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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hat] 빨리 가고 싶은 공룡…함께 가자는 병아리

■ '망 중립성 폐기' 놓고 둘로 쪼개진 美





두 도시를 잇는 국도가 있다. 이 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소형차든 대형차든 상관없이 따로 돈을 내지 않으며 같은 제한속도가 적용된다. 그런데 점점 차량이 늘어나고 길이 막히기 시작하면서 운전자들의 불만도 서서히 커지고 있다. 그러자 도로관리 회사는 비싼 통행료를 내더라도 빨리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를 만들고 차량 크기에 따라 차등 요금을 부과해 건설·관리비를 충당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많은 차량 운전자들은 고속도로보다 느리더라도 국도를 넓혀 모든 차량이 함께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찬성

트럼프 “공공재 No…시장논리대로

통행료 더 내면 급행차선 달려야”

“IT공룡 입지 더 단단해져” 전망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을 유지할지 폐기할지를 두고 전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불을 붙인 이 논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로’격인 통신망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 논란의 결론에 따라 정보기술(IT)·미디어 산업의 지형도 뒤바뀔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 중립성 폐기 결정을 내리자 뉴욕주 등 일부 지방정부는 즉각 폐기 반대 소송을 제기해 최소 1년여간 소송전이 불가피하게 됐다. 아울러 민주당 지지자들과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이 문제를 내년 11월 중간선거 의제로까지 끌고 갈 채비를 하고 있어 망 중립성을 둘러싼 여진은 오는 2018년에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5년 FCC가 제정한 망 중립성 원칙은 통신망을 운영하는 사업자(ISP)가 데이터의 내용·양 등에 따라 속도나 이용료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통신망이 공공재와 같은 성격을 가졌다고 보고 모든 서비스나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본에 상관없이 같은 도로를 달리게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망 중립성 원칙 아래서는 소셜미디어서비스(SNS) 공룡인 페이스북도, 갓 태어난 스타트업도 같은 도로에서 같은 속도로 달린다.





반대

“스타트업 기울어진 운동장서 경쟁”

뉴욕 등 일부 지방정부 철회 소송

내년 중간선거서 치열한 공방 예고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통신망은 공공재가 아니며 시장 논리로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을 들고 나왔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집권 공화당은 FCC의 망 중립성 폐기 결정에 이어 이런 원칙을 담은 ‘열린 인터넷 보호법(Open Internet Preservation Act)’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아이디어는 추가 비용을 낸 플랫폼 사업자들이 고속도로와 같은 ‘급행차선(fast lane)’에서 달릴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통신망사업자들이 플랫폼사업자들과의 관계에 따라 일방적으로 통신속도를 느리게 하거나 망을 끊어버릴 수 없도록 규제해 망 중립성 폐기로 인한 불공정행위를 봉쇄하겠다는 방침을 더했다.

통신망에 대한 시각 전환은 통신사업자들의 주장에서 비롯됐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사물이 통신망에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이 도입되고 미디어 지형이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기반 주문형 서비스 위주로 재편되면서 최근 데이터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버라이즌·AT&T 등 통신사업자들만 수요 폭발에 대응한 투자 책임을 계속 홀로 질 수는 없는 만큼 통신망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 콘텐츠 사업자들에 추가 비용을 요구해 이를 재원으로 통신사의 투자가 지속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 마디로 빨리 달리고 싶어하는 대형차량을 위해 비싼 통행료를 받아 건설·관리비를 충당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망 중립성 찬성론자들은 이럴 경우 고속도로에만 투자가 집중되는데다 높은 통행료를 부담할 수 없는 스타트업 기업들은 출발부터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즉 고속도로만큼 크고 넓지는 않더라도 국도를 수리해 차선을 하나 더 만드는 편이 온라인 세상에서 모두 공평하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의회·법원·지방선거에서 끊임없이 이어질 망 중립성 논란의 결론은 미래 미국의 IT·미디어 산업 지형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망 중립성이 최종 폐기되면 통신사업자들은 서비스와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경쟁력 우위를 갖추게 돼 콘텐츠 시장에서도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통신사업자들이 잇따라 미디어 기업 인수를 추진하며 콘텐츠 확보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월트디즈니에 패하기는 했지만 미국 1위 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은 복합미디어그룹인 21세기폭스 인수를 막판까지 타진했었다. 2위 사업자인 AT&T도 미디어그룹 타임워너 인수를 위해 지난달부터 미 법무부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서비스·플랫폼 업계의 지형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초기 우려와 달리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 기존 사업자들은 진입장벽을 쌓으며 지위를 더 공고하게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대신 신생 서비스가 탄생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돈을 쓰거나 통신사업자들과 별도 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스타트업들이 기존 공룡들과 경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망 중립성 폐기는 페이스북·구글·아마존 등 엄청난 재력을 가진 대형회사들에 결국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망 중립성 폐기로 고객 확보를 위한 통신사업자들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5G 같은 초고속통신망에 대한 투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통신속도 조사기관인 스피드테스트는 현재 미국의 모바일통신 속도가 중국 등에도 뒤진 세계 44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동통신협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온 광대역통신망에 대한 투자는 2014년 784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줄고 있다. 협회는 “통신망 투자가 줄어든 시기가 망 중립성 원칙이 제정된 시점과 일치한다”며 중립성 폐기 결정에 힘을 실었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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