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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소리

TALES FROM THE FIELD

  •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2017-11-10 19:11:37
  • 바이오&ICT
현장의 소리

■ 뇌졸중으로 지워진 미래 및 과거 감각 / 질 볼트 테일러 의 저자

하버드 대학의 신경 해부학자인 나는 인간의 뇌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침 왼쪽 눈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다. 그리고 나서 4시간 후 나는 걷지도 말하지도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게 되었고 내 삶의 과거를 회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뇌 좌측에 뇌출혈이 일어났고 나는 성인 여성의 몸 안에 갇힌 유아가 되어 버렸다.

물론 시간 인식 역시 뇌세포에 의해 제어된다. 좌뇌의 세포들은 선형적 사고를 관장, 사건들을 특정 순서에 따라 인식하게 해준다. 뇌졸중으로 인해 이들 세포가 모두 작동을 멈춰 버렸다. 이로서 나는 우뇌에만 의존해 살게 되었다. 우뇌는 현실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과거나 미래를 인식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지금 이 순간 보고 냄새 맡고 체험하는 것이 내 존재 전부가 되어 버렸다.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옷을 입어야 한다. 그 때는 좌뇌를 사용해 어떤 것을 먼저 입고 나중에 입을지 정해야 한다. 속옷을 먼저 입고 겉옷을 입어야 한다. 이러한 선형 감각이 없으면 옷은 그저 모두 개별 소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에게 이런 느낌을 이해시키기는 어렵다.

뇌졸중 이후 2주만에 의사는 왼쪽 대뇌피질에서 골프공만한 혈전을 꺼냈다. 머리에 구멍이 났지만 세상이 더욱 밝고 실감나게 느껴졌다. 뇌세포와 수많은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잊었던 기술들을 다시 배우게 되었고, 시간 감각도 배우게 되었다. 시계를 가지고 시간 개념을 다시 익히게 되었다. 그러나 6년 동안 필자의 체험은 현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양말과 신발을 신는 법을 배울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이 내 눈앞에 놓이면 어느 것부터 먼저 착용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시간감각을 되찾았다. 다시 배워야 했던 능력들 중 일부는 완전히 돌아왔고, 일부는 복구되지 못했다. 잊었던 기억들 중 일부도 재생해냈다. 그러나 내 일부 중 어디까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는지는 모른다. 10살 때 생일 케이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당신은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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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냄새가 난다 / 조르게 오테로 파일로스 교수, 콜럼비아 대학 역사 보존학과장

냄새를 통해 과거와의 연결을 느낄 수 있다. 그 때문에 필자는 역사적 장소의 냄새를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뉴욕 J.P. 모건 도서관의 책 페이지 사이에 떠도는 분자들을 보면, 지금 유리창 뒤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이 과거 어떤 냄새를 풍겼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분자들의 화학적 칵테일을 만들어 역사적 향기를 재현한다. 그리고 이 향기를 도서관의 방문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우리는 특정한 순간의 냄새도 재현할 수 있다. 지난 1913년 모건이 사망했을 때, 유가족들은 죽은 지 몇 주 된 모건의 시신을 도서관에 전시했다. 시신의 냄새는 매우 특이해서 알아차리기가 쉽다. 경찰견을 훈련시키는 데도 사용된다. 기록에 따르면 시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도서관에 향이 진한 장미 5,000송이를 들여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 때의 냄새도 재현할 수 있다.

냄새는 특정한 장소의 정수를 보존한다. 그 때 도서관에 왔던 관람객들은 모건의 시신 냄새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그들이 맡았던 냄새는 이 도서관의 마력을 영구히 보존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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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공격 / 패트리샤 라이버그, 파크 대학의 생물학과 조교수

지난 2010년 필자는 남극의 스카르 능선에 첫 연구 여행을 갔다. 산 옆구리 근처에 있는 이 능선의 길이는 3km 정도로 돌과 화석들이 있었다. 이곳에 가는 방법은 헬리콥터 말고는 없었다. 때문에 많이 걸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이전에 다른 연구팀이 이 곳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은 지난 1990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떠날 때 이 자리에 필자의 동료 교수인 N. 루벤 쿠네오의 망치를 놔두고 갔다.

우리는 동료 과학자의 공구를 회수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웃었지만 그 물건을 찾아낼 확률은 매우 적었다. 금속과 나무로 이루어진 망치는 이 얼어붙은 거친 환경에서 20년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카르 계곡은 넓은 장소였고, 눈보라가 친다. 때문에 우리는 현장에 발을 딛는 순간 쿠네오의 망치 따위는 잊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불과 이틀 후, 눈더미 위로 튀어나온 망치 손잡이를 보았을 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 망치가 쿠네오의 것이라는 증거는 망치 머리가 베이비 블루 색으로 칠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탐사에 사용한 망치들은 분실시 찾기 쉽도록 모두 머리에 형광 분홍색이 칠해져 있었다.




■ 남극의 여름을 지내보자/ 로스 버지니아, 다트머스 대학 극지 연구소 소장
남극에서 비교적 따뜻한 계절인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밤에도 어두워지지 않는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남극에서 21번의 여름을 보내 본 생태학자 로스 버지니아는 다음 물건들을 반드시 챙긴다.


현장의 소리

1. 선글래스
이게 왜 필요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남극의 여름은 밤이 없고 지독히 건조하다. 때문에 시야 측면을 가려주고 100% 자외선 보호가 되는 짙은 색 선글래스로 눈을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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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악
현장의 기나긴 일과가 끝나고 나도 잠을 이루기 힘들 때 음악을 들으면 기분전환이 쉽다. 알토이즈 박스에 스피커를 넣어 가서 이 스피커를 아이팟에 연결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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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간용 빛 가리개
밤에도 쨍쨍한 햇살을 가리기 위해 목토시를 사용한다. 낮에는 스카프나 뚜껑 없는 모자처럼 사용하고, 텐트에서 취침할 때는 눈가리개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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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싱글 몰트 스카치
음악을 들어도 잠이 오지 않으면 스카치를 마셔라. 집에서는 스카치를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남극의 여름 내내 맥주를 마실 경우 무게와 부피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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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세계로의 여행 / 존 트로이어, 바스 대학 사망과 사회 센터 소장

죽어가기, 죽음, 죽음 이후 간의 여러 단면들을 연구해왔다. 죽어가는 것, 죽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답은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져 왔다.

왜 그런 것에 집착했는지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필자의 아버지는 장의사였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죽은 이들을 보면서 자랐다. 2000년대 초반 아버지는 30년 묵은 묘지 이장을 도와달라고 하셨다. 유감스럽게도 관을 감싼 콘크리트 회곽이 깨져 있었고, 그 속에는 물이 가득차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갈색 수프 같은 모양새였다. 필자는 방호복을 입고 양동이와 밧줄을 들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필자는 양동이 속에 그 물을 퍼서 채우면 아버지가 무덤 밖으로 양동이를 끄집어냈다. 그 때의 경험은 필자의 마음 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시간이 오래 경과해 분해된 시신을 나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체험이었다. 그 무덤 주인이 사망했을 1970년대를 전후해, 인간의 죽음의 풍경은 변하기 시작했다. 생명유지장치는 생존의 정의를 바꿔 놓았다. 따라서 죽음의 시점은 언제이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일으켰다. 과거에 심장 박동이 멈추었을 때를 죽음으로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인격의 종말을 죽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는 뇌가 죽으면 그 사람이 죽었다고 보게 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죽음의 정의는 예전과는 달라졌다. 앞으로도 또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신원을 DNA로 식별할 수 있다면, DNA가 세포에 계속 명령을 내리는 한 그 사람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미래에 죽음의 의미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변할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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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이 보이지 않는 채로 우주 유영을 / 크리스 해드필드, 퇴역 캐나다 우주비행사

시간은 우주유영의 적이다. 우주선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의 생사는 시간에 달려 있다. 이산화탄소 흡수 화학물질도 정해진 시간 동안만 유효하다. 배터리도 사용할수록 잔량이 줄어든다. 호흡할 수 있는 산소의 양도 제한되어 있다. 뭔가 잘못되었거나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계획표상의 여유는 매우 작다. 첫 우주유영 때 우리 임무는 국제우주정거장 외부에 안테나와 로봇 팔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우주유영을 시작한 지 5시간 쯤 후 헬멧 속에 물방울이 떠 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러더니 왼쪽 눈이 엄청 쓰리기 시작했다.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주복 때문에 눈을 문지를 수 없었다. 그리고 중력이 없으므로 눈 밖으로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작업을 계속하려 했지만 오른쪽 눈까지 쓰라리기 시작했다. 우주에서 양눈이 다 안 보이게 되었다. 그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현상이 영구히 갈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신경쓰였던 것은 시간의 흐름이었다. 우주에서 해야 할 일은 많았고 시간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결국 우주복의 산소 공급 장치를 사용해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내어 원인 물질(흐림방지액에 들어 있던 비누 및 기름 성분인 것은 나중에 알았다)을 제거하자, 눈물이 마르고 다시 앞을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30분이 지나갔고, 작업을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우주에서 일을 멈추고 주변의 아름다음에 감탄했던 적은 많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상공에서 갑자기 오로라를 봤을 때가 대표적이었다. 거대한 커튼 모양의 무지개색 오로라가 물결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 때는 물론 그 이후에 있었던 일들이 매우 선명히 기억난다. 올해 필자는 57살이다. 우주유영을 한 시간은 15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때 겪었던 일들은 내 사람의 다른 시간과 마찬가지로 선명하고 생생하고 아름답고 중요하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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