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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구글버스에 돌을 던지다] '성장의 덫' 벗어나…인간 중심의 디지털 경제를 꿈꾸다

■더글라스 러쉬코프 지음, 사일런스북 펴냄

인스타 5억弗 기업가치 평가에도

하루 4,960만개 '좋아요' 누르는

이용자에겐 어떠한 혜택도 없어

플랫폼·데이터 가진 기업만 이윤

P2P 거래로 가치 창출하는

디지털 분산경제 시대 제안





8,010억 달러, 6,800억 달러, 4,760억 달러, 4,441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0조~900조원에 이르는 이 천문학적인 숫자들은 지난 5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투자자인 메리 미커가 발표한 애플, 구글(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의 기업가치다. 페이스북의 지난해 수익이 아마존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가치가 기업의 현재 수익성과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각 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근거해 산출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미래가치나, 주가는 물론 국가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평가 체계는 성장을 목표로 짜여져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미디어학자인 더글러스 러쉬코프 뉴욕시립대 퀸스 칼리지 교수가 쓴 ‘구글버스에 돌을 던지다’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성장의 덫’에 갖힌 경제시스템에 돌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에 영감을 준 사건은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서 주민들이 구글을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들이 내쫓기는 현상)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구글의 통근버스에 돌을 던진 항의시위였다. 숱한 전문가들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촉발한 ‘4차 산업혁명’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저자는 이 사건을 빗대 확장경제의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 ‘톱 다운’ 경제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수백조 가치의 IT 기업이 탄생한 과정은 비슷하다. 고용창출은 전통기업들의 10분의 1 수준(매출액 대비 고용자수)에도 못 미치지만 이들은 벤처캐피털의 막대한 투자를 받아 매일 주주와 이사회의 주문에 따라 성장해야만 한다. 추가로 자금이 필요하지 않아도 투자자들의 성공적인 엑시트(투자회수)를 위해 기업공개에 나서거나 인수합병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경제를 △장인 경제 시대(1000∼1300년) △산업경제 시대(1300∼1990년) △디지털 산업경제시대(1990∼2015년) △디지털 분산경제시대(2015년 이후)로 분류한다.

특히 산업경제 시대 이후 인류의 역사는 인간을 중심에 두는 대신 부속품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흘러갔다고 주장한다. 대량생산은 인간의 손재주나 장인정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생산의 일부 공정만을 담당하게 된 노동자들은 언제든 대체 가능해졌다. 브랜드 마케팅 역시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했다. 삼성의 스마트폰, 이마트의 과일을 소비하면서 생산자를 떠올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산업의 혁신은 인간적 가치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문제는 기하급수적 성장과 승자독식으로 요약되는 디지털 산업경제시대의 과실이 노동의 자동화, 플랫폼의 독점화, 지나친 주주 자본주의 등으로 골고루 분배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자는 디지털 경제가 전체 파이를 키우면서 더 큰 분배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롱테일 법칙’의 신화를 정면 반박한다. 아이튠에서는 상위 100위의 노래가 전체 매출의 6분의 1을 차지하고 소비자들은 빅데이터가 분석한 추천 목록을 참고해 지갑을 연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조회수, 리트윗, 댓글, 상품평 등을 통해 소비자들은 가치를 창출하는데도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수입 한 푼 없던 인스타그램이 5억 달러의 평가를 받는데도 하루 4,960만개의 ‘좋아요’를 창출하고 콘텐츠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이용자들에겐 어떤 혜택도 없었다. 결국 인간의 손끝에서 나오는 가치는 공짜가 됐고 플랫폼과 앱을 소유하고 인간의 데이터를 팔 수 있는 기업만 이윤을 얻게 된 것이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창조적 파괴’라는 말만큼 무시무시한 말도 없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코딩을 배우고 첨단 기술로 중무장한 IT 창업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 산업경제를 넘어 디지털 분산경제의 시대를 열자고 주장한다. 우선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저자는 노동 시간 단축과 생산성 확대에 따른 이익 분배, 기본소득제 도입 등을 제안한다. 변화가 가능하려면 기존의 성장 방식에 개개인, 그리고 사회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 기업이 주주의 권력과 자본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믿음 대신 안정적인 수익과 고용을 위해 존재(지속가능한 평형상태)해야 한다는 것, 개인과 개인의 교환(P2P)과 이를 통한 가치창출을 말살시키는 기업 대신 P2P 거래를 활성화하는 열린 플랫폼과 자본 유치(킥스타터 등 크라우드 펀딩)를 꾀하자는 것, 생산과 유통 영토의 초국가적 확대로 노동의 가치와 상품(서비스)의 가치를 어긋나게(디커플링) 하는 대신 역내 교역을 활성화하고 지역민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환은 기업뿐만 아니라 화폐·금융을 포함한 경제시스템에서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기존의 화폐 대신 비트코인이나 지역화폐 같은 새로운 개념의 화폐를 활용하면 자본 축적이 아닌 교환에 최적화된 화폐로서 디지털 분산경제를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미국의 매사추세츠 버크쉐어, 디트로이트 달러, 산타바바라 미션 등이 지역화폐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자금 유치 방식에서도 단기적인 성과로 보상해야 하는 은행 대출이나 벤처캐피털 대신 크라우드펀딩, P2P 대출 등은 지속가능한 경영은 물론 판매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는, 새로운 경영 모델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번역이나 구성, 일부 논리는 거칠지만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입문서로서는 충분히 훌륭하다. 다만 ‘80%의 M&A는 양측 모두 이윤 감소로 귀결된다’든지 일부 논쟁의 소지가 있는 통계들이 충분한 부연 없이 인용된 점은 아쉽다. 1만7,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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