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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손이천의 경매이야기]돈보다 더 귀한 문화재의 가치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쓴 유묵 ‘세심대’. /사진제공=케이옥션




지난 2012년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돼 고미술품 최고가인 34억원에 낙찰된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 화첩 중 천원권 지폐 뒷면그림 도안이 된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 /서울경제DB


어렸을 때 집안 어른들은 항상 천 원짜리 지폐로 세뱃돈을 주시곤 했다. 그렇게 빳빳하고 깨끗한 지폐를 한 장 두 장 모아 두둑하게 손에 쥐면 어린 마음에 쓰기 아까워 고이고이 지갑 속에 모셔두곤 했다. 지난 2012년 9월 케이옥션 경매에 나온 보물 제585호 화첩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이 유독 반가웠던 이유는 그런 추억 속 친근함 때문이었던 성 싶다.

2007년에 새로 발행된 천 원권 지폐 뒷면에 실린 그림이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이며, 이를 수록하고 있는 화첩이 바로 ‘퇴우이선생진적첩’이다. 당시 출품된 진적첩은 34억원에 낙찰되며 국내 고미술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백자청화운룡문호’가 가지고 있던 최고가 기록인 18억원의 2배에 달하는 높은 금액이었다. 26억원에 경매가 시작돼 이 작품은 5,000만원씩 호가가 진행되는 동안 서면과 현장, 전화응찰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고 마침내 전화 응찰자에게 낙찰됐다. 2012년 당시만 해도 근현대 및 고미술을 통틀어 국내 미술경매 최고가 작품은 박수근의 ‘빨래터’로 45억 2,000만원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중섭의 ‘황소’가 35억 6,000만으로 그 뒤를 잇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34억원에 낙찰된 ‘퇴우이선생진적첩’은 고미술품 최고가 경신뿐 아니라 당당히 국내 미술품 최고가 3위 자리에 이름을 올리며, 고미술품도 근현대 미술품에 못지않게 높은 금액에 거래된다는 사실과 함께 그 가치와 저력을 보여줬다.

‘퇴우’는 퇴계와 우암을 일컫는 말로 이 작품은 내용 14면과 앞 뒤 표지 2면을 포함해 총 16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과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글씨, 여기에 한국 미술사 최고의 거장이자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4폭까지 실려있는 서화첩이다. 여기다 발문과 전승내력까지 적혀있어 화첩 하나로 당대 문화예술과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1975년 5월에 보물로 지정됐다. 특히 겸재가 1746년 그린 ‘계상정거도’는 천 원권 앞면의 주인공이기도 한 퇴계가 관직에서 물러나 머무르며 학문을 닦고 제자를 양성하던 도산서당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지폐 앞뒷면의 의미가 맞닿아 있다.

이 경매 이후 낙찰자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실제 경매를 진행했던 필자도 전화 낙찰이었기에 그 주인공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국가지정 문화재에 대한 소유주 변경 신고가 문화재청에 접수되면서 낙찰자가 삼성문화재단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삼성문화재단은 문화재의 연구와 보존을 위해 해당 작품을 구입했다고 발표했고 그 후 이 작품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시 ‘산수, 이상향의 재현’을 통해 대중에 공개됐다.



2012년 경매 당시 필자가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국가 지정 문화재를 개인이 사고팔 수 있느냐는 것이었는데, 지정문화재일지라도 개인 소유라면 매매할 수 있으며 소유주 변동 사항을 문화재청에 신고하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한국전쟁 때 미군이 불법 반출한 조선 성종 임금의 비 공혜왕후의 어보(왕실 의례용 도장)가 2011년 경매로 나와 국내로 환수됐고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와 고려시대 나전칠기 상자도 2015년 경매에서 한국인이 낙찰받아 돌아오는 등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를 찾아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가 경매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는 12일 열리는 케이옥션 경매에도 오랜 기간 해외에 있어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던 귀한 작품이 출품된다. 민족의 영웅이자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옥중 유묵(遺墨) ‘세심대’이다. ‘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뜻의 ‘세심대’는 일본의 개인 소장가가 보관해 왔고 이번 경매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좌측 하단에는 단지동맹(斷 指同盟) 때 약지를 자른 왼손의 장인(掌印)이 선명하게 찍혀있고, 그 위로는 ‘경술년 3월 여순 감옥에서 대한민국 안중근 쓰다’ 라는 서명이 남아있다.

안중근의 옥중 유묵은 지난해 9월 케이옥션 가을경매에도 출품됐고 ‘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는 명심보감 훈자(訓子)편을 적은 ‘행서족자’가 경매에 오르자 현장은 잠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당시 경매를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인 이 유묵은 시작가 2억8,000만원을 외치자 경합에 불이 붙어 41회나 경합이 이어져 7억 3,000만원에 낙찰됐다. 그간 거래된 안중근의 글씨 중 최고가 기록이었다.

여순 감옥의 작은 독방은 안중근 의사가 마음을 씻어내는 공간, 곧 세심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후세의 평화와 안녕을 바랐던 의사의 정신과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자 한 나라의 정체성과 국민의 자긍심이 반영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했던 백범 김구의 말을 떠올리며 이 시대 문화보국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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