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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스타 과학자를 보고 싶다

한영일 바이오IT부장

평창 개막식서 인텔 '드론 쇼크'

이공계 홀대한 한국의 자업자득

4차 산업혁명 구경꾼 전락 우려

과학자 우대 문화조성·지원 절실





지난 2004년 2월 어느 날. 인천공항 귀빈실에서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욕발 비행기에서 내린 한 과학자가 기자들 앞에 나타나 입을 열었다. “여러분 저는 미국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고 왔습니다.” 순간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황우석 박사였다.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해 인류의 난치병을 고치게 됐다는 것이었다. 너도나도 한국 과학계의 쾌거라고 칭송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그를 대한민국 ‘제1호 최고과학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줄기세포 연구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를 향한 찬사는 비난으로 바뀌었다.

벌써 14년이나 흘렀다. 황 박사의 성과주의에 사로잡힌 과학 연구에 대한 배반은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우리 국민이 이름 석 자만 대면 금세 떠올릴 만한 유명한 과학자가 국내에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혹시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힌 채 거물급 스타 과학자 키우기에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9일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됐다. 우리가 공들여 준비한 개막식의 주인공은 엉뚱하게도 인텔의 드론 슈팅스타 1,200대가 밤하늘에 그려낸 오륜기였다. 혹자는 2년 전 알파고가 우리에게 던진 인공지능(AI) 쇼크에 버금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고 있는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이공계 육성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을 비롯한 부처들은 상반기 중 대책을 내놓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며칠 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졸업식에 참석해 과학기술 육성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반길 만한 ‘사건’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공계에 관심을 쏟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이끌 이공계 인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오는 2024년까지 공학 계열의 인재 21만5,000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이공계 인력이 줄고 있는 것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남녀 초등학생의 과학자 선호도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2016년에는 9위였는데 지난해 조사에서는 10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 박사나 학자가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어떻게 배출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국가 경제의 시작이다. 산업과 국방 경쟁력을 좌우한다. 로봇과 AI·빅데이터 등 인류 사회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급속하게 빨려 들어가고 있는 요즘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거대한 물결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면 우리가 산업화 시대에 힘겹게 이룬 ‘한강의 기적’은 그저 과거의 일로 묻힐 수도 있다.

어느 분야에서나 스타는 필요하다. 영화나 음악뿐 아니라 하나의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준다. 정현 선수가 테니스 메이저 대회에서 4강에 오르자 관련 용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국내에서 테니스의 위상이 한 단계 뛴 것만 봐도 그렇다. 과학계도 마찬가지다. 과학한국의 입지를 다시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대표급 과학자 지정 제도를 다시 도입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 예전처럼 과학기술부를 장관급이나 부총리급으로 따로 두는 방안도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한다.

언젠가부터 초등학교에서 과학자는 요리사나 가수·운동선수 등에 밀려난 꿈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너도나도 “과학자요”라고 외치는 시대를 만들지 못한다면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의 구경꾼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hanu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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