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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올린 강원국제비엔날레]'시대의 惡' 통해서 올림픽 정신 되묻다

23개국 58팀작가 110여점 작품 출품...내달 18일까지 전시

전쟁·환경파괴·난민문제 등 인류의 치부 적나라하게 표현

홍경한 총감독 "약자·소수자들 위로하는 것이 예술의 책임"

호아킨 세구라의 ‘G8’은 강대국 주도하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세계 곳곳의 시위 현장에서 수집한 불탄 깃발 설치작품이다. /강릉=조상인기자.




어둡고 침울하다. 참혹한 역사와 현재진행형인 인류의 치부를 드러낸 작품들은 기괴하고 때로는 잔혹하다. ‘악의 사전(辭典)’을 주제로 지난 3일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일원에서 개막한 강원국제비엔날레2018의 전반적인 인상이다. 과연 평창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승화시키려는 의도가 맞나 일견 의심스러울지도 모르나 현대사의 비극을 직시하고 반추함으로써 올림픽 정신과 인본주의가 더 찬란하게 빛나는 자리다. 총 23개국 58팀 작가가 110여점의 작품을 출품해 다음달 18일까지 열린다.

일본의 작가그룹 침↑폼이 대표작 ‘빌드버거 설치작품’(뒤)과 신작 ‘슈퍼 쥐-속을 파내는’ 곁에서 포즈를 취했다. 바닥 블럭을 뒤집어 엎은 것까지 작품의 일환이다. /강릉=조상인기자


일본의 작가그룹 침↑폼의 신작 ‘슈퍼 쥐-속을 파내는’의 세부. 포켓몬을 닮은 볼 빨간 슈퍼쥐가 흙덩이를 파들어가는 모습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빗댔다. /강릉=조상인기자


일본의 3인조 작가그룹 침↑폼은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철거가 예정된 건물을 찾아가 3개 층을 슬라이스로 절단했다. 층과 층 사이에 버려진 가구·화분 등 집기류를 그대로 쌓아올려 거대한 설치조각 ‘빌드버거(Build-Burger)’를 만들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진행된 급격한 도시정비사업을 보며 건물과 도시가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파괴와 재건을 반복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작품이 설치된 곳은 비엔날레 주 전시장인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 야외에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해 임시건물 방식으로 지은 별관 전시장이다. 개막식에서 만난 작가들은 “이곳 전시장도 가건물이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바닥에 깐 벽돌블럭을 뒤집어엎은 것까지도 작품의 한 부분이다. 파괴를 파괴로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양아치의 ‘가리왕(Tree Man)’은 인간 욕망이 파괴한 자연에 대한 반성이 깃들어 있다. /강릉=조상인기자


한국작가 양아치는 알파인 스키장 건설을 위해 파괴된 가리왕산을 설치 작품에 담았고 가리왕(迦利王) 설화와 공작부인을 엮어 인간의 욕망이 자행한 생명파괴의 현장을 고발했다. 핑크색으로 꾸며진 방 안에 영상작품과 함께 공작깃털 형상과 박제된 까마귀· 소머리 등이 널브러져 있다. 금박지를 구겨 만든 새똥 형태의 설치물까지 드문드문 놓인 사소한 것들이 반성을 유도한다.

라파엘 고메스 바로스(왼쪽)의 ‘집 접령’은 개미떼 형상의 작품으로 이민자와 난민문제를 이야기한다. /사진제공=강원국제비엔날레


전시는 현대사에서 인류가 자행한 잔혹함 뿐 아니라 이민자와 난민 문제 등 현안까지 건드린다. 콜롬비아 작가 라파엘 고메스 바로스는 자신의 나라에서 무덤을 표시하는 자스민 나무를 깎아 만든 해골 모양 두 개를 엮고 그 가지로 다리를 만들어 개미 형상을 제작했다. 이렇게 만든 500마리의 개미가 전시장 1층 한쪽 공간을 차지했다. 작지만 분명 존재하는 개미에 빗대 내전으로 난민이 된,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표현했다. 개미떼를 붙이는 데만 꼬박 보름이 걸렸다고 한다. 멕시코 작가 호아킨 세구라는 ‘G8’이라는 제목으로 불탄 각국 깃발을 내걸었다. 강대국 주도하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세계 곳곳의 시위현장에서 직접 수집한 것들이다.

아크람 자타리의 ‘말하지 않은(Untold)’는 이스라엘에 수감된 아람 정치범들의 감옥 내 사진과 서신을 모은 설치작품이다. /강릉=조상인기자




레바논 출신의 아크람 자타리는 ‘말하지 않은(Untold)’이라는 제목으로 감옥에 촬영된 사진과 관련 서신 48쌍을 한 자리에 선보였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이스라엘에 수감된 아랍의 정치사범들로 단식 투쟁 끝에 자신들의 사진을 가족과 주고받을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냈다. 최대한 수감자처럼 보이지 않게 멋 부린 사진 옆에 간략한 편지가 적혔다. 자타리는 오는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비중 있는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토마스 허쉬혼은 잔인한 장면 등을 가리는 일명 ‘모자이크 처리’를 대형으로 확대한 픽셀 콜라주 작업을 내놓았다. 학살의 참상 등 사람들이 보지않게끔 가린 자리를 오히려 드러내 진정 우리가 보아야 할 장면이 아닌지 되묻게 한다. 인형들이 등장하는 영상작품 ‘카바레 십자군Ⅱ:카이로로 가는 길’을 선보인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는 1,000년 전의 십자군 전쟁이 지금도 재현되고 있음을 각성시킨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태운 배가 뒤집힌 사건을 구명조끼를 입은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카페트에 자수제작한 하딤 알리, 전쟁으로 파괴된 벽인 듯 뜯긴 석고벽 위에 아랍의 미술사를 보여준 미국작가 왈리드 라드 등 제3의 시선을 가진 작품들이 돋보인다.

장지아의 ‘O-N-M-Y-M-A-R-K-!’(뒤쪽) 사진 연작과 설치작품 ‘잠’은 동성애라는 사회적 금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던진다. /강릉=조상인기자


폐스피커를 바벨탑처럼 쌓아 언어장벽 뿐 아니라 소통의 문제를 되짚어보게 한 김승영, 동성애 등 사회적 금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장지아,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버려진 부산물을 소재로 모빌 같은 설치작품을 만든 이정형 등 날 세운 작가들의 문제의식이 관객의 정신을 자극한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홍경한 예술총감독은 “올림픽 기간에 맞춰 열리는 비엔날레로서 올림픽에 대한 환상을 키우는 게 아니라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직시하고자 애썼다”면서 “역사적, 경험적 악으로부터 침탈된 약자들의 취약성, 소수자, 소외자를 위로하는 것이 예술의 책임이며 이같은 ‘악의 사전’을 통해 올림픽정신과 인본주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최선의 ‘동아시아의 식탁’ 설치작품은 식당에서 모은 뼈를 소재로 한다. /강릉=조상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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