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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자연·해산물의 도시 일본 와카야마] 다다미를 깔아놓은 듯...켜켜이 쌓인 황토빛 바위

침식·퇴적으로 형성된 지층 센조지키

바다 풍경 어우러져 '연인들 성지'로

도레토레 시장엔 싱싱한 해산물 가득

전복·새우·조개 등 숯불구이 '별미'

日의 '산티아고 순례길' 구마노고도

묵묵히 걷다보면 133m 폭포에 힐링

일본 와카야마현의 센조지키를 찾은 커플과 방문객들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일본’이라는 여행지를 아끼는 이들이 참 많다. 사람들의 사려 깊은 마음 씀씀이, 골목 귀퉁이에서 불쑥 찾아들어도 정성스레 음식을 깔아주는 식당들. 사람과 먹거리가 명품이니 마주하는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곳이 일본이다. 계절이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쯤 어딘가에서 서성인 11월에 둘러보고 온 혼슈 지방 남서부의 와카야마도 다르지 않았다. 벌써 일곱 번째 일본 여행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마냥 좋고 그저 즐거운 순간들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센조지키. 바닷가 마을인 시라하마에 위치한 이곳은 널따란 사암(沙巖)이 오랜 세월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면서 형성된 지층이다. 겹겹이 층을 이룬 황토빛 바위와 청명한 하늘, 시린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보자니 다른 세상에 온 듯 아찔하고 몽롱했다. 깎아지른 바위는 세찬 물살을 힘겹게 받아내고 있었고 높다란 절벽은 외로워도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1,000장의 다다미를 깔아놓은 듯한 모습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千疊敷·센조지키)이 괜한 허풍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과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토레토레 시장.


잠시 고개를 돌리자 눈망울에 담아가고 싶은 진짜 장관(壯觀)이 보였다. 드넓게 펼쳐진 지층들 사이로 여러 쌍의 젊은 남녀가 곳곳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시라하마로 들어오면서 마주친 깃발 현수막에 쓰인 문구도 ‘연인들의 성지’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기저기 새겨진 사랑의 서약들이 발밑으로 지나갔다. 한쪽 구석에서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듯한 앳된 커플이 자그마한 돌멩이로 열심히 바위를 긁고 있었다. 소설가 김영하도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불완전한 사랑을 극복하기 위해 단단하고 완전해 보이는 바위와 자물쇠에 사랑을 남기는 것”이라고. 부디 저 싱그러운 남녀도 사랑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영원에 이를 수 있기를. 혹여 세월의 불가항력에 훗날 사랑이 부서져도 오늘의 맹세와 다짐만은 반짝이는 추억으로 간직하기를.

센조지키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도레토레시장도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장소다. 말만 시장이지 우리나라의 농수산물 직판장처럼 실내에 온갖 종료의 식품과 기념품을 구비했다. 간사이 사투리인 ‘도레토레’는 갓 잡아올린 싱싱한 것을 뜻한다.

구마노나치타이샤의 본당에 오르기 전 바라본 나치산의 모습.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시장에는 금방이라도 펄떡거리며 다시 살아 움직일 듯한 해산물이 가득했다. 이른 오전이었음에도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이 식탁에 오를 먹거리를 꼼꼼하고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 ‘도레토레’라는 후렴구가 포함된 트로트풍 주제가가 무한 반복으로 깔리면서 방문객의 흥을 돋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식품 디스플레이’였다. 품목별로, 색깔별로 짜 맞춘 듯 줄지어 선 모습은 하나를 빼내 대오를 흩트리면 어쩌나 하는 미안함이 생길 만큼 질서정연했다. 시장 한구석에서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는 미학적 강박과 완벽주의.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지구촌 곳곳의 여행객을 일본으로 불러들이는 힘인지도 모른다.

어딜 가나 있는 시장을 굳이 왜 여행 명소로 소개하느냐고 타박하진 마시라.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다. 도레토레시장 입구 바로 옆에는 밖이 훤히 보이는 간이식당이 마련돼 있다. 일행과 함께 굴과 새우, 조개와 전복을 한 아름 사 들고 와서 숯불에 구워 먹었다. 1인당 300엔(약 2,920원)만 내면 이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덜 차오른 배는 초밥으로 든든히 채웠고 시원한 맥주도 곁들였다. 단연 도레토레시장의 백미(白眉)이자 별미(別味)였다.



사찰인 세이간토지의 3층탑 너머로 133m의 나치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다.


이제 순례길과 사찰, 신사를 보러 구마노고도로 갈 차례다. 가쓰우라항구에서 나치산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일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불리는 참배로를 만난다. 지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마노고도 순례길은 와카야마현과 나라현·미에현에 걸쳐 총 300㎞의 숲길로 펼쳐져 있다. 참배로 입구의 팻말은 계단을 따라 오르면 ‘신사’인 구마노나치타이샤와 ‘사찰’인 세이간토지가 나란히 붙어 있음을 친절히 알려준다. 땀을 닦으며 460단이 넘는 계단을 묵묵히 딛고 서자 신사와 절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왔다. 취재진의 가이드를 맡은 세키후지 다카히레씨는 “일본에서도 이렇게 신사와 절이 한데 모여 있는 건 매우 드문 경우”라고 소개했다.

나치폭포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인 구마노나치타이샤의 본당.


붉은 기둥이 위풍당당하게 우뚝 솟은 구마노나치타이샤로 먼저 걸음을 옮겼다. 한참 오른 계단을 수십 번 더 디딘 후에야 본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신사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나치폭포를 신으로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133m의 낙차를 자랑하는 나치폭포는 일본의 3대 폭포 중 하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천천히 신사 내부를 거닐었다. 하늘로 시원하게 뻗은 나무 옆에서 자그마한 목재 팻말에 소원을 적고 있는 한 가족이 보였고 기도를 올리기 전 불타는 나뭇재가 내뿜는 연기를 손바람으로 끌어당기는 일본인도 눈에 띄었다. 국적도, 연령도, 나이도 제각기 다르지만 신사를 찾은 이들은 하나같이 저 자신과 사랑하는 주변인의 안녕을 두 손 모아 기원하고 있었다. 본당 한쪽에 세워진 간판에 ‘정유년’을 상징하는 닭의 그림과 함께 굵직하게 박혀 있는 글씨도 다름 아닌 ‘개운(開運)’이었다.

바로 옆에 붙은 세이간토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사찰이었다. 화려하고 힘찬 기운을 뿜는 구마노나치타이샤와 달리 이 사찰은 엄숙하고 정갈했다. 본당을 지나 주홍빛을 머금은 3층 탑 근처로 내려가자 나치폭포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찬 물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쉼 없이 쏟아져 내렸다. 세파의 시름과 걱정을 물줄기와 함께 날려보내겠다는 듯 방문객들의 얼굴에 고요한 표정이 내려앉았다. /와카야마=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노중훈 여행작가

취재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http://www.welcometojapan.or.kr/jro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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