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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칼럼]아마추어 외교의 대가

논설실장

"반미 좀 하면 어때" 호기 부리다

노무현 정부 때 대미관계 큰 곤욕

문재인 정부도 절차정당성 따지다

사드·위안부·UAE 등 잇단 실책

국익에 최우선 둔 외교정책 펴야





제16대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 2002년 9월11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는 영남대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난 뒤 한 청중이 “(노 후보는) 왜 미국에 가지 않느냐. 반미주의자 아니냐”는 돌발 질문을 했다. 노 후보는 “바빠서 못 갔다”면서 “미국 한 번 못 갔다고 반미주의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그 뒤에 노 후보가 덧붙인 한 마디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 물론 농담조로 한 말이었지만 이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그가 ‘반미주의자’로 낙인찍히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치른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주의자라는 자신의 이미지로 인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노심초사했다. 노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때 외무부 장관을 지낸 한승주씨를 주미 대사로 임명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취했지만 미국과의 관계에서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 했다. 이라크 파병은 이 과정에서 나온 결정이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2003년 3월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안 된 노 대통령에게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참여정부는 불과 한 달 만인 4월 673명의 비전투병을 파병해야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국은 같은 해 9월 추가 파병을 요구했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고민하던 우리 정부는 10월18일 파병을 결정했다. 이를 두고 지지층에서마저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했다”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반미주의자라는 이미지 탈피가 더 급했던 노 대통령은 미국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16년 전 일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둘러싼 논란이다. 탄핵정국에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한 지 불과 20일 만인 지난해 5월30일 주한미군의 사드 발사대 4기 추가반입 보고가 누락됐다며 돌연 조사를 지시했다. 이후 정부는 1년 이상 시일이 소요되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 확보 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사드 배치를 최대한 늦추면서 중국을 설득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북한이 잇달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핵실험까지 강행하자 9월6일 임시배치라는 형식으로 부랴부랴 사드를 배치했다. 이 3개월여의 사드 논란으로 우리 정부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북핵 해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미 동맹에 심한 균열만 가져왔다. 그렇다고 중국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운 것도 아니다. 결국 국내 지지자들을 달래기 위해 무리수를 뒀지만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국가이익만 훼손한 셈이다.



사정은 한일 위안부 합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일본과 맺은 합의가 잘못됐다며 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섰으나 결국은 찜찜한 봉합에 그쳤다. 정부가 지지자들을 의식해 기존의 외교 현안들을 적폐로 몰아갔지만 막상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린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 간 합의를 절차 잘못을 이유로 없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쉬움은 있지만 지난 합의의 틀 안에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장 큰 요구가 무엇인가. 그것은 일본의 사죄를 받는 일이다. 기존의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의 행동을 요구하면 얼마든지 사죄를 받아낼 수 있다.

최근에 나라를 시끄럽게 한 아랍에미리트(UAE)와의 군사협력 논란도 비슷한 맥락에서 불거진 문제다.

외교에서는 국익을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한다. 어설프게 지지자를 달래기 위해 절차적 정당성만 따지다 국익을 해치면 큰 것을 잃게 된다. 어느 정권도 이전 정부로부터 좋은 것만 물려받을 수는 없다. 이전 정권의 좋은 점은 잘 살리고 잘못된 부분은 국익 관점에서 개선해나가는 것이 외교가 가야 할 길이다. 여기에 정파적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국가의 앞날만 어둡게 할 뿐이다. 정부는 지지자들의 눈치나 살피는 아마추어식 외교를 펴기보다 과연 무엇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정책을 추진해나갔으면 한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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