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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더 팍팍해진 삶...가계대출 조이니 '보험 담보' 대출로

팍팍한 가계살림에 대표적인 ‘생계형 대출’로 꼽히는 보험계약대출 규모가 60조원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증가 속도도 빠릅니다. 1년 새 4조원 급증하면서 5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살림살이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가운데 급한 돈이 필요할 때 최후의 보루인 보험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정부의 주택대출 조이기로 은행권의 가계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다른 곳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다중채무자의 이용이 많은 보험계약대출이 급증하면서 돈을 빌린 사람과 빌려준 보험사 모두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18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의 가계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말 기준 57조1,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여기에 금감원이 매달 발표하는 속보치까지 합하면 지난해말 기준 59조원으로 추산됩니다. 1년 전(55조원)보다 무려 4조원(7.3%) 늘어난 것으로 2012년(10.9%) 이후 5년 만에 최대 증가율입니다.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풀리면서 은행권 대출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2015~2016년만 해도 가계 보험계약대출 증가율은 각각 2.5%, 4.6%에 그쳤습니다. 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2017년 10~12월은 월간 속보치. 자료=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


보험계약대출은 가입자가 그동안 낸 보험료(해지환급금)를 담보 삼아 그 금액의 일정 범위(50~95%) 내에서 돈을 빌려쓰는 대출을 말합니다. 대출심사와 중도상환수수료가 없고 연체 시 신용도 하락이나 연체가산금리도 없는 이른바 ‘4무(無) 대출’이어서 급전이 필요하거나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서민들의 생계형 대출 수요가 높습니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이사비용이나 등록금, 결혼자금 등 큰 지출이 생길 때 찾는 분들이 많다”며 “이미 보험료를 내고 있는 계약자면 일정 범위 내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경우도 많이 찾는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전형적인 생계형 대출로 많이 찾는 보험계약대출은 경기가 안 좋을 때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불황형 대출’로도 꼽힙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실업률의 증가가 보험계약대출 수요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최근 보험계약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가계살림이 더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구당 평균 빚은 처음으로 7,000만원을 넘어서면서 나날이 늘고 있지만 가계소득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금감원·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3월말 기준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부채는 7,022만원으로 1년 전보다 4.5% 늘었습니다. 반면 가계의 실질소득은 지난해 1~9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0.8% 쪼그라들었습니다. 가계 실질소득이 7년 만에 마이너스(-0.4%)로 떨어졌던 2016년에 비해 감소폭이 더 커졌습니다. ‘마지막 수단’인 보험에까지 손을 대는 가계가 늘어난 배경입니다.





물론 보험계약대출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보험계약대출 금리는 보험상품과 계약자의 보험 가입시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시장금리가 낮았던 2010년대 중반 이후 가입자의 경우 연 4%대 금리로도 보험계약대출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시중은행의 중신용자(5~6등급) 신용대출 금리가 평균 연 5~6% 수준임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셈입니다.

문제는 고금리로 보험계약대출을 이용해야 하는 대출자가 훨씬 많다는 점입니다. 외환위기 여파로 시장금리가 높았던 1990년대 후반 이후 판매된 보험상품은 예정이율이 높은 만큼 그에 따른 보험계약대출 금리도 연 8~9% 수준으로 높습니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생보사 24곳 중 16곳(67%)은 보험계약대출(금리확정형) 금리가 연 7% 이상이었습니다. 국내 생명보험시장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는 이른바 ’빅3(삼성·한화·교보)‘ 손보사의 경우 금리가 연 9.5%를 넘는 고금리 보험계약대출이 전체의 25~66%까지 차지했습니다. 업력이 긴 만큼 과거 금리가 높던 시기 보험상품에 가입한 계약자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자료=금융연구원


연쇄 부실 우려가 높은 다중채무자의 이용이 많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다중채무자는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차주를 뜻합니다. 비다중채무자에 비해 빚 규모가 크고 그만큼 빚을 갚을 여력과 확률도 낮아 잠재적 부실 우려가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중채무자의 대출액은 특히 보험업권에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이석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보험업권의 다중채무자 대출액 증가율은 지난해 9월말 기준 9.0%로 저축은행(11.7%) 다음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보험계약대출은 별도 대출심사가 필요 없는 만큼 다른 금융기관에서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한 차주들도 보험만 있으면 손쉽게 돈을 빌려 쓸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가계불황의 막다른 골목에서 보험계약대출이 급증하는 흐름이 계속되면 결국 보험 해약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집니다. 특히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에 따른 은행의 대출심사 강화가 맞물리는 지금은 그 위험이 더 높습니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계약대출이 증가했던 2000년대 초반과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는 경기부진과 은행의 대출심사 강화로 풍선효과가 확대됐던 시기”라며 “경기가 나빠지면 재정상태가 악화된 가입자가 보험계약을 해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습니다.

전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시점의 보험계약대출 증가는 9~12개월 후 보험 해약 규모 증가로 이어집니다. 만약 보험사가 예상한 해약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험을 깨기 시작하면 보험사는 준비금보다 더 많은 자금을 해약환급금에 지출하면서 유동성 부족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가입자와 보험사 모두 안전판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석호 연구위원은 “앞으로 부동산담보대출 규제 강화 등에 따른 풍선효과로 대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보험계약대출의 증가폭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보험계약자로서는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보험계약의 해지로 이어져 보험을 통한 위험보장기능을 잃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도 “가계 빚은 계속 늘어나는데 소득흐름은 나빠지면서 원리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가구가 전체의 3분의 2에 달하는 상황”이라며 “보험계약대출 급증은 가계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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