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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남북문제 해법, 분단 이전 문화적 원류에 있다"

송호근 교수 두 번째 장편소설 '다시, 빛속으로' 출간

전후세대의 정신적 혼란 치유법

일제강점기 정체성 회복 모색한

근대 작가 김사량 발자취서 찾아

남북문제 사회과학적 논리 벗어나

문화예술적 상상력으로 접근해야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빌딩 세미나실에서 장편소설 ‘다시, 빛속으로- 김사량을 찾아서’ 출간 기자 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을 성장시켜온 전후 세대의 정신적 혼란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숙제입니다. 그 해법을 찾아보고자 일제강점기와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역사적 고통을 삼켜버리고도 정체성의 회복을 꿈꾼 김사량을 소환했습니다.”

문학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고 역사의 맥을 이으려 한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조선 말기 외교관 신헌에 이어 일제강점기의 근대 소설가 김사량의 발자취를 따라 나섰다.

두 번째 장편소설 ‘다시, 빛 속으로-김사량을 찾아서(나남출판 펴냄)’를 출간한 송 교수는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관훈클럽 신영기금재단 세미나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김사량은 조선에서도 조선어가 사라진 암흑기인 1940~1945년 일본어로 조선을 써내려가야 했던 인물”이라며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그 상실을 회복하고자 한 지식인의 모습에서 구원의 길을 모색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사량은 일제강점기 도쿄제국대 재학 중 소설 ‘빛 속으로’를 집필해 일본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에까지 올랐지만 국내에는 소개된 저작이 거의 없어 생소한 인물이다. 송 교수는 “지난 2005년 교토대 초빙교수로 근무하며 김사량 전집을 구입해 읽었는데 박경리의 역사적 울혈, 백석의 토속적 감성, 김승옥의 근대적 감각의 원형이 도처에서 발견되더라”며 “그러나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종군작가로 변신하고 이후 이어진 체제대결 상황에서 그는 남북 문학사에서 모두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김사량의 삶을 더듬는 것은 전쟁 직후 태어난 송 교수가 자기 세대를 대신해 잃어버린 정신적 버팀목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기도 했다. 송 교수는 “전후 폐허 속에 태어났지만 전쟁을 눈으로 보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 생물학적 아버지는 있으나 정신적 아버지는 부재했다”며 “아버지 세대의 굴종을 부정하고 전쟁 세대의 정신적 빈곤을 거부하며 비어버린 민족적 정체성을 채워줄 정신적·문화적 자원을 채우는 것이 전후 세대에게는 평생의 과제였다”고 털어놓았다.



송 교수는 김사량의 첫 작품 ‘빛 속에서’의 ‘빛’을 ‘정체성’으로 해석하고 그 답을 김사량이 사랑한 조선의 화전민과 산천에서 찾아 나갔다. 김사량이 화전민을 만나기 위해 숱하게 찾았던 홍천의 산천을 송 교수도 수차례 걷고 기록했고 “김사량이 찾은 빛의 원류는 궁핍한 환경에서도 생존의 끈기를 잃지 않는 민족에게 있었다”는 답을 냈다.

이번 작품은 송 교수에게 늘 과제로 남아 있는 학술서 ‘국민의 탄생(가칭)’ 집필을 위한 사전작업이자 대체물이기도 하다. 앞서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을 쓴 송 교수에게 국민국가의 탄생기를 다루는 ‘국민의 탄생’은 늘 ‘(어디에도 꽂히지 않은) 펄럭이는 깃발로 남아’ 있었다. 숱한 고민과 연구에도 일제 암흑기와 전쟁을 거치며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한 과정이 송 교수에게는 쉬이 그려지지 않은 탓이다. 송 교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국민국가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을 점검할 차례가 됐는데 일제강점기의 모든 것을 점검하는 벅찬 작업에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논리대로 따지려고 하면 길이 잘 보이지 않고 이념적 장벽에 부딪혀 결론을 내기 어려워 소설이라는 상상력의 공간에서 해결해보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송 교수는 남북문제 해결에도 문화예술적 상상력을 주문했다. 그는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 제국주의와 이데올로기 대립 전 남북이 하나였던 시기, 문화의 원류를 찾아가는 것만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상상력의 미학을 보여준다”며 “사회과학적 논리로만 보면 하나의 궤도밖에 보이지 않지만 문화예술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다른 궤도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첫 소설 ‘강화도’를 출간하며 김사량에 대한 소설 집필을 약속한 송 교수는 또 한 번 차기작에 대한 구상을 꺼내놓았다. 하나는 김사량의 원류로 지목한 개화사상가 유길준, 또 하나는 송 교수 세대를 아우르는 베이비부머의 이야기다. 모두 사회학자로 시대의 뼈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직조한 송 교수가 빈칸으로 남겨둔 소재들이다. 송 교수는 “문학에서 출발했더라면 갑갑한 사회과학의 세계에 이르지 못했겠지만 사회과학에서 출발한 덕에 문학과 예술로 세계를 유영하며 더 많은 세상의 장면을 보여줄 수 있게 됐다”며 “사회과학이 끝난 지점에서 소설적 상상력으로 이 시대를 탐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라며 웃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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