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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세계 에너지 수도' 휴스턴의 비결

손철 뉴욕특파원





지난달 미국 남부의 최대 도시 텍사스주 휴스턴을 방문했다. 휴스턴은 동부의 뉴욕, 서부의 로스앤젤레스, 중부의 시카고에 이어 인구 등 규모 면에서 미국 내 네 번째로 큰 도시다. 휴스턴 국제공항인 조지 부시 공항에 내리자 10분도 안 돼 곳곳에서 ‘세계의 에너지 수도’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담긴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워싱턴DC에서는 ‘세계 정치의 수도’라는 소개가 빠지지 않고 뉴욕에 살다 보면 ‘세계 경제·금융의 심장’도 모자라 미디어·패션·광고 분야에서도 “뉴욕이 메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데, 이곳에서까지 ‘세계의 수도’ 운운하는 것이 적잖이 거슬렸다.

워싱턴DC나 뉴욕이야 세계 정치·금융계에서 공고하게 쌓아온 위상이 간단하지 않다. 하지만 미국 주요 유전지대가 텍사스에 몰려 있고 몇몇 글로벌 석유메이저들이 둥지를 틀었다고 해서 휴스턴이 세계 에너지 수도를 자처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천연가스 최대 매장량을 보유한 러시아의 특정 도시나 지역이 세계 에너지의 수도임을 자칭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엑손모빌이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시가총액은 3,500억달러(약 390조원) 정도로 사우디 국영석유사 아람코가 증시에 데뷔할 경우 예상되는 시장가치(2조달러)에 비하면 6분의1 수준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쌓은 피상적인 지식은 휴스턴 주변의 셰일 혁명 현장들을 직접 둘러보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텍사스는 물론 인근 오클라호마·뉴멕시코 등의 셰일 광구는 유가가 40달러선까지 떨어질 때는 생산성 높은 유정들만 가동하고 생산량이 적은 곳은 닫아 놓았다가 유가가 오르면 바로 뚜껑을 열고 신 나게 원유와 가스를 퍼올리고 있었다. 화석연료인 셰일가스·오일은 미국을 원유·가스 수입국에서 단숨에 수출국으로 돌려놓았고 하루 1,00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는 미국 경제의 호시절을 뒷받침하며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줄였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추산으로 미국의 셰일 가채매장량은 중국·아르헨티나·알제리에 이어 세계 4위지만 생산량은 단연 1위다. 그 비밀은 무척 간단하다. 100여년 전부터 텍사스 유전지대에서 원유 생산을 위해 땅을 파던 채굴 기술을 꾸준히 향상시켜 고도의 시추 능력과 생산 기술을 확보한 것이 비결 아닌 비결이다. 현지 셰일 광구의 한 엔지니어는 경쟁력의 원천을 묻자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했을 뿐”이라고 했다. 미국이 기후변화 속에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으면서도 화석연료 개발 능력을 죽이기는커녕 연구개발에 계속 투자하며 인재들을 키워온 것이 오늘날 천문학적 경제·안보 효과를 만들고 휴스턴이 당당하게 세계 에너지 수도라고 명함을 내놓는 이유였다.

한국에서 벼락 치듯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광장의 함성에 밀려 국가백년대계인 에너지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불안하고 안타깝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원전 기술과 경쟁력을 세계 일류로 끌어올리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현장기술자들과 과학자·기업인·공무원들을 한꺼번에 적폐의 일부분으로 모는 것은 미래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차단하는 것이다. 적폐라는 말이 박근혜 전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를 물타기 하려 고심 끝에 찾아내 정권 차원에서 밀었던 ‘과거’를 새긴다면 에너지정책이 실용과 실제가 아닌 이념과 구호에 휩쓸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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