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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獨 총리는 왜?… "사민당 대연정"을 원하나

메르켈, 자메이카 연정 불발되자 "재선거 희망" 배수진

재선거 기피여론에 야당 사민당에 연정 연장 압박 부메랑

EU 산파입지 흔들리자 강대강 연합으로 메르켈주의 부활 시도

슐츠 사민당 당수, "협상 문 열어둘 것" 성사 여부 관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AP연합뉴스




독일이 새 연립 정부 구성을 이루지 못하며 헌정 사상 초유의 난국을 걷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탄탄한 경제 강국을 이뤄낸데다 이번 총선에서 제1당 당수로 총리 자리를 예약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명운도 풍전 등화다.

선거에 승리한 제1당 당수가 총리직을 내걸고 정치적 협상에 임하게 된 얄궂은 운명은 지난 9월 독일 총선 결과에서 기인한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기사당 연합은 이번 총선에서 246석을 획득하며 30%대의 득표에 그쳤다. 의원내각제 하에서 안정적 의회 운영을 위해 과반이 필요한 만큼 연정이 요구됐다. 성적표는 좋지 않았지만 독일 정치에서 연방의회와 주 의회 모두 연정 구성이 일반적이어서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날에 큰 문제가 발생하리라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제일 먼저 물망에 오른 것은 ‘자메이카 연정’이다. 연정 협상 대상인 기민 기사, 녹색, 자민당의 대표 색깔을 합하면 자메이카 국기와 같다고 해 명명된 이 연정은 그러나 친기업적인 자민당과 환경보호에 치중하는 녹색당의 거리 만큼이나 시종 난항을 거듭했다. 사실 서로 다른 색깔의 세 당이 연방의회 차원의 연정 협상에 참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3개 정당의 기본 입장을 조율하는 예비 협상에만 한 달 여가 소요됐고 그마저 한 차례 연장됐다. 유럽연합(EU) 정책 결정의 시작과 끝 역할을 해온 메르켈 총리가 EU정상회의마저 거른 채 연정 합의를 독려했지만 자민당이 “녹색당과 정책 차를 좁힐 수 없다”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이 연정은 끝내 불발됐다.



총리의 선택지는 다음과 같았다. 냉각 후 재협상, 다른 연정 도출, 소수당 정부 구성, 재선거. 사민당의 연정 반대가 워낙 강했기에 이중 유력해 보인 것은 소수당 정부 출범 쪽이었다. 자민당을 제외한 기민·기사당과 녹색당이 연합하거나 독자적인 소수 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이다.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적이 없는 형태이지만 기민·기사당이 제1당인 만큼 불가능한 스토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총리는 뜻밖에도 “소수당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며 “재선거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재선거는 이번 총선에서 첫 연방의회에 진출하면서 제3정당으로 파란을 일으킨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독일을위한 대안 당에 더 득세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어떤 정당도 원하지 않던 바였다. 특히나 재선거를 실시할 경우 기민기사당이 현재의 제1당 지위를 잃어 총리 자신이 스스로 낙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결국 독일 정가에서 재선거 기피 여론과 함께 현재 기민·기사당과 대연정을 이루고 있는 사민당에 대한 연정 압박으로 읽혀졌다. 현재처럼 두 정당이 연정을 다시 이어간다면 과반인 355석을 훌쩍 넘겨 안정적 정국 운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왼쪽)독일 대통령과 대화하는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 /AP연합뉴스


당황한 것은 사민당이었다. 사민당은 지난 4년 동안 기민·기사당과 대연정을 이루면서 좌파 색깔을 많이 양보한 탓에 이번 선거에서 참패했다 보고 있다. 사민당은 “국민이 (총선 결과로) 대연정을 심판했다”며 야당 유지 방침을 고수했지만 당내 분열은 시작됐다. 사민당 출신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도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당수와 만나 연정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을 설득했다. 1시간 넘는 이 만남 직후 슐츠 당수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권고를 받아들여 최대 정파인 기민·기사당과 대연정 협상에 문을 열어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재선거를 무기로 정치권을 압박한 메르켈 총리의 승부수가 통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메르켈 총리가 배수의 진을 치고 굳이 야당으로 남겠다는 사민당과의 연합을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에서도 사실 기민·기사당과 사민당의 연정은 예외적인 상황에 속한다. 보수적 기독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연합보다 당대당 대립이 훨씬 자연스러운 그림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민당의 슐츠 당수는 2015년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이 낙하한 이후 한 때 총리 후보로 승부를 겨루며 적잖게 대립했던 인물이다.

외신들은 메르켈 총리가 법안 주도 능력이 없는 소수정부에서 벗어나 강한 여당을 이루는 방안만이 현재 위기를 타개하는 대안이라 봤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소수당 정부가 꾸려진다면 사안마다 의회에서 정당 간 연합이 필요해 총리의 힘은 그만큼 약해진다. 의사결정과정도 그만큼 느려진다. 의회 다수당을 확보하지 못한 총리의 입지는 국제 사회에서도 추락할 수 밖에 없다. 메르켈 자신의 입지에 대한 타격은 물론 독일의 역할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자메이카 대연정이 불발한 직후 유로화 가치는 엔화 대비 2개월 최저로 급락했다. 연정 실패의 불확실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보여주는 결과다. 파장은 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독일 슈피겔은 “연정 실패는 메르켈 주의의 종언을 불러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메르켈 위기가 어떻게 풀리든지 유럽·서구에 불확실성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언론들도 앞다퉈 “EU 정책의 결정권이 앞으로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갈 것”이라 전망했다. 결국 소수당 정부의 한계를 극복해 고국 내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고 세계 무대에서 흔들림 없는 EU 경제 대국의 위상을 이어가려면 강한 당과의 ‘강대강’ 연합이 필요함을 총리와 정치권 모두 간파한 셈이다.

메르켈 총리가 오는 2021년까지 4번째 임기를 무사히 마칠 경우 헬무트 콜 전 총리의 16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독일 최장수 총리로 등극하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유일하게 맞상대가 가능한 인물로 꼽히는 최장수 지도자 ‘메르켈 카드’를 보유하는 것이 독일과 EU 모두의 앞날에 일단은 더 긍정적임을 이들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내각 회의를 주최하는 앙겔라 메르켈(윗줄 네번째)독일 총리/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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