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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兵者詭道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병자궤도·전쟁이란 속이는 기술이다>

예상 뒤엎는 트럼프의 돌발 행보

美 우선주의 위한 사업가적 전략

지도자 관점서 접근해선 안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1박2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평소 주류 언론보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여과되지 않은 표현을 드러내기도 하고 개인적 호오(好惡)를 가감 없이 나타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우리나라에 와서도 환영 행사나 정상회담이 끝난 뒤나 출국 후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그는 면전에서 상대를 칭찬했다가도 헤어지고 나서 소셜미디어로 곧바로 정반대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적어도 무엇을 하지 않으리라는 기대와 상식의 선에서 움직인다. 보통 대통령은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 기대와 상식을 의식하고 행동한다. 트럼프의 언행을 보면 그러한 상식과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해 의도적으로 좌충우돌하며 안정감이 없다거나 미치광이 전략을 쓰는 영리한 사람이라는 등 다양한 평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이해하려면 여론의 동향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 이미지나 교양을 갖춘 신사적인 지도자의 측면에서 접근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그를 더 이해할 수 없다는 수렁에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손무는 전쟁에서 살아남는 병법을 다루는 책을 썼는데 그 책을 읽으면 트럼프의 언행을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가 군사 전략가가 아닌데 병서를 읽으면 무슨 도움이 될까 의아해할 수도 있다. 병서라는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고 내용에 집중해보자. “적을 공격할 역량이 있지만 그럴 역량이 없는 것처럼, 공격할 필요가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처럼, 가까운 곳을 공격할 계획이지만 먼 곳을 공격할 것처럼, 멀리 돌아갈 계획이지만 가까운 곳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또 적에게 작은 이익을 던져줘 유인해내고 적을 혼란스럽게 해 틈을 타 공격하고 적의 역량이 충실하면 대비를 더욱 단단히 하고 적의 역량이 강하면 결전을 미뤄 피하고 쉽게 분노하면 자주 도발해 기세가 꺾이게 하고 적에게 비굴하게 해 자만심에 들게 하고 적이 안정돼 있으면 피로하게 만들고 적의 내부가 단단하게 결집하면 이간질해 떼어놓는다.”

손자는 내가 약하든 강하든 적을 끊임없이 괴롭혀 안정감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불안감을 강하게 느껴 자신이 가진 역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반면 적이 나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해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상황을 예측 가능하지 못하도록 불투명하게 만들어 상대를 피곤하고 초조하게 만들어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결전의 상황이 되면 “대비하지 못한 곳에 쳐들어가고 예상하지 못한 방안을 내 공격하면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공기무비·攻其無備, 출기불의·出其不意, 차병가지승·此兵家之勝).” 이렇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비밀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손자는 자신의 말을 간단히 정리했다. “전쟁이란 속이는 기술이다(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

전쟁을 속이는 기술로 보는 ‘병자궤도’의 표현에 너무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 ‘궤도’에 말 그대로 집착하면 손자가 병법을 기껏 사람을 속이는 기술로 보는 하수로 보인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에 혈안이 된 미치광이로 보일 수 있다. 병자궤도의 핵심은 대비하지 못하는 곳에 쳐들어가는 공기무비와 예상하지 못한 방안을 내는 출기불의를 압축한 표현일 뿐이다. 즉 전쟁이란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내가 상대에 비해 압도적인 역량이 아니라 불리한 상황에서 벌여야 하는 활동이다. 유동적인 상황에서 이기려면 결국 나를 최대한 감추고 상대를 완전히 파악해 내 손에서 놀아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병자궤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끌어내고 자신의 희생을 최소한으로 하려는 목표에서 자신의 언행을 조절하는 것이다. 손자가 말하는 병자궤도 전략과 완전히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양과 양식으로 세계를 평화로 이끄는 지도자가 아니라 미국과 자국 기업체의 우선주의를 성공시키기 위해 정치를 활용하는 사업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정치-사업가의 대통령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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