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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은평구립도서관]연신내 산비탈따라 차곡차곡 쌓아올린 '책의 성전'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은평구립도서관 전경. 독특한 외형 구조와 함께 노출 콘크리트 소재가 고대 신전과 같은 느낌을 풍기게 한다. /송은석기자


“자기가 사는 동네를 여행해보세요. 평소에 무심코 지나치던 동네 길, 건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보세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개론의 시작입니다.” 영화 ‘건축학개론’ 속의 건축 수업은 한 남성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런 과제를 제시하며 시작한다. 비록 영화라는 허구적 공간임에도 하나의 건축 수업이 이런 말과 함께 시작되는 건 우리 주변에는 도시의 기본 단위인 건물들이 수없이 들어차 있고 그곳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누비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의미 있는 건물과 공간을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의 도서관들이다. 도서관은 지역 주민의 삶 속에 깊숙이 녹아든 공간이면서도 최근 다양한 건축적 실험이 적용돼 호평을 받는 곳이 적지 않게 등장하는 분야다. 이런 도서관 건축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물이 ‘은평구립도서관’이다. 지난 2001년 10월 개관한 은평구립도서관은 당시 큰 특색 없이 뻔한 형태를 지니던 지역 도서관 건축 흐름을 뒤바꾼 일종의 효시와 같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은평구립도서관은 한국건축문화대상 등 국내 유수의 건축상에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은평구립도서관 측면. 경사진 대각선 지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층을 쌓아 올려 건물이 웅장하게 보이게 한다. /송은석기자


■고대 성전 닮은 도서관

박스형 건물 교차…독특한 입체감 만들어

노출 콘크리트로 수묵화같은 멋 연출도

‘불광 근린공원’ 내에 있는 은평구립도서관의 지번 주소는 ‘은평구 불광동 산59-32’다. 다시 말해 도서관이 동네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다. 산과 동네 도서관, 굉장히 이질적으로 보인다. 산이라는 공간이 지역 도서관이 들어설 입지로 좋은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평구립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 곽재환(현 칸건축사사무소 대표)은 입지적 단점을 건축적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설계를 보여준다.

은평구립도서관은 3층 높이의 사실 크지 않은 건물이다. 하지만 보통의 3층짜리 건물보다 훨씬 웅장한 느낌을 준다. 또 이 건물을 보는 사람 대부분은 도서관이 고대 신전과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는 각 단(층)을 쌓아 올리는 방식과 이에 따른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의 박스형 건물을 보면 평면의 대지 위에 수직을 이루는 방향으로 빈틈없이 층계를 쌓아 올리지만 은평구립도서관은 이런 방식이 적용되지 않았다. 대지 자체가 기본적으로 산의 지형을 타고 있기 때문에 보통의 방식을 적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에 경사진 산비탈 면을 따라 정면부에서 일정 공간을 비워가며 각 층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선보인다. 이렇다 보니 측면에서 보면 3층 높이의 한 박스형 건물에서 대각선으로 방향으로 반쯤 덜어낸 모습과도 같다. 대신 층을 구성하며 비워둔 공간에는 ‘응석대(凝夕臺)’라는 일종의 휴게 공간을 뒀다. 그리고 이 응석대를 만들기 위해 세운 사각의 구조물은 바깥으로 돌출시켜 놓았다. 그래서 외부에서 보면 이 자체만으로 하나의 별도 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바깥으로 튀어나온 응석대는 좌우 4개씩, 산비탈의 경사진 지형을 따라 쌓인 층을 따라 올라감으로써 이 건물 특유의 독특한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여기에 마감재로 쓰인 노출 콘크리트(별도의 마감재 없이 콘크리트를 외부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기법)가 이 건물의 매력을 더 높인다. 노출 콘크리트는 차갑고 딱딱해 보일 수도 있는 소재지만 이 건물에서는 독특한 구조와 함께 맞물려 고급스러운 멋을 더한다. 콘크리트의 회색빛이 도서관의 무게감을 입히는 듯하고 마치 고대 신전을 연상할 수 있게도 한다. 건축가 곽재환은 노출 콘크리트에 대해 “자기의 존재를 꾸밈없이 보여주므로 순수하고 담대한 의지의 이미지를 함축한다”면서 “표면의 무채색은 수묵화에서 느낄 수 있는 한아하면서도 번잡하지 않은 기운을 나타내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주변 경관과 자연을 담은 건축

도서관 한가운데 하늘 풍경 품은 정원 조성

‘응석대’엔 해가지는 불광동 풍경 그대로

은평구립도서관은 자연과의 합일에 크게 중점을 둬서 만든 건축물이다. 설계자 역시 ‘정보 도서관이기에 앞서 이 장소가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함께 융화할 수 있는 지혜를 일깨우는 배움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면서 자연과의 융화에 중점을 뒀음을 밝힌다.

우선 자연과의 연계에 신경을 쓴 부분은 도서관의 한가운데 자리한 중정(일종의 건물과 건물 사이의 마당과 같은 공간)이 있다. 이 중정은 반영정(反影井·그림자를 비추는 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는데 공간의 이름과 같이 하늘의 풍경을 품는 곳이다. 건축가는 이 공간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면 풍경을 비추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조성했다. 도서관의 독특한 외관을 이루는 기본 뼈대인 응석대 역시 자연과 연계에 신경 쓴 곳이다. 석양을 응접하는 장소라는 뜻인 이곳은 해가 지는 불광동의 경치가 포개지는 장소다.

도서관 가장 위층에 배치돼 뒷산과 연결되는 다리인 석교(夕橋)도 자연과 어우러지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이 다리는 불광 근린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던 지역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단 현재는 안전 등의 문제로 폐쇄된 상태다. 하지만 석교는 새 단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다리의 보수 공사와 함께 산책 공간에 자그마한 새로운 독서 공간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른바 ‘숲 속 도서관’이다. 새 공간의 탄생은 자연 속에서 녹아들고자 하는 도서관의 가치를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은평구립도서관의 중심부에 위치한 반영정. 이 공간은 그림자를 비추는 우물이라는 이름과 같이 하늘의 풍경을 품는 장소다. /송은석기자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은평구립도서관의 응석대 내부에서 바라본 불광동의 전경. 석양을 응접하는 장소라는 뜻인 응석대는 해가 지는 불광동의 경치와 어울리게 만들어졌다. /송은석기자


서울 은평구 불광동 은평구립도서관의 석교. 이 다리로 뒷산과 연결되게 조성됐지만 현재는 안전 문제로 폐쇄됐다. 이곳에는 ‘숲 속 도서관’이라는 새 공간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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