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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어쩌면’과 ‘역시나’의 차이

작가

'역시나'식 사고땐 실망·좌절 연속

가능성 여는 '어쩌면'의 힘으로

편견·예단 대신 용기 샘솟게 해야

정여울 작가




글을 잘 쓰려면 접속어나 부사의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러나’ 등의 접속어를 남발하면 독자에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심어주고 사고의 자유로움을 제한할 수 있으니. ‘그래서’는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묶어버리고, ‘그러나’는 앞의 내용을 부정해버리며 뒤의 내용만을 강조하게 되니까. 하지만 어떤 접속어는 ‘사유의 힘’을 불어넣기도 한다. ‘그럼에도’는 그 모든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용기 있는 사유를 촉발한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싶다는 의지, ‘그럼에도’ 내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믿음을 표현할 수 있으니. 의미를 제한하는 접속어도 있지만, 의미를 확장하고 더 큰 자유와 힘 있는 실천을 촉발하는 접속어도 있다.



사고를 제한하지 않고 무한히 확장하게 만드는 단어 중에 ‘어쩌면’이 있다. 고병권의 ‘다이너마이트 니체’를 읽다가 니체야말로 ‘어쩌면’의 철학자임을 깨달았다. ‘어쩌면’이야말로 미래에 도래할 위대한 철학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부사다. ‘어쩌면’은 온갖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모험에 몸을 던질 줄 아는 자의 부사다. 세계를 의심하며 해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믿고 세계를 바꿀 용기가 있는 사람들의 부사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라’라는 희망을 고취시키는 철학자, 상황이 아무리 나쁠지라도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 부딪치면 바뀔지도 모르는 세상을 향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철학자야말로 미래의 철학자다. ‘역시나, 짐작하던 그대로 절망적이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삶을 걸고 도전한다면 바뀔지도 모르는 세상’을 긍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우둔한 순수성을 지닌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어쩌면’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마음속에서 짧은 글짓기를 해보았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의 힘을 깨달았다. ‘어쩌면’에는 주술적 희망의 향기가 묻어 있다.

‘어쩌면’으로 짧은 글짓기를 해보니 내 안에는 예컨대 이런 희망의 언어가 숨어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이 아픔을 이겨낼 힘이 있을지 몰라. 어쩌면 그리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어쩌면’은 ‘역시나’처럼 판단적이고 규정적이지 않기에 열린 사유를 촉발한다. ‘어쩌면’의 사유는 ‘저 사람은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적과 아의 이분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어쩌면’을 집어넣어 보니,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불편해하는 마음도 누그러든다. 어쩌면 저 사람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나에게 불시착한 메신저일지도 몰라. 어쩌면 저 사람은 내 사랑의 최대치를 가늠하기 위해 나에게 던져진 숙제인지도 몰라. 어쩌면 저 사람은 나에게 불친절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매우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일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상상하다보면, 그 사람을 향한 편견과 예단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어쩌면’의 사유는 ‘역시나’의 사유와 정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역시나 그럴 줄 알았어, 역시나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어, 역시나 그는 나를 또 실망시키는군. ‘역시나’는 언제든 실망할 준비, 기대를 좌절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부사다.



‘어쩌면’의 사유는 판단을 유보하고 되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어쩌면’의 사유는 자기징벌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이끈다. ‘어쩌면 나에겐 나도 모르는 눈부신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쩌면’을 통해 나는 심각한 자기규정도 자기비판도 되도록 자제하게 되었다. ‘역시나, 그러면 그렇지’의 눈길로 나를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고 보듬어줄 기회를 놓쳐버린 그 수많은 인연의 그물코들을 다시금 꿰매고 이어붙일 가능성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글쓰기와 글읽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만난 당신과 나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오히려 더 깊이 사귀어온 듯한 다정한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어쩌면, 어쩌면 우리에게는 미워하고 비난할 시간보다 사랑하고 공감할 시간이 더욱 절실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엔 더 많은 사람들을 아끼고 보듬을 수 있는, 그 깊이도 넓이도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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