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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 휘트먼, 사면초가에 빠진 CEO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108년도 1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멕 휘트먼 Meg Whitman은 기술 기업 HPE와 휼렛 패커드 Hewlett Packard에서 가장 힘든 일에 도전했다. 어려운 길을 개척해온 이 CEO는 지금 자신의 커리어를 다시 쓸 획기적인 성공을 노리고 있다.
■ MOST POWERFUL WOMEN 순위 7위 멕 휘트먼 MEG WHITMAN HPE CEO

사무공간 : 팰로 앨토 HPE 본사에서 포즈를 취한 휘트먼. 그녀가 CEO로 취임하자, 직원들은 복싱 글러브를 선물했다





멕 휘트먼이 물안경을 닦고 출발 대 위로 올라갔다. 한 쪽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가 몸을 꼿꼿이 펴고 푸른 수영장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곧이어 자유형 크롤 crawl을 시작했다. 그러자 코치가 “더 빨리!”를 외쳤다. 그녀는 중간지점에 왔을 때야 고개를 들어 숨을 쉬었다. 시간은 오전 7시. 장소는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 Menlo Park 시에 있는 야외 수영장이었다. 휘트먼은 2011년 1월부터 거의 매일 아침 수영을 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경선에서 패한 직후부터였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녀는 가장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던 휼렛 패커드의 CEO 직을 맡았다. 수영장에서 그녀는 단순히 레인을 왕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련의 평영과 자유형, 그리고 플립턴 flip turn *역주: 벽에 도달하기 1m 전 수중에서 스스로 방향을 바꾸는 턴 방식에선 일종의 ‘극기훈련’ 느낌이 묻어났다. 10개 레인 중 6번 째 레인, 수영장 한 가운데 휘트먼이 있었다.

휘트먼이 수영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지는 30년 가까이 된다. 다시 수영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녀는 “패배를 잊기 위해선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1시간의 수영을 끝낸 후, 반짝이고 상기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휘트먼의 얼굴에선 광채가 빛났다. 검은색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 옆에 선 그녀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아침 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승자의 포즈였다. 승리의 순간을 표현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올해 61세인 CEO 휘트먼은 엄밀히 말하면 아직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녀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포춘 500대 기업 중 한 곳도 아닌 두 곳에서 CEO를 역임한 유일한 여성이다. 첫 회사는 이베이였고, 현재는 휼렛 패커드 엔터프라이즈 Hewlett Packard Enterprise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몬델리즈 Mondelez에서 퇴임하는 CEO 아이린 로즌펠드 Irene Rosenfeld도 몬델리즈의 전신기업 크래프트 Kraft를 경영한 바 있지만, 그 둘은 사실상 같은 회사였다). 그러나 그녀가 휼렛 패커드 정상화를 위한 5개년 계획을 세운지 정확히 5년이 흐른 지금도 성공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약 2년 전, 휘트먼은 HP 역사상 매출 기준 최대 규모의 기업 분할을 주도했다. 1,030억 달러 규모의 기업을 HP 주식회사와 휼렛 패커드 엔터프라이즈(HPE) 두 개로 쪼갠 것이다. 최근 휘트먼은 HP 회장직에서 물러나 HPE의 CEO만 맡고 있다. HPE는 기업을 대상으로 서버, 클라우드 컴퓨팅 소프트웨어, ‘사물인터넷’ 네트워킹 시스템을 판매하는 업체다. 휘트먼은 계속 HPE 사업부를 축소시키면서 이익을 늘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HPE 매출이 약 330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휘트먼 자신도 다시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편, 좀 더 기반이 탄탄한 프린터 및 PC 제조업체 HP는 거의 두 자릿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며 HPE 주가보다 더 높은 관심을 받았다.

휘트먼은 “더 작은 규모의 기업을 경영하고 싶어 하는 CEO는 아마도 미국에 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더 CEO 자리를 지킬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지난 6월, 휘트먼은 HPE의 엔터프라이즈 그룹 총괄 안토니오 네리 Antonio Neri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를 자신의 잠재적 후계자 자리에 앉힌 것이다. 그녀는 지난 8월 우버 CEO 트래비스 캘러닉 Travis Kalanick을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녀는 우버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했다. 만약 우버 CEO에까지 올랐다면, 휘트먼은 포춘 500대 기업 중 3개 기업에서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전례 없는 이력을 보유하게 됐을 것이다(결국 우버는 다라 코스로샤히 Dara Khosrowshahi를 선택했다). 그녀는 최근 더 큰 무대까지 진출했다. 휘트먼은 평생 공화당을 지지해왔지만, 대선 3개월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지지로 입장을 바꿨다. 그녀는 포춘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Fortune Most Powerful Woman)’ 중 유일하게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그 때문에 주지사 후보 경력이 있는 그녀가 정계 복귀를 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휘트먼은 이에 대해 “한 조직을 총괄하는 책임자라면 응당 자신의 지지 후보를 밝혀야 한다. 그에 대한 판단은 역사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실패의 극복 : 휘트먼의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수영모. 그녀는 주지사 경선에서 패한 후, 재충전을 위해 다시 수영을 시작했다. 휘트먼은 이에 대해 “패배를 잊을 만한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휘트먼은 여전히 이베이에서 10년 간 쌓은 업적으로 가장 유명하다. 괴짜 같았던 신생 인터넷 기업을 전자상거래 강자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베이에서 얻은 평판은 휘트먼이 현재 원하고 있는 위상과는 현격하게 다르다: ‘기업을 살려낸 CEO’, ‘HP의 혼란을 말끔히 정리해줄 수 있는 어른(grownup)’이 바로 그녀가 바라는 평판이다. 그렇다면 우버에선 왜 안된다는 걸까? 휘트먼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과거 그녀의 성공은 일회성이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이미 한 물 간 회사에서 위기에 몰려있다고 말한다. 지인들은 경쟁심이 강한 그녀가 또 한번 자신의 커리어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네리도 “장담컨대, 멕은 자신이 지는 상황을 정말 싫어한다”고 말했다.

휘트먼이 휼렛 패커드 CEO로 부임했을 때, 새 동료들이 그녀에게 안전모를 선물했다. 안전모에는 ‘떨어지는 칼날을 잡아라(Catch a falling knife)’ *역주: 보통은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라’는 관용구로, 급락하는 주식은 함부로 매수하지 말라는 격언 등이 적힌 스티커들이 붙어 있었다. 이 선물이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CEO를 맡은 이상,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휘트먼이 CEO로 취임한 2011년 9월, HP는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매출은 역대 최고인 1,270억 달러까지 올라 있었다. 하지만 체감 성과는 크지 않았다. 휘트먼의 전임자 레오 아포테커 Leo Apotheker가 11개월 만에 CEO에서 물러났고, 그의 전임자 마크 허드 Mark Hurd도 성희롱 및 비용 계정 조작 등의 혐의로 회사를 떠났다(현재 오라클 공동 CEO를 맡고 있는 그는 계속 해당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아포테커가 영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노미 Autonomy를 110억 달러에 합병한 건 지금도 기업 역사상 최악의 인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로 인해 HP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기업가치가 88억 달러나 감소한 것도 그 결과 중 하나였다.

휘트먼은 2011년 초 HP 이사진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CEO직을 거절했다. 당시엔 선거 패배로 인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수십 억 달러 자산가이기도 한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2년 반 동안 사비 1억 1,000만 달러를 썼다. 그럼에도 2010년 제리 브라운 Jerry Brown에게 패배했다(신경외과 의사인 그녀의 남편은 아내가 선거 후 낮에도 집에서 TV 방송을 보고 있었다며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1년 9월 11일 뉴저지에서 열린 비공개 미팅에서, 이사회가 아포테커를 해임하기로 결정하자 휘트먼과 동료 이사인 마크 앤드리슨 Marc Andreessen은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에서 앤드리슨은 휘트먼에게 CEO직을 맡아줄 것을 줄기차게 권유했다. 그는 “2시간이 지나자 휘트먼도 생각이 조금 바뀐 듯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앤드리슨이 말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에 끌린 휘트먼은 휼렛 패커드의 흔들리는 업적을 다시 공고히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939년 팰로 앨토 Palo Alto의 한 창고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를 탄생시킨 주역이었다. 휘트먼은 기술적 전문성도,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판매) 영업 경험도 없었지만, 사람들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HP가 직원들에게, 또 기술업계 전반과 미국이라는 국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기업인지를 역설했다. HPE 이사이자 전 HP 회장인 레이 레인 Ray Lane은 “HP의 전성기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하지만 휘트먼이 들어오면서 다시금 그 때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장 먼저 기업 문화에 변화를 주었다. 휘트먼은 측근들만 가까이 둔 허드의 경영방식에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부임 둘째 날, 휘트먼은 담배 연기로 얼룩진 임원실 창문 가리개를 벗겨내고 임원 전용 주차장도 없앴다. 이베이에서 임원용 사무실은커녕 일반 사무실조차 따로 두지 않았던 그녀는 모든 직원들에게 일반 칸막이 책상을 제공하고, 자신도 그 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에겐 직원들이 마음을 열도록 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휘트먼은 “새로운 변화에 전 직원이 어쩔 줄 모르며 당황스러워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휘트먼은 HP의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일주간의 휴가 동안 뉴질랜드에서 트레킹을 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곳은 통신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오지였다. 광활한 자연에서 벗어나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CFO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가 왔었음을 알게 됐다.CFO는 회사 매출과 영업 이익이 예상치보다 수십억 달러나 적다는 소식을 전했다. 2012년 11월, HP 주가는 주당 12 달러 밑으로 폭락했다. 휘트먼 임기 중 최악의 순간이었다.

당시 휘트먼은 기업 분할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회생을 위해 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직원들을 레드 팀과 블루 팀으로 나눠, 기업 분할에 대해 찬반을 논의했다. 당초 휘트먼은 분할을 반대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결국 효율을 선택했다. 회사가 HP와 HPE로 분리되는 과정에서, 7만 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일종의 ’기술 슈퍼마켓‘인 HP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고객 요구사항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휘트먼은 ‘불 속으로 돌진하라(Run to the Fire)’는 새 모토를 내걸고 변화를 추진했다. 일부 HP 간부들은 그녀가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생각했다. 휘트먼은 재택근무 하는 직원들을 다시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시간 엄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 예정시간보다 몇 분 늦게 미팅을 시작한 직원들을 꾸짖기도 했다. 휘트먼이 직접 여행 스케줄을 확인하자 불편해하는 간부들도 있었다. 한 전직 임원은 당시에 대해 “모두가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휘트먼은 2014년엔 “기업이 성장 궤도에 올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러 강세로 수출이 줄고, 가격 경쟁은 치열해 지고, 매출과 이익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런 악조건들 속에서, 그녀는 마침내 기업 분할을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2014년 10월 휘트먼은 “기업 분할로 별개 기업을 운영하면, 좀 더 빠르게 실적을 개선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분사계획을 발표했다.

일단, 기존 HP 제품이라면 결코 화성까지 진출하진 못할 것이다. CEO 취임 몇 달 후, 휘트먼은 HP의 R&D 실험실에 들러 ‘판매할 만한 제품이 있는지’ 물었다. 엔지니어들은 2003년부터 비밀 실험실에 보관돼 있던 신기한 제품 하나를 보여주었다. 전례 없이 큰 160 테라 바이트 저장 공간-노트북 2만 대의 처리 용량에 해당한다-을 갖춘 슈퍼컴퓨터였다. 이들은 이 컴퓨터를 간단히 ‘더 머신 The Machine’이라 불렀다.

현재 HPE가 보유한 더 머신은 휼렛 패커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R&D 프로젝트다. 휘트먼은 총 비용을 5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오랫동안 실험실에서 근무한 연구원들은 이 제품이 레이저제트 laser-jet 프린터 이후 진행된 휼렛 패커드의 최대 혁신이라 보고 있다. 이미 더 머신의 전산 능력을 활용, 유전자 연구 데이터를 100배 더 빠른 속도로 처리하고 있다. HPE 연구진은 미래 화성 탐사에도 더 머신이 활용되길 기대하고 있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에 접속하지 않고, 더 머신으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HPE 내부에선 ‘문샷 moonshot’ *역주: 달 탐사 수준의 혁신 이라는 용어를 기피하고 있다. 구글이나 애플 대비 이익 마진이 미미해 투자 여력이크지 않기 때문이다. 휘트먼은 더 머신과 관련해 “기대는 굉장히 크지만, 일단 상용화에 성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도전은 서막? : 휘트먼과 남편 그리피스 하시 IV Griffith R. Harsh IV(맨 오른쪽)가 2010년 11월 2일 선거의 밤 파티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휘트먼은 그 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그녀가 다시 공직에 도전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규모가 줄어든 기업을 경영하면서, 휘트먼은 실제 제품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간 중 70%를 고객과의 네트워킹에 쓰고 있다고 말한다. 부족한 하드웨어 지식은 인맥으로 보충하고 있다. 앤드리슨은 “휘트먼은 CEO를 대상으로 서버를 판매해본 적이 없지만, 모든 CEO들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임의로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자, 일부는 장난전화인 줄 알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휘트먼은 “처음엔 그 고객이 너무 쌀쌀맞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3분 후, 고객이 그녀에게 ‘방금 당신을 사칭하는 전화를 받았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럼에도 휘트먼의 분주한 노력이 HPE를 상승 궤도에 올려놓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올해 HPE는 기업서비스 및 소프트웨어 부문을 없앴다. 소위 ‘초 집중화 전략(very focused strategy)’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CEO 휘트먼조차도 이 전략의 성공에 확신이 없어 보인다. 수영이 끝난 후 회사로 가는 길에 그녀는 “적어도 몇 년은 더 있어야 이 매출성장 전략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휘트먼 개인 커리어뿐만 아니라, 그녀가 경영하는 회사의 유산이 달린 문제다. 휘트먼은 일단 주주 가치를 높였다. 취임 후 HP 주가는 (기업 분할 후 결과를 포함해) 120%나 올랐다. 하지만 S&P 500 지수 상승률 149%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휘트먼은 기업 분할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UBS 증권 대표이자 대기업 기술 애널리스트로 잔뼈가 굵은 스티븐 밀루노비치 Steven Milunovich는 “기술 산업에서 통용되는 경험법칙이 있다면 ’성장하지 않는 건 죽고 있다‘는 것이다. 휘트먼은 분명 성장 쪽에 서 있길 바라겠지만,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으론 경쟁적인 사업 환경 역시 녹록치 않다. 많은 기업들이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공급업체를 활용해)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이전하는 와중에서, HPE는 사내 저장 공간을 구축하려는 기업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분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성장도 더디다. HPE는 델 EMC, 시스코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가격 결정권에도 한계를 갖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휘트먼의 배짱을 시험하고 있다. HPE의 실적이 부진하자, 몇몇 전 동료들은 그녀에 대해 “실행력은 있지만 비전이 부족한 금융 공학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지지자들은 휘트먼이 휼렛 패커드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힘든 결정을 내렸다고 칭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그녀가 이끄는 HP의 최선책은 지구 밖으로의 이륙이 아닌 연착륙이라고 보고 있다. 이사회 일원인 레이는 “HP가 예전 매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 1,000억 달러 기업으로 재도약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정치적 쓴 맛을 여러 번 경험한 휘트먼에게 입장을 바꾸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HP 분할 반대에서 찬성 쪽으로 돌아선 것이 첫 번째 전환이었고, 지지하던 공화당 후보 크리스 크리스티 Chris Christie의 대선 사퇴 후 민주당 지지로 방향을 바꾼 것이 두 번째 전환이었다. 그녀가 스캔들로 점철된 우버의 CEO직을 수락했더라면, 그 역시 기존 입장을 바꾼 또 하나의 사례가 됐을 것이다.

지난 7월 그녀는 트위터에 ‘차기 우버 CEO는 메그 휘트먼이 아닐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캘러닉의 후임으로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공개 표명한 것이었다. 그녀는 회사 투자자로서 수 년 간 캘러닉과 그 휘하 임원들에게 조언을 해왔고, 6월 캘러닉이 사퇴한 후에도 자문을 제공해왔다. 일부 이사들은 휘트먼이 비록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야말로 캘러닉을 대신할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휘트먼은 8월 중순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많이 끌리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왜 우버가 자신을 영입하려는 지는 알고 있다. 그녀는 “나는 경제와 정치를 모두 경험 해봤다. 크고 복잡한 조직을 운영한 적도 있다. 기업 문화도 바꿔봤다. 자연스럽게 그럼 ‘멕이 적임자겠네’라는 생각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일주일 후, 휘트먼은 우버의 제안을 좀 더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듯했다. 우버가 다른 두 후보와 함께 인터뷰를 실시한 후인 8월 25일 금요일 저녁, 두 명의 이사가 휘트먼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이들은 그녀에게 어떻게 하면 CEO직을 재고할 것인지 물었다. 휘트먼은 이튿날 최종 답변을 전했다. 그녀가 내건 조건은 이사회 소송 건을 해결하고, 더 나은 기업 지배구조를 구축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버는 그녀 대신 익스피디아 CEO 코스로샤히를 낙점했다. 이후 휘트먼은 성명서를 통해 ‘차량공유업체의 성장 가능성은 초기 이베이와 유사하지만, (우버 CEO직을 맡는 건)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휘트먼은 HPE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우버 CEO에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인식을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일각에선 휘트먼이 연말에 HPE를 떠날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우버의 구인을 대행했던 헤드헌팅 기업 하이드릭 앤드 스트러글스 Heidrick & Struggles는 ‘관련 후보나 기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휘트먼의 향후 행보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휘트먼의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앤드리슨은 그녀에 대해 “대규모 조직을 경영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그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해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정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미국이란 국가보다 더 큰 조직은 없기 때문이다. 벤처 캐피털 기업 벤치마크 Benchmark의 공동 창업자 밥 케이글 Bob Kagle은 “멕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베이가 휘트먼을 영입하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실제로 휘트먼은 “같은 세대에 태어난 선구적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클린턴과 자신이 닮았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그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정직하지 못한 선동가’라고 비난했다. 선거가 끝난 후 (지금은 해체된) 트럼프 기업인 협회에서 보낸 가입 초대도 거절했다. 그 밖에도 파리 기후변화 협정,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폭력, 이민과 관련된 트럼프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휘트먼은 “내가 공화당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공화당이 나를 배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휘트먼은 다른 회사 CEO를 맡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베이를 그만둔 후 그런 가능성을 일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대선 출마 여부를 묻자 휘트먼은 신 체리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임명직은 몰라도 “선출직에는 절대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의 이력을 보면, 결코 그 ‘절대’라는 말을 믿을 수 없다.




■ 그녀의 이력서 ▶ 포춘 500대 기업 중 두 곳의 IT 기업에서 CEO 역임

2015년~현재 :
휼렛 패커드 엔터프라이즈 CEO (사장 겸임, 2015~17)
2011~15 : 휼렛 패커드 사장 겸 CEO
2010 : 캘리포니아 주지사 공화당 후보
1998~2008 : 이베이 사장 겸 CEO
1995~97 : FTD(북미 꽃 배달업체) 사장 겸 CEO
1989~92 : 월트 디즈니 마케팅 부문 수석 부사장
1981~89 : 컨설팅 기업 베인 부사장







■ 급속도로 위축되는 기업
멕의 CEO 취임 후, HP와 그 이후 기업들의 실적이 급감하고 있다. 올해 진행된 대규모 기업 분할로 그 흐름이 더욱 가팔라졌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JEN WIECZ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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