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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빨래집게

박규리 作





빨랫줄의 빨래를 빨래집게가 물고 있다

무슨 간절한 운명처럼 물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어느 더러운 바닥에 다시 떨어져 나뒹굴지도 모를

지상의 젖은 몸뚱어리를 잡아 말리고 있다

차라리 이빨이 부러질지언정 놓지 않는



그 독한 마음 없었다면

얼마나 두려우랴 위태로우랴

디딜 곳 없는 허공

흔들리는 외줄에 빨래 홀로 매달려

꾸득꾸득 마르기까지

빨래집게가 빨래를 물고 있는 동안, 빨랫줄은 처마 밑의 기둥과 마당귀의 나무를 칭칭 휘감고 있었겠죠. 목이 쓸리고 허리가 에여도 기둥과 나무는 내색도 없이 버티었겠죠. 물 먹은 빨래가 마당에 그림자 먹줄을 퉁기는 동안, 바지랑대는 불끈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겠죠. 시치미 떼고 새 떼와 잠자리 몇 마리도 앉히면서. 매달리는 재주밖에 없던 빨래는 점점 가뿐해져서 깃발처럼 나부꼈겠죠. 철부지처럼 속은 비었어도 빨래는 고마운 거라. 한사코 벌거숭이 당신을 물고 다니는 걸 보면.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물고 훌쩍 담 넘어 사라지는 것처럼.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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