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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지킵시다] 식당·화장실 65%가 휠체어 경사로 없어...임산부석엔 청년이 버젓이

<1> 약자 배려는 사회적 예의
"임산부 배지 달았지만 자리 양보받은 적 없어"
노약자석 등 시설 놓고는 세대갈등으로 비화도
"약자 배려 안하면 공동체 무너져...시민의식 필요"

[예의를지킵시다] 식당·화장실 65%가 휠체어 경사로 없어...임산부석엔 청년이 버젓이
[예의를지킵시다] 식당·화장실 65%가 휠체어 경사로 없어...임산부석엔 청년이 버젓이
8일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의 한 객실에서 일반석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양 끝에 마련된 임산부석에 30대 남성 2명이 앉아 있다. /송은석기자


“맛집과 관광명소를 다니는 평범한 여행이 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친 1급 지체장애인 김태성(36·가명)씨에게 지난 연말 강원도 여행은 휴식이 아닌 고난의 연속이었다. 김씨는 집을 나서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역으로 데려다줄 저상버스의 배차간격은 길었고 탑승할 때도 시간이 오래 걸려 다른 승객들의 눈총을 받았다. 힘겹게 춘천역에 도착했지만 장애인 전용 리프트 차량이 없어 또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박씨는 “휠체어를 타면 어디를 가더라도 편한 곳이 없다”며 “대중교통은 물론 식당, 유명 관광지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있는 곳을 찾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예의를지킵시다] 식당·화장실 65%가 휠체어 경사로 없어...임산부석엔 청년이 버젓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인 실태조사(2016년)에 따르면 공중이용시설 가운데 출입구에 2층 이상 턱 또는 계단이 있는 경우는 무려 82.3%에 달했다. 82.8%는 점자블록을 설치하지 않았고 68.9%는 출입문에 휠체어 사용자 이용 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장애인 외에도 임산부·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배려가 필요하지만 오히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 영등포동에 사는 박모(67)씨는 얼마 전 지하철에서 당한 모욕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한 젊은 여성에게 “허리가 아파 젊은 사람이 자리를 좀 양보해달라”고 부탁했다가 아예 무시를 당했던 것이다. 박씨는 “나이가 들면서 허리와 다리 등 관절부위가 정말 안 좋다”며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건데 젊은이들은 단순히 꼰대질로만 보니 서럽다”고 말했다. 노약자석에 젊은 사람들이 앉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면서 노년층과 젊은이 간의 세대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실제 지난해 6월에는 노인이 버스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에게 발길질한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저출산으로 인구절벽을 걱정하고 있지만 임산부에 대한 배려도 인색하다. 정부가 지난 2013년 수도권 지하철 열차 한 칸당 2석씩 총 7,100개의 임산부석을 마련했지만 임산부 10명 가운데 4명꼴로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10월 임산부 3,212명과 일반인 7,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임산부의 40%가량이 ‘배려를 받은 경험이 없다’고 답했다. 서울 신림동의 주부 박모(35)씨는 “임산부 배지를 달고 다닌 지 2개월이 됐지만 지금까지 임산부석을 양보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배지를 달고 있어도 아무 소용 없는 것 같아 이럴 거면 아예 자리가 없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아쉬워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풍토가 척박하다 보니 임산부석이나 노약자석 등의 시설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서울시가 올해부터 임산부 전용주차구역을 도입하겠다고 하자 다시 논란이 일었다. 임산부 전용주차구역 설치를 반대하는 이들이 말 그대로 의무가 아닌 배려인 만큼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자리를 무작정 비워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또 이미 여성전용 주차공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임산부용까지 설치하는 것은 지나친 역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의를지킵시다] 식당·화장실 65%가 휠체어 경사로 없어...임산부석엔 청년이 버젓이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용이 들더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빠르게 압축성장을 하면서 개인적 측면이 강조되는 개인화 현상이 심화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경시하는 풍토가 만들어졌다”면서 “하지만 과도한 적자생존의 정서가 계속되면 공동체의 연대의식이 약해져 결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인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연민의 감정이라기보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이라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우인·최성욱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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