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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 천금 같은 기회인 서 검사의 성추행 폭로

검찰 철저한 수사 통해 발본색원
죄의식 없는 엘리트에 경고 필요
사회 건강회복 위한 계기 되기를

[권홍우 칼럼] 천금 같은 기회인 서 검사의 성추행 폭로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충격적이다. 내용도 그렇거니와 폭로 이후 전개가 놀랍다. 시간이 흐를수록 반성하고 정리되기는커녕 괴리가 커져 간다. 가해자라는 안태근 전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은 ‘사실이라면 사과하겠다’고 했지만 ‘기억에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당시 검찰국장이 성추행을 덮었다는 임은정 검사의 추가 증언에 대해서도 당사자로 지목된 최교일 의원은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어느 한쪽은 거짓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반사회적 범죄인 성추행에 대해 적어도 이번만큼은 검찰 스스로 진실을 가려내기 바란다. 검찰도 검찰이지만 우리 사회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특히 교회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종교를 말하는 이유는 서 검사로 하여금 방송에 출연해 과거 성추행을 폭로하게 만든 계기가 바로 종교행위인 탓이다. 서 검사는 “가해자가 최근 종교를 통해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다닌다고 들었다”며 “용서는 피해자에게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밀양’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아들의 유괴 살해범이 괴로워하거나 반성하는 기미도 없이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하자 어머니는 오열한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그를 용서하느냐 말이에요! 그럴 권한은 주님에게도 없어요”라고. 서 검사도 비슷한 심정이었으리라. 바로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영화 밀양에서 살인범은 자신의 죄를 알았다. 현실 속에서 안씨도 그랬을까. 세례식 동영상에서 그는 분명히 회개하고 용서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 검사에 대한 성추행이 회개의 목록에 포함돼 있었을까. 간증 동영상에는 ‘억울하게 당했다’는 회한과 오만했다는 반성은 엿보이지만 구체적인 잘못에 대한 명시는 없다. 하긴 성추행을 뉘우칠 리 만무하다. 기억에도 없다니까. 서 검사가 밝히지 않았다면 ‘회개하고 용서받은 안씨’는 당당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교회가 죄지은 자를 자유롭게 풀어줄 권능이 있는가. 피해자는 용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죄를 인식조차 못하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현상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이다. 사회 엘리트들이 죄의식 없이 죄를 짓고 법으로 금지된 돈 봉투를 돌리다 적발돼 처벌받으면 억울하게 여기는 사회가 존속한 사례는 동서고금 어디에도 없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무지(無知)를 가장 경계했다. 지식이 모자라는 게 무지가 아니라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무지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으로 변형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집대성한 플라톤은 보이지 않는 본질을 찾는 데 평생을 바쳐 서양철학의 뿌리를 심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점에서 ‘죄의식 없이 죄를 짓는 무리’는 자유시민으로서 폴리스(사회 또는 국가)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공자는 이들을 소인배로 봤다. 논어를 통해 “군자는 의를 중시하고 소인배는 이익을 쫓는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고 설파했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자본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근대 이후 서구사회의 발전이 기독교 윤리의 바탕에서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우리의 종교는 건강한가. 성서에서도 ‘자신을 속이는 죄’를 가장 큰 죄로 간주하고 ‘사단을 속이는 자’라고 하는데 우리의 종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에게 면죄부를 발급한 꼴이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열정·책임감, 균형적 판단, 시대정신을 강조하며 정치가의 유형 속에 법률가를 포함하지만 법조인 출신이 그토록 많은 우리 정치는 균형 감각과 시대정신에 얼마나 충만한지, 책임 윤리를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서 검사가 폭로한 검찰 내부의 성추행 사건과 그 중심인물의 행태는 어떤 기준으로도 용서받기 어렵다. 일말의 죄의식도 없는 사회 엘리트를 양산한 책임은 갑남을녀에게도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철학자의 한 사람인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생각하지도, 따지지도 않는 무사유에서 악이 자란다. 서 검사의 폭로는 우리 사회를 성숙하게 만들 수 있는 천금과 같은 기회다. 엘리트가 정신 차리고 자본주의가 팽팽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도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때다. 개신교도라면 항의(protest)까지 불사할 필요가 있다. 프로테스탄스의 어원 자체가 불의에 대한 항의에서 나왔다.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하는지 우리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자. 군자·시민·종교인의 기본 책무를 잊지 말자.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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