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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材與不材之間<재여부재지간·쓸모 있음과 없음의 사이>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이분법 넘어 '사잇길' 제시한 장자

융복합·통합적 사고 혜안 드러내

내년 문이과 통합 교육 첫 시도

무한한 가능성 넓히는 기회 되길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계획을 세울 때 다양한 요소와 변수를 충실히 고려하면 오류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이론적으로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하나의 사안을 다양하게 검토하다 보면 일이 복잡하게 뒤엉켜 쉬운 일도 어려운 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사태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양분하거나 “하느냐 마느냐”라는 결단으로 압축하려고 한다. 고려해야 할 사항을 둘 또는 하나로 압축하면 복잡하던 일도 간단하게 보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분법은 사고의 경제성과 간단 명료화로 인해 널리 환영받아왔다. 그리고 일의 발생과 전개가 일정한 패턴으로 정해져 있으면 이분법은 미래를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예컨대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대학의 진학과 취업의 분야도 그에 맞춰 할 수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과거와 달리 여러 분야가 뒤섞이는 융복합과 통합이 중요한 사회 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산업과 기술에서도 업종이 다른 기업이 서로 다른 경영과 기술 등을 결합해 신기술·신제품·신서비스를 개발해 새로운 분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 각광 받고 있다. 예컨대 이전의 냉장고는 식재료와 음식을 상하지 않게 단순히 보관하는 기능에 충실했다면 지금의 냉장고는 요리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최고의 맛을 지속하는 기능을 척척 해내고 있다. 따라서 냉장고는 제한된 기능을 해내는 전자 제품에 한정되지 않고 사람의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특성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고등학교의 현장도 더 이상 문과와 이과를 나눠 교육하던 지난날의 관행을 탈피해 2018년부터 문·이과 통합 교육을 실시하려고 한다.

우리는 장자가 겪었던 일화를 통해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해 미래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장자는 제자와 강과 숲을 돌아다니며 현장에서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날 장자가 숲속을 거닐다 보니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많은 나무를 보았는데 벌목꾼들은 그 나무를 보고 그냥 지나쳤다. 장자가 궁금해서 벌목꾼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벌목꾼은 그 나무가 우람하고 무성하게 보이지만 옹이가 많아 쓸모가 없어 벨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숲을 거닐다 날이 저물어 장자 일행은 숲속의 친구 집을 찾게 되었다.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장자를 위해 집에서 기르던 거위 요리를 대접하려고 했다. 이때 요리사가 울 수 있는 거위와 울지 못하는 거위 중 어느 걸 잡아야 하는지 묻자 장자의 친구는 울지 못하는 거위를 잡으라고 말했다.



다음날 장자가 친구를 떠나자 제자가 어제부터 품었던 한 가지 질문을 장자에게 던졌다. “나무의 경우 쓸모가 없었던 덕분에 벌목꾼이 베지 않아 천수를 누리게 되었지만 거위의 경우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식재료의 대상이 돼 일찍 죽게 되었습니다. 두 일화 중 어느 한쪽만을 경험하면 나무처럼 살거나 거위처럼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두 일화를 다 겪고 나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는 어찌 보아야 합니까.” 제자의 질문을 받고서 장자도 처음에 당황했을 수 있겠지만 그는 예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제3의 길을 제시했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 서 있겠다.”(처부재여부재간·處夫材與不材之間)

제자는 이분법에 갇혀서 사태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파악했다. 반면 장자는 이것과 저것의 이분법을 수용하면서도 이분법을 넘어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얼핏 보면 장자가 무책임하고 말장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꼼꼼히 생각해보면 장자는 융복합 사고의 혜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다른 가능성을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면 다이슨처럼 전선 없는 선풍기를 생각할 수가 없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사이’는 이분법에서 없는 세계이지만 이분법을 벗어나면 무한히 확장 가능한 기회의 공간으로 탈바꿈될 수 있다. 2018년부터 시행될 문·이과 통합 교육은 이러한 ‘사이’를 넓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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