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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_창업을_응원해] 대학 동기들과 창업…소품 유통으로 매출 1,000억원 일구다

최은희 텐바이텐 대표

한양대 건축학과 나와 삼우설계에서 첫 사회 생활

대학 동기 5명이 의기투합해 디자인소품 전문몰 론칭

10가지 라이프스타일로 10가지 즐거움을 준다 표방

350만 고객 데이터 기반 취향 맞춤형 제품 선보일 것

최은희 텐바이텐 대표




초등학교 때부터 건축사가 꿈이었다. 평면에서 입체적인 건축물이 창조되는 과정이 신기하기만 했다. 건축사가 되겠다는 간절한 열망을 안고 한양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건축설계사무소에 입사해 죽도록 일했다. 평생의 꿈인 건축설계사로 살 수 있었지만, 창업하자는 대학 동기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삶으로 들어왔다. 디자인·아이디어 상품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 ‘텐바이텐(10×10)’ 최은희(44) 대표의 이야기다.

◇건축사를 꿈꿨던 평범한 소녀

대리석 가공업을 하는 부친을 따라 대구에서 부천으로, 부천에서 구리로 이사를 다녔다. 하교 길에 공사장을 지나다가 ‘누군가 일일이 지시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건물이 뚝딱 만들어질까’ 궁금증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여쭤 보니 도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평면 위에 여러 개의 선으로 그려진 도면에서 입체적인 건물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11살짜리 소녀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고, 도면을 그릴 수 있는 직업 ‘건축사’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게 됐다.

학창 시절 내내 전교 최상위권을 유지했지만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이 의대를 선택하는 것과 달리 자신이 오랜 꿈을 좇아 한양대 공대 건축학과를 선택했다. 동기 대부분이 남학생이었지만 오히려 괄괄한 성격의 그녀에게는 딱 맞는 환경이었다. 동기 6명이 뜻을 모아 ‘AIDS’라는 건축스터디모임을 만들었다. 건축의 목적, 사회적 의미 등등을 놓고 다양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제대로 배우면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기대를 안고 입학한 햇병아리였죠. 하지만 건축에도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어요. 예컨대 폭력조직의 깡패가 돈을 내놓고 집을 지어달라고 하면 설계해야 하는가. 달동네를 싹 밀고 골프장을 만든다고 하면 해야 할 것인가 같은 문제들이었죠. 전에는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트적이며 선한 직업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최 대표는 건축사가 “잘 쓰면 유용하지만 잘 못 쓰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칼’과 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듯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실력을 키웠다.

대학교 2학년 때 선배들의 졸업 전시를 보러 갔을 때의 최은희 대표의 모습.


◇첫 직장, 그리고 치열했던 5년

그녀가 첫 발을 내디딘 곳은 삼성 계열의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건축학도 사이에서는 꿈의 직장으로 정평이 난 곳이다. 과에서는 유일하게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아 면접을 보게 됐다. 회사가 그녀의 당찬 성격과 실력을 알아보면서 4학년 여름 방학에 입사가 결정됐다.

“원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동생들도 줄줄이 대학에 입학해서 집안 사정이 빠듯했지요. 어머니는 미안하지만 네가 동생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어쩔 수 없죠. 그게 장남장녀의 숙명인 걸요.”

1996년 1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그룹 연수에 참가했다. “군대처럼 일렬로 세우고는 얼차려를 주더군요. 전체 훈련을 지휘하던 간부가 이런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길래 손 들고 나갔죠. 어떤 이유로 이렇게 훈련시키는 건지 설명도 없이 막무가내로 공포를 주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따지니까 난리가 났어요. 그 후에는 저에 대해 소문이 그룹 전체에 퍼지면서 한달 간의 연수를 끝내고 회사에 출근하니까 선배들이 모두 저를 알아보더군요.”

정신 없이 바쁜 건축사무소의 생활이 시작됐다. 대형 프로젝트를 맡으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그 프로젝트에 팀원 모두가 매달려 씨름을 하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행복했다.

그녀는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지만 오히려 입사한 후에는 일이 무척 재미 있었다”면서 “건축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히 회사 안에 있는 건축전문도서관은 그녀에게는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다. 일반인은 소장하기 어려운 건축 전문서적이 잔뜩 있었고, 보유하지 않은 서적이면 신청만 하면 회사가 구매해서 비치해 뒀다. 7시 출근, 4시 퇴근이 원칙이었지만, 4시 정시 퇴근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빨라야 10시, 일이 몰릴 땐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당시에도 구리에서 살고 있을 때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야 출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1999년 5월의 어느 날 최은희 대표. 하루 대부분을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일하는 게 무척이나 좋았던 시절이라고 회고한다.


그렇게 5년을 근무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녹록한 건 아니었다. 가장 힘들었을 건 역시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조조정의 칼날이 휘몰아쳤던 때였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의 전체 직원이 1,000여명이었는데, 250명으로 줄이라는 구조조정안이 떨어졌다. 최 대표가 몸 담고 있었던 팀도 23명이었지만 5~6명만 남고 내보내야 했다.

“2년만 더 버티면 건축설계사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인 근무연한 5년이 되는데 이렇게 나가야 하는 건가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최종 명단이 발표됐는데 막내인 제가 아닌 선배 언니들이 나가게 된 거에요. 나중에 들으니 한 선배가 저를 대신해서 자신이 나가겠다고 했다더군요.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래서인지 그 이후에는 입을 악물고 더욱 열심히 일에 매진했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 몫까지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가슴 깊이 새겨졌던 거죠.”

◇독수리 5형제, 창업에 나서다

하루하루 정신 없이 살던 2000년 가을, 우연히 나간 동기 모임은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당시에도 IMF의 충격파가 가시지 않아 동기들 사이에서는 건축사로 평생 살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았다.

“5년, 10년이 넘게 걸리는 건축 프로젝트 말고 고객과 실시간 소통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라는 얘기가 오갔고, 온라인에서 인테리어 소품을 팔아보자는 아이디어가 장난스럽게 나왔어요. 그땐 그냥 불안감에서 나온 현실감 없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헤어졌죠.”

2009년 9월 창업 후 꼭 9년 만에 텐바이텐 창업 멤버끼리 떠난 첫 번째 엠티, 누군가는 회사에 남아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얼마 있다가 동기인 이창우 대표(지금은 29cm 대표)가 제대로 하자며 연락이 왔고, 학창 시절 스터디모임을 하면서 몰려 다니면서 ‘독수리 5형제’라는 별칭까지 얻은 이들 5명이 한데 모이게 됐다. 이 중에서 여자는 최 대표가 유일했다. 2주에 한번씩 모이면서 자금 확보 계획, 사업의 기본 정의와 방향, 브랜드 방향성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인테리어 소품이라는 업종을 남자들이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최 대표에게 주어진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창우 전 대표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창업 준비에 나서면서 속도가 붙었다. 건축설계사무소 다니던 이문재 이사가 합류했고, 백우현 이사(지금은 아이띵소 대표), 서동석 RND팀장 등이 차례로 힘을 모았다. 최 대표는 2001년 8월 사표를 냈다.

“당시에는 뭔가 대단한 걸 이룬다는 생각보다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번에는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보내자는 생각이 컸어요. 딱 2년만 한다. 2년만 내 인생에 휴가를 준다는 개념이었죠. 건축밖에 몰랐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구할 수 있는 시간으로 2년을 주겠다는 거였습니다.”



최 대표가 합류하자마자 큐브커뮤니모우션으로 법인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텐바이텐이라는 서비스명이 탄생한 과정도 독특했다. 논현동에 있는 건축전문서점에 가서 서비스명을 찾던 중 ‘10명이 건축가가 서로 다른 10개의 하우스를 소개하는 책’을 보고는 “바로 이거다” 싶었다고 한다.

◇10가지 즐거움을 표방한 텐바이텐

“10가지 스타일로 10가지 즐거움을 준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디자인소품 전문 사이트 텐바이텐은 10월 10일 문을 열었다. 창업자금도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한 구좌의 한도를 100만원으로 정해놓고 주변 지인들에게 사업 계획서를 보여주고 투자를 받는 방식이었다. 3,000만원이 모였다. 창업자들이 갹출한 돈까지 합해 총 5,000만원을 들고 선배가 하는 설계사무소 한 귀퉁이에 사무실을 차렸다.

1996년 인터파크가 문을 연 이후 종합 쇼핑몰 시장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디자인소품 전문 쇼핑몰은 낯선 개념이었다. 더구나 자본이 충분하지 않으니 원하는 제품이 있어도 충분히 매입하기 어려웠다. 치열한 토론 끝에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하는 공예과 학생들을 공략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화여대 공예과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예비 졸업생을 소개 받아 그들의 작품을 촬영해 상품으로 올리는 방식이었다. 얼마 안 가 디자이너 사이에서 입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창우 대표가 웹디자인을 맡았고, 최 대표가 마케팅과 제품 소싱을, 이문재 이사가 물류와 배송을, 백우현 이사는 회계를 책임졌다. 하지만 온라인몰은 시스템 최적화가 핵심이었다. 당시 하나은행에 다니고 있었던 서동석 이사가 퇴근하고 들러 밤새 작업해주며 겨우 버텼지만 임시방편이었다. 어느 날은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여기 작업이 밤새 하는 것만으로 끝날 수준이 아니라 회사에 사표를 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텐바이텐은 독수리 5형제의 출격과 함께 본격 닻을 올렸다. 지분을 각자 20%씩 똑같이 나눠 가졌고 의사결정도 만장일치제를 도입했다. 이창우 대표가 처음에 대표를 맡게 된 사연도 독특했다. 일생에 한번쯤 대표이사를 하고 싶다는 동기의 간절한 출사표에 4명이 힘을 실어준 것이다.

초창기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힘입어 히트작이 쏟아졌다. 이대 공예과 학생의 풍경 작품에 사탕을 넣어서 ‘세상에서 하나 뿐인 밸런타인 선물’이 탄생하는가 하면, 홍대 앞에서 도자기 주얼리를 만드는 김란영 작가가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만든 컵에서 영감을 얻어 메시지 컵이 세상에 나왔다.

은으로 만든 핸드폰 줄도 온라인몰에 올린 지 30초 만에 완판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렇듯 히트 제품이 늘면서 입점 품목도 차츰 늘어갔다.

텐바이텐의 성공 포인트는 ‘감성마케팅’과 ‘독특한 디자인’에 있다. 마치 종이 잡지를 온라인에 옮겨온 것처럼 시각적인 사이트를 만들었다. 특히 다른 사이트에서는 볼 수 없는 개성적인 제품이 입점하면서 성장 궤도를 걷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텐바이텐은 디자이너들에게는 물건을 잘 팔 수 있는 곳, 고객에게는 자신의 기호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됐다”면서 “젊은 고객들은 작은 소품이라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것을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이런 니즈를 제대로 공략한 것이 텐바이텐”이라고 소개했다.

온라인몰에서 시작했지만 오프라인 접점을 통해 고객의 경험을 높이고, 이들과의 소통을 늘리겠다는 전략에서 2004년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현재 텐바이텐 1호점인 대학로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여곳에 달한다.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내면서 고객들이 직접 경험하는 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어요. 그래서 젊은층의 유통 인구가 많은 대학로에 매장을 내야겠다고 결심했죠. 원하는 입지의 공간이 있었지만 1층 전체를 임대할 만큼 저희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아 모서리 방향 11평만 쓰겠다고 건물주께 부탁을 드렸어요. 모 출판사 대표님이 건물 소유주이신데, 다행히 저희 요청을 들어주셔서 대학로 매장 1호점이 론칭하게 됐던 거죠. 당시 한달 매출이 7,000만원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어요.”

하지만 매장 근처에 경쟁 업체들이 잇따라 매장을 내면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기도 했다. “당시 길 건너편에 40평 규모의 1300K 매장이 생겼고, 80평 규모의 핫트랙도 들어왔습니다. 정말 엄청난 위기였죠. 매출이 곤두박질치더니 반토막이 나고 말았어요. 어떻게 할까 의논한 끝에 매장을 넓혀 전면전을 펴보자는 결론을 내렸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경쟁업체들이 매장을 철수하면서 텐바이텐 대학로점은 지금까지도 젊은 고객 사이에서 디자인 소품 제품의 성지와도 같은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텐바이텐의 감성이 묻어나는 홈페이지.


◇텐바이텐의 미래를 그리다

최 대표가 텐바이텐호의 선장이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3년이었다. 당시 GS홈쇼핑이 온라인사업 강화를 위해 텐바이텐의 지분 80%를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됐던 때다. 최 대표는 ”규모의 경제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필요에 의해 대기업의 손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창우·백우현 대표는 각각 다른 브랜드를 론칭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현재 상품수는 45만여 개, 누적 고객 350만여명, 입점 파트너 1만여곳에 달하고 올해 매출은 1,000억원(취급액 기준)을 돌파할 전망이다. 상품 구성도 기존 인테리어 소품에서 더 나아가 가구, 가전, 패션의류까지 다양해졌다. 랭키닷컴에 따르면 디자인소품쇼핑몰 분야에서 텐바이텐은 지난 15년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 대표가 그리는 텐바이텐의 미래 모습은 무엇일까. 그는 “덴마크나 노르웨이에선 월급을 한 푼 두 푼 모아 디자이너 작품을 사 모으는 것을 취미로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면서 “선진국일수록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디자인에 투자를 하고 이런 디자인 소품들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규정짓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10~20대 학생들을 보면 다이소에서 생필품을 싸게 사는 것에 만족하면서도 자신의 감각이나 취향을 나타낼 수 있는 디자이너 제품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고객들은 매스한 유행보다는 나한테 맞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마련이거든요. 이런 변화 속에서 텐바이텐은 고객들이 자신의 기호(taste)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조차 몰랐던 자신의 취향과 감각, 기호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기쁨을 누리는 조력자가 되고 싶은 거죠. 그런 측면에서 텐바이텐은 소모품을 파는 일반 매장과 전혀 다릅니다. 나 자신에게, 혹은 특별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시그니처 음료’와도 같은 공간으로 자리를 잡겠습니다.”

최 대표는 세계적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처럼 좋은 제품에 대해 펀딩을 받거나 라이선스 판권을 확보해 새로운 제품군을 구성하는 방식 등을 고려 중이다. 그는 “350만명에 달하는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들이 어떤 디자인을 원하고,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분석한 뒤 제품 기획부터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는 텐바이텐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다. 최 대표는 “옴니채널(소비자가 온라인, 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를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을 통해 오프라인 접점을 늘리는 전략으로 오는 2020년까지 1,500억원 매출을 올리겠다”고 자신했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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