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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아날로그의 재발견]손편지·흑백사진·연필…'오래된 미래'를 틀다

●번거로움의 즐거움 

1020, LP 들으며 스티커 사진

4050엔 '추억'이지만 젊은층엔 '신문물'





“얼마 전에는 LP 들으러 친구 집에 놀러 갔었어요. 그 집에는 턴테이블이 있거든요.”

1991년생 신하영씨가 요새 푹 빠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LP다. 그녀는 “턴테이블과 LP를 처음 만져봤을 때 그 느낌이 정말 매력적이었다”며 “스트리밍에 비해 번거롭고 수고스럽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고 소중한 뭔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마포구 합정에 좋아하는 LP바가 생겨서 거기로 종종 음악을 들으러 간다”고 덧붙였다.

음악 소비의 흐름상에서 보자면 신씨는 완벽한 ‘음원 세대’다. 그녀가 9세이던 지난 2000년에는 주식회사 레인콤이 세계 최초의 MP3를 만든 아이리버를 설립했다. 음반은 급격하게 음악 파일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10대가 된 그의 손에도 워크맨이나 CD플레이어 대신 작고 얇은 MP3플레이어가 쥐어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역사상 가장 손쉽고 저렴하게 음악을 향유할 수 있었던 세대인 신씨는 가장 번거롭고 비싼 방식이었던 LP에 매력을 느낀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디지털의 대척점에 서 있는 ‘아날로그’가 가장 ‘힙’한 존재로 떠오른 것이다.



◇흑백사진·손편지…부활하는 아날로그의 아이콘=흑백사진·손편지, 그리고 연필. 스마트폰에 밀려 영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아날로그의 아이콘’들이 속속 부활하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에는 노란 우편함이 하나 서 있다. ‘온기우편함’이라는 이름이 적힌 우편함 옆에는 이런 안내문이 있다. “소중한 고민을 익명으로 넣어주시면 손편지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우편함에 편지를 넣은 사람이 답장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통상 2~3주. 서울 도심 4곳에 설치된 온기우편함에 쏟아지는 편지는 일주일에 평균 100통에 이른다. 온기우편함에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약 70%가 20~30대이며 10대도 적지 않다.

온기우편함을 기획한 온기제작소의 조현식씨는 “20대는 그나마 손편지에 대한 향수가 있다고 쳐도 편지보다 카톡이 익숙할 10대들이 편지를 보내주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며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보낸 답장에 다시 답장을 보내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이 10대”라고 전했다. “오히려 편지를 많이 안 써봤기 때문에 편지에 더 위로를 받는 것 아닌가 싶어요. 손편지에는 누군가의 마음과 진심이 들어 있잖아요. 그게 아날로그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1020세대 사이에서는 네 컷짜리 흑백사진을 찍는 유행도 번지고 있다. 홍대와 명동 등 젊은 층이 자주 찾는 번화가에는 ‘인생네컷’이라는 이름의 즉석 사진 기계가 놓이기 시작했다. 과거 한 시절을 풍미한 ‘스티커 사진기’의 2017년 판이다. 딱 네 컷만 찍을 수 있으며 컬러로도 찍을 수 있지만 오히려 흑백사진의 인기가 높다. 스마트폰 앨범에 수천장의 사진을 갖고 있는 교복 입은 10대들도 여기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다.

국내 스타트업이 개발한 ‘구닥캠’ 역시 이 같은 아날로그 감성을 제대로 건드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구닥캠의 콘셉트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다. 구닥캠을 구동시키면 일회용 필름카메라의 뒷모습을 빼닮은 화면이 등장한다. 손톱만 한 뷰파인더를 보고 사진을 찍어야 하고 24컷의 가상필름을 모두 소진하면 3일을 기다려야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나온 사진은 빛이 번져 있고 시간이 흘러 바랜듯한 느낌을 낸다. 1.09달러(한화 약 1,191원)의 유료 앱임에도 불구하고 16개국의 애플 앱스토어에서 유료 앱 전체 1위를 차지했다.

◇4050에겐 추억이지만 1020에겐 ‘신문물’=사실 이러한 아날로그의 유행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에도 ‘복고’ ‘추억’과 같은 이름표를 달아 주기적인 인기를 끌어왔다. 당시 아날로그의 유행의 배경으로 꼽혔던 단골손님은 경제침체나 도시화 같은 것이었다. 사는 게 팍팍하고 삭막한 인간관계에 지칠 때 옛 추억을 회상하며 ‘그땐 그래도 좋았지’ 하고 생각하는 일,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날로그의 유행은 과거와는 조금 다르다.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트렌드를 리드하는 주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합정동이나 연남동·익선동 등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에는 아날로그를 표방한 가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손글씨가 드물어진 시대에 연필을 종류별로 판매하는 매장이나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 빈티지 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그야말로 즐비하다. 아날로그가 우리의 생활 속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가 이처럼 유독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디지털이 일상화하면서 오히려 평범한 것이 됐고 아날로그는 색다른 것이 됐다는 데 핵심이 있다. 실제로 ‘아날로그의 반격’의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4050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LP와 같은 아날로그 물건이 1020에게는 ‘새로운 물건’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디지털이 일상화하면서 오히려 아날로그가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위해 기꺼이 웃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LP에 빠져 있다는 신씨 역시 아날로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만일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면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아날로그는 흔하지 않고 남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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