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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의 철학경영] 중용, 과녁서 상향조정해 찾아라

연세대 철학과 교수

<61> 80% 만족의 길

극단적 한국 문화 바람직하지 못해

과녁보다 조금 높게 쏴야 적중하듯

배려·자제하는 마음가짐 가져야





싱싱한 버섯을 따러 숲속에 들어간다. 어느 정도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버섯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왠지 조금 더 들어가면 더 좋은 버섯이 있을 것만 같다. 왜. 버섯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음습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더 숲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덧 반대편의 숲 가장자리로 나오게 된다. 언제 어디서 멈춰 버섯을 따는 것이 가장 좋을까. 컵에 물을 가득 따라보려고 한 적이 있는가. 컵에 물이 꽉 찬 경우는 물이 살짝 넘치고 난 후다. 물이 넘치기 직전까지는 꽉 찼는지 더 남았는지 알 길이 없다. 물을 흘리지 않고 꽉 채울 길은 없다. 넘쳐야 꽉 찬다.

유교에서는 중용(中庸)을 중시한다. 어느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현실에서 진리는 양극단이 아니라 그 중간 어딘가에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적당히 타협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 국론이 분열된 상태에 있다. 시끄러운 것을 보면 민주주의가 활성화된 것은 분명하다. 독재시대 때는 대통령에 대해 말 한마디 잘못하면 감옥에 가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서울 광화문에서는 일 년 내내 시위가 그칠 날이 없다. 입에 재갈을 물리는 독재나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하는 폭력시위 둘 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중용은 어디 있을까. 중용은 양극단의 사이에 있다. 그러나 양극단의 산술적 평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덕은 중용이다. 행동을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 좋은 행동을 반복하면 좋은 습관이 든다. 그 좋은 습관이 바로 덕이다. 용기를 예로 들어보자. 길을 가다 한 여성이 불량배 5명에게 둘러싸여 위협을 당하고 있다. 직접 그들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하는 것은 만용이다. 구조하기는커녕 나까지 다칠 수 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진정한 용기는 보복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다. 용기는 만용과 비겁의 정중앙이 아니라 만용 쪽으로 치우쳐 있는 법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딜레마 케이스를 놓고 찬반 토론하는 것을 무척이나 즐긴다. 그러는 이유는 우선 입장이 선명해야 토론이 재미있다. 상대가 가려고 하는 방향이 나와 정반대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파이팅 스피릿이 솟는다. 그러고는 서로 합의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한쪽이 설득돼 합의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끝내 합의가 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비상 방법이 있다. 서로 입장을 바꿔 찬성자는 반대 의견을, 반대자는 찬성 의견을 옹호하라고 한다. 이 순간 양자 모두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이쪽 극단에서 저쪽 극단으로 가보면 마음속에서 중용의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반대 입장 옹호하기를 한 번 해보고 나면 훨씬 성숙한 자세에서 토론을 할 수 있다.

중용은 양극단 사이에 있다. 극단이 없으면 중용도 없다. 그러나 중용을 못 찾더라도 극단은 있다. 중용은 중간이 아니다. 중용은 과녁이다. 활 시합에서 과녁은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우리는 자신의 과녁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과녁에 적중하듯이 중용을 찾아낼 것인가. 첫째, 활을 과녁을 향해 상향 조정하라. 왜. 중력의 법칙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꿈을 항상 크게 가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 활시위는 무심하게 당겨라. 중요한 시합에서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팔이 덜덜덜 떨리게 마련이다. 셋째, 끊임없이 연습하라. 긴장은 연습할 때 하는 거다. 여유는 시합 때 가지는 거다. 이걸 반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다다익선의 문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많으면 많을수록 정말 좋은 것일까. 선택지도 너무 많으면 오히려 결정장애를 일으킨다. 재산도 너무 많으면 오히려 화근이 된다. 80%에 만족할 때 좋은 버섯을 딸 수 있다. 물을 꽉 차게 따라야 할 이유가 정말 있는가. 80% 정도면 되지 않을까. 전투가 끝났을 때 20%의 예비 탄환을 남기는 사람이 준비를 정말 잘한 것이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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