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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아루나찰 프라데시 분쟁





1914년 3월24일 북인도 심라에서 영국과 티베트·중국의 3자회의가 열렸다. 티베트와 중국의 국경선을 획정하기 위해서였다. 티베트는 언어와 문화권 전체를 기준으로 국경선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중국은 이에 반대했다. 여기서 영국령 인도 식민정부의 외교장관이던 헨리 맥마흔이 새 제안을 내놓았다. 몽골처럼 티베트 문화권을 내외장(內外藏)으로 구분해 내장 지역은 중국에 권리를 부여하되 외장 지역은 티베트 자치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때 맥마흔은 히말라야 산맥 남쪽에 있던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을 영국령 인도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맥마흔라인이다. 티베트 정부는 자국이 통치하던 일부 지역을 인도 영토로 편입시키는 국경선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독립을 위해서는 영국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심라조약’에 서명했다. 면적이 8만3,743㎢에 달하는 아루나찰 프라데시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실효지배를 하고 있지만 중국은 조약 자체를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루나찰 프라데시는 나중에 인도-중국 간 국경분쟁의 불씨가 된다.

중국은 1951년 티베트를 강제 병합한 후 아루나찰 프라데시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과거 영국이 설정한 맥마흔라인은 불평등조약에 따라 그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1962년에는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인도가 이 지역에 군사초소를 설치한 것을 계기로 양국은 전쟁까지 치렀다. 1975년에도 양국군 간에 국경 충돌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문제 삼아 중국이 자체 지명을 붙이겠다고 선언하자 인도가 발끈하기도 했다.



최근에 아루나찰 프라데시를 놓고 중국과 인도가 또다시 설전을 벌이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아루나찰 프라데시주의 주도인 이타나가르 지역을 방문하자 중국이 반발한 것이다. 중국의 영유권 분쟁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과는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연일 으르렁거리고 있고 난사군도를 놓고 필리핀·베트남 등과도 티격태격하고 있다. 그 넓은 영토를 갖고도 또다시 땅 욕심을 내는 중국을 보노라면 ‘가진 자가 더 욕심부린다’는 옛말이 생각나 씁쓸하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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