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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트럼프가 선보인 '양보의 기술'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트럼프, 美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친이스라엘 지지층에만 '선물'

정치적 셈법에 의한 양보 아닌

이·팔 평화 정착시킬 '외교'를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협상의 달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엉뚱한 짓을 했다.

까다로운 협상에서 상대방에게 어떤 반대급부도 얻어내지 않은 채 서둘러 선수를 치며 통 크게 양보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트럼프의 협상 방식이라면 옛 동료들이 그를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으로 평가하지 않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같은 사실 자체를 반박하거나 트럼프의 결정을 폄훼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은 86개국 모두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둔 것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이뤄질 최종 합의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주민들 역시 예루살렘을 그들의 수도라고 주장한다. 그곳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선조로 떠받드는 유대교와 이슬람교·기독교 등 3대 종교의 성지를 가득 품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새로운 정착촌이 들어섰음에도 예루살렘의 아랍인 수는 시 전체 인구의 3분의1을 훌쩍 넘어선다.

이로 인해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물론 유럽인과 아시아인들에게 예루살렘의 공식 지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라는 맥락에서 결정돼야 할 문제로 여겨졌다.

만약 이번 조치가 더욱 큰 전략의 한 부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트럼프의 발표는 이스라엘의 중대한 정책 변화와 결부해 치밀하게 작성된 계획이거나 쌍방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 마련된 일련의 조치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결정은 그의 국내 핵심 지지기반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친이스라엘 기부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안된 일회성 조치로 보인다. 유일한 전략적 측면이라고는 앨라배마에서 열리는 상원의원 보궐선거를 하루 앞두고 공화당 후보인 로이 무어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이 전부인 듯 보인다. 이건 외교가 아니다. 뚜쟁이 짓일 뿐이다.

이 문제의 해법은 분명 존재한다.

팔레스타인 측에 동예루살렘 지역의 일부를 떼줘 수도로 선포하게 허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트럼프 역시 이런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트럼프가 내린 선택의 논리는 더더욱 종잡기 어렵다.

그는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수억 명의 아랍인들, 그리고 거의 모든 지역의 여론을 적으로 돌렸으나 이렇다 할 긍정적 성과는 얻지 못했다.



중국과 유럽의 동맹국들, 교황,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국왕들 모두 강력한 반대를 천명할 때는 정책의 당위성에 의문을 던질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대사관의 잠재적 예루살렘 이전은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미국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고안된 상징적 제스처였다.

이스라엘 학자인 요아브 프로메르는 지난 1995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맞서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전에 뛰어들 채비를 하던 밥 돌이 자신을 열렬한 이스라엘주의자로 꾸미려고 노력한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의정활동 중의 투표 기록 때문에 친이스라엘주의자로 행세하기 어려워지자 돌은 상징적 이슈에 매달리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미국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법’이다. 이 법은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에게 6개월간의 웨이버를 인정한다는 단서 조항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재임 중 6개월마다 한 번씩 이 법안의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화협상을 타결하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할 칩을 그냥 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중동 지역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리라고 예측하지만 결국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중동 지역의 슈퍼파워이고 주변국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장벽과 검문소·정보활동 등으로 팔레스타인 영토를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인에게 테러리즘은 이미 사라져버린 문제에 불과하다.

진짜 위험은 이번 결정이 무력하고 분열된데다가 기능 장애까지 일으킨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치솟는 좌절감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데 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훌륭한 리더십을 갖지 못한 팔레스타인은 지금도 지도부가 공백 상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자체적인 국가 없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간다. 현대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유니크한 조건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계속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며 민주주의의 참된 특성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완전한 참정권을 갖지 못한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통치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민주적 시스템과 문화의 한복판에 달라붙어 있는 암세포 덩어리는 이스라엘계 아랍인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커질 것이다.

이스라엘이 마치 방글라데시처럼 보이는 팔레스타인에 의해 둘러싸인 스위스처럼 보이는 날이 올 것이다. 언젠가 이들 사이의 소득과 지위·참정권의 불평등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양극화와 분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주에 나온 미국의 조치는 이 같은 균열을 심화하고 갈등을 악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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