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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업승계 돕는 선진국, 가업승계 막는 한국

박상근 세무회계연구소 대표





1960~1970년대에 사업을 시작한 창업 1세대들이 고령에 접어들었다. 이들은 어렵게 키운 회사를 대(代)를 잇는 명문기업으로 만들고 싶지만 까다로운 가업승계 요건에 발목이 잡혀 있다. 중소기업청의 ‘2016년 중견기업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2,979개 중견기업 중 78.2%는 아예 가업승계 계획이 없고 14.1%만이 이미 가업승계가 끝났으며 7.7%는 이를 계획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72.2%가 가업승계의 최대 걸림돌로 상속·증여세 부담을 꼽았다.

가업승계를 도우려면 최우선으로 상속세율을 낮춰야 한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5.4%)보다 2배 높다.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이다. 여기에 최대주주의 경우 30%를 할증한 65%의 세율이 적용된다. 상속세를 내고 나면 기업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사업용 자산이 줄어든다. 가업으로 내려오던 기술과 경영 노하우, 일자리가 사장(死藏)될 위험에 노출된다. 현행 상속세율을 국제 수준으로 낮추지 않는 한 한국에서 100년 기업은 고사하고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도 나오기 힘들다.

정부는 가업승계를 돕기 위해 지난 1997년 ‘가업상속공제제도’를 도입했다. 그동안 공제한도액은 꾸준히 확대돼왔지만 이 제도를 활용한 기업은 연 50~60개에 불과하다. 까다로운 공제 요건 때문이다. 반면에 독일은 공제제도 활용 기업이 우리의 280배에 달하는 연평균 1만7,000여개 정도다.

현행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보면 매출액 3,000억원 이하 기업으로 상속개시일 현재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가업을 경영하고 상속인이 상속개시일 2년 전부터 가업에 종사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 상속세 과세표준 계산 시 가업상속재산가액을 공제하되 피상속인의 가업영위기간에 따라 200억원·300억원·500억원의 한도가 있다. 상속 후 10년 동안 가업상속재산을 처분할 수 없으며 업종전환이 안되고 상속 당시 고용 규모를 유지해야 하는 등 사후관리 요건이 까다롭다. 한국의 가업상속공제 요건은 무려 13가지, 가업상속공제를 받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제조업 강국 독일은 가업상속공제 요건과 공제 한도가 없다. 다만 상속 후 5년간 상속 전 고용 수준을 유지하면 상속세의 85%를, 7년간 유지하면 100% 면제받는다. 미국·영국·일본 등도 가업상속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세제로 뒷받침한다. 선진국은 가업상속을 제2의 창업 또는 기업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적극 돕는데 한국은 이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고 규제한다.

독일 제조업 경쟁력은 벤츠(Benz), 머크(Merck), 밀레(Miele)와 같은 100년 장수기업에서 나온다. 이를 탄생시킨 원동력은 기업 규모로 혜택을 차별하지 않는 상속세제에 있다. 그런데 한국은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연매출 3,000억원 이하 중견기업으로 제한한다. 한국 상속세제는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이라는 성장사다리 중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가는 사다리를 끊어놓았다. 규모의 경제를 억제하고 초연결과 융·복합이라는 정보기술(IT) 시대에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가업 상속인이 상속 후 10년 이내에 상속 재산을 처분하거나 주된 업종을 변경하는 경우 가업상속공제로 감소된 상속세를 추징한다. 또한 가업 상속인은 10년 동안 기존 생산설비를 자동화하거나 공정을 개선할 수 없다. 정규직 직원 수가 줄어들어 가업상속공제로 혜택을 본 상속세가 추징되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 제조업을 가업으로 상속받은 상속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신산업으로의 업종 전환이 불가능하다. 현행 상속세법은 가업 상속인의 자율과 창의를 묶어놓고 혁신을 못하게 한다. 이런 ‘구시대적이고 낡은 상속세제’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 ‘기업의 지속 성장’과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현행 가업상속공제제도는 기업 규모 요건, 사후관리 요건을 중심으로 현실에 맞게 대폭 개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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