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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불편한 미술관] 명작 속 인권, 당당하거나 조롱하거나

■김태권 지음, 창비 펴냄
소인증 앓는 광대 초상 그리며
강렬한 눈빛으로 장애극복 묘사
개와 나란히 세워 노골적 비교도
인권 시각으로 미술작품 재해석

[책꽂이-불편한 미술관] 명작 속 인권, 당당하거나 조롱하거나

폭풍우 치는 바다 풍경 등을 통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특유의 화법으로 그린 19세기 영국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1840년작 ‘노예선’은 그의 여느 대표작과 마찬가지로 해질 무렵 성난 바다를 몽환적으로 그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 오른쪽 아래, 발목에 사슬이 묶인 채 바다로 던져진 흑인 노예의 발이 보인다. 달려든 갈매기떼가 만든 핏빛 파도가 태양의 붉은 빛보다 더 진하다. 1781년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실어나르던 배 안에서 전염병이 퍼지자 선장은 노예가 바다에서 사고로 죽으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떠올려 122명의 병든 노예를 여러 날에 걸쳐 바다로 던져 학살한다. 보험회사는 재판을 걸었고 선장은 ‘관리소홀’의 책임을 지고 돈을 받지 못했으나 살인죄로 기소되지는 않았다. 당시 법으로 노예는 화물일 뿐 인권이 존중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터너는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을 모티브로 ‘노예선’을 그렸던 것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영원불멸의 가치를 갖는 미술 작품의 이면에는 권력 앞에 찬양하고 재력 앞에 유순해지는 속성이 똬리틀고 있다. 고대부터 중세, 절대왕정과 부유한 귀족의 시대에도 미술은 주로 그런 경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화가들은 주목받지 못한 이면에 눈길을 돌리곤 했다.

[책꽂이-불편한 미술관] 명작 속 인권, 당당하거나 조롱하거나
왜소증으로 짤막한 다리를 내밀고 앉아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해 장애 극복의 당당함을 보여주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세바스티안 데모라의 초상’ /사진제공=창비, 프라도미술관 소장


국왕 부부와 어린 공주가 등장하는 ‘라스메니나스(시녀들)’로 유명한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45년 무렵 그린 ‘세바스티안 데모라의 초상’의 주인공은 공주의 놀이 친구인 소인증 광대다. 그림 속 인물은 길게 자라지 못한 짤막한 두 다리를 화면 앞쪽으로, 관객을 향해 당당히 뻗고 앉았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본다. 저자는 광대 데모라가 “이 사람이 나다. 나는 나를 받아들인다…비장애인끼리 서로 아무렇지 않게 대하듯, 장애가 있는 내 몸을 아무렇지 않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반면 르네상스 화가 안토니스 모르가 1560년경 그린 ‘그랑벨 추기경의 광대’는 다른 시선과 태도를 보인다. 몸이 작은 광대에게 일부러 큰 옷을 입히고 개와 나란히 세워 노골적으로 덩치를 비교하게 했다. 웃음거리가 직업인 광대의 표정은 어둡기 짝이 없다. 두 그림을 나란히 넘겨 보며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 나아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반성하게 된다.

[책꽂이-불편한 미술관] 명작 속 인권, 당당하거나 조롱하거나
왜소증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묘사한 안토니스 모르의 ‘그랑벨 추기경의 광대’ /사진제공=창비, 루브르박물관 소장


인권문제를 쉽게 대중적으로 설파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이 책은 ‘불편해도 괜찮아’ ‘불편하면 따져봐’ 등 앞선 책과 마찬가지로 표제에 ‘불편함’을 앞세웠다. 미술관에서 볼 법한 예술적 가치 높은 명작들도 그 안에는 차별적인 내용을 품는 경우가 있듯 일상에서 접하는 일들을 ‘불편하지만’ 한번 더 곱씹으며 바라봐야 인권과 관련된 문제들이 눈에 띄고 사회 전체 인권이 신장될 수 있다는 취지다.

폴 고갱의 ‘죽은 이의 유령을 본다’에서는 여성을 향한 남성의 왜곡된 시선이 적나라하다. 벌거벗은 채 침대에 엎드린 타히티 소녀가 옆눈으로 본 것은 유령이 아니라 자신을 “성적으로 만만한 존재”로 여겨 그 몸을 탐하는 늙은 백인 남자의 눈빛이었을지 모른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5년작 ‘여성의 세 시기’는 잠든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과 외면당한 듯 고개를 떨군 늙은 여인을 보여줌으로써 고령화 시대 노인 인권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1890년작 ‘재소자들의 산책’은 몸의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고흐는 줄지어 뱅뱅 돌며 강제로 운동 당하는(?) 재소자 중 한 사람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표현의 자유·인종주의·여성혐오·신앙문제와 성소수자 등 난제들을 실제로 쉽게 풀어 이야기한다. 1만6,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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