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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한미FTA 재협상, 정직이 최선이다

손철 뉴욕특파원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말로 유명하다. 지난 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시작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세르반테스를 비롯해 수많은 인사가 강조해온 ‘정직(honesty)’이라는 한 단어다.

여기에는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거짓말들이 일방적인 FTA 재협상을 몰고 왔다는 점이 배경이 됐다. 게다가 한미 FTA에서는 한국 정부 역시 불투명에 가깝고 정직과는 거리가 멀었던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 체결의 주역임을 자화자찬해온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재임명될 것으로 알려지자 수많은 친문 시민단체가 공개 반대에 나섰던 이유 중에는 그가 영어에 능통하고 전략적일지는 몰라도 정직하지는 않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이 전격 개시됐을 당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좌측 깜빡이를 켜고 달리다 우회전을 했다’는 관전평이 확산됐으니 한미 FTA는 숙명적으로 ‘트릭’과 역사를 함께한 측면이 있다. 기자가 2006년 1월 초 “한미 FTA 협상 내달 개시”를 처음 알렸을 때도 정부는 “논의한 바 없다”고 뭉갰고 어렵게 타결된 협정이 빛을 보기도 전에 미국의 압력에 따른 ‘추가 협상’ 가능성이 제기될 때도 정부는 “그럴 일 없다”고 우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 당선인 신분일 때도 한국 정부는 막연히 FTA 재협상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다가 헛물을 켰다.

특히 2007년 세부적인 FTA 협상 결과를 알릴 때는 교묘한 포장으로 국민을 현혹했다. 일례로 미국 자동차 시장의 특수성을 상징하며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픽업트럭의 고율 관세(25%)를 FTA 발효 후 9년간 철폐하기로 했을 때 김현종 본부장은 당시 정부 부처를 통해 엄청난 성과를 올린 듯 홍보했다. 결과는 어떨까. 협상 타결 후 10년이 넘고 FTA가 발효된 지 6년이 다 됐지만 현대·기아차 등 국내 차 업계의 대미 픽업 수출은 제로다. 국내에는 사실상 단 한 대의 픽업트럭 생산능력도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픽업트럭의 관세 철폐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이후 2010년 한미 FTA 추가 협상에서 미국 측 픽업트럭 개방 시점을 7년 더 연기해주며 예공을 피하는 방패로 활용했다.



그런 픽업트럭의 미국 개방 시점이 내년으로 다가오자 트럼프 정부는 이제 와 못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며 FTA 개정 사항의 하나로 요구하는 모양이다. 픽업트럭은 지난해 미 자동차 시장 규모가 소폭 줄어든 가운데서도 판매가 오히려 증가한 차종인데다 포드·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 등 빅 3 업체들이 1·2·3위를 확고히 달리는 미 자동차 업계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경제적 효과가 아닌 정치적 과시를 목표로 FTA 재협상을 밀어붙인 트럼프 정부다운 일이기도 하다.

미국에 의미가 큰 픽업트럭 시장의 개방 시점을 추가로 연기하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 적잖은 양보지만 솔직하게 국민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못 내릴 결정도 아니다. 현대차가 픽업 생산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일본의 도요타나 닛산처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시장 개방의 실익이 거의 없을 가능성 등을 정직하게 고백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부담은 피할 수 없겠지만 여론이 이를 배척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국정 중대사를 놓고 뒤에서 논공행상의 부당 거래를 일삼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김현종 본부장이 한미 FTA 타결을 내세워 유엔 대사를 요구해 노 대통령이 들어줬지만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미 FTA를 둘러싼 오점들이 재협상 과정에서는 불식돼 양국 동맹이 비 온 뒤 땅이 굳듯 탄탄해지기를 바란다./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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