방하다고 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서산대사의 의승군(義僧軍)도 이러한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실제로 보살행을 실천하면서 소소한 계율까지 철저히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또 선정에서 로봇 스님이 ‘염화미소(拈花微笑)’를 따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세존께서 꽃을 들자 마하가섭이 미소를 지었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사례는 논리를 초월한다. 0과 1의 조합에 따른 논리에 바탕을 둔 AI로서는 상상조차 힘든 부분이 아닐까. 설령 AI 로봇 스님이 미소를 띨 수 있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왠지 로봇 스님의 미소는 섬뜩하게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지식과 정보에서 결코 AI 로봇 스님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자비를 계발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 내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자심(慈心)은 로봇 스님에게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말을 거역하고 나를 해코지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비심(悲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대비심을 계발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 대목에서 고려 ‘선문염송집’의 ‘파자소암’ 화두가 떠오른다. 신심이 돈독한 노파가 있었다. 한 수행자에게 초막을 지어드리고 20년을 한결같이 공양을 올렸다. 오직 수행에만 전념해온 스님에게 어느 날 자신의 젊은 딸을 보내 꼭 끌어안으며 묻도록 했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스님은 답했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三冬)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했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 질러 버렸다.

그 스님은 어떤 대답을 해야 했을까.

토요칼럼 ‘마음코칭’을 마치고 새롭게 월호 스님의 ‘明鏡止水(명경지수)’를 싣습니다. 월호 스님은 고려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학군단(ROTC)으로 군 복무 후 대기업 등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늦게 출가해 동국대 대학원에서 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쌍계사 승가대 교수·학장, 동국대 선학과 겸임교수, 해인사 승가대 교수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서울 동호로 부근 조계종 행불선원에서 선원장으로 있으며 불교방송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입니다’ 등 14권의 저서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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