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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왕국 속으로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8년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기업 공개(IPO)가 이뤄지면, 사우디 아람코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된다. 그렇다면 아람코의 IPO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엠티 쿼터 사막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사우디 아람코의 천연가스-정유 분리 공장.





우리가 탄 소형 비행기 아래로 사막이 펼쳐졌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엠티 쿼터 Empty Quarter는 이름만큼이나 텅 비어 보였다. 짙은 오렌지 색으로 빛나는 모래 언덕들이 눈 부신 태양 빛 너머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낙타를 이끄는 베두인들 *역주: 천막생활을 하는 아랍 유목민 조차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사막은 광활했다. 비행기가 샤이바 Shaybah라 불리는 유전 현장의 빈 활주로에 착륙을 하고 나서야, 세계 최대 규모의 이 모래 사막이 실제론 텅 비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우디의 도시에서 수백 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모래 언덕들 사이로 금속 파이프와 원통형 탱크의 최첨단 미로가 솟아 있었다. 이 곳에서 현대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필수적인 원자재(석유)를 밤낮으로 퍼내고 있었다. 비행기가 사막 활주로에 착륙한 후 만난 샤이바 유전의 매니저 칼리드 알 자미아 Khalid Al-Jamea는 110도가 넘는 열기를 식힐 수 있도록 우리에게 차가운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는 “우리는 전기와 물을 자체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며 “이곳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돼 있다”고 설명했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사우디 아라비아가 지금 여러 측면에서 세상으로 나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에 따른 결과는 보수적인 이 이슬람 왕국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채굴자들이 아라비아 사막에 텐트를 치고 마구잡이로 석유를 퍼 올린 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 ‘사우디 아람코 Saudi Aramco’는 회사 지분 5%를 외부 투자자들에게 매각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2018년을 목표로 오랫동안 계획돼 온 이 기업공개가 이뤄질 경우, 이 세계 최대 석유기업의 38년 국영 체제는 막을 내리게 된다. 그 동안은 단 한 사람이 주주였다. 바로 ‘사우디 국왕’이었다.

아람코의 운영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확인된 석유 매장량만 2,608억 배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찔한 수치다. 세계 최대 독립 석유 기업 엑손 모빌 Exxon Mobil이 예약한 매장량의 13배에 해당하며, 매장 석유 중 많은 양이 채굴 불가능한 베네수엘라에 이어 2번째 매장량을 자랑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매장된 천연 가스도 298조 제곱피트 넘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이런 수치를 기반으로 아람코의 주식 가치를 1~1.5조 달러로 추산했다. 최근 8,300억 달러 시총을 기록한 애플을 추월, 세계에서 시가 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에 등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의 시가 총액이 2조 달러는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총을 최저치로 추산한다고 해도, 아람코의 지분 5% 매각은 금융 역사상 최대 규모의 IPO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알리바바가 기업 공개를 하며 세운 기록을 최소 2배 뛰어넘는 규모다. 모건 스탠리와 HSBC 같은 은행들이 이미 IPO 주간사 요청을 받은 상황이다. 양사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전망이다. 아람코의 기업 공개가 단일 주식 시장에 미칠 잠재적 파급 효과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런던과 뉴욕 시장도 아람코의 주요 해외거래 시장에 편입되기 위해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사우디 수도 리야드 Riyadh의 왕족들은 이에 대한 결정을 왕가 내에서만 공유하고, 외부에는 철저히 비밀로 부쳐왔다.




사막 위의 기술 : (위)엠티 쿼터에 위치한 아람코 발전소의 밤 풍경. (아래)아람코 본사 교육 시설에서 진행되는 가상 체험. 샤이바 유전에 있는 사막 아래 5,000 피트 깊이의 유전을 체험할 수 있다.



‘MBS’로 널리 불리는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 Mohammed Bin Salman이 2016년 아람코 지분 중 일부를 공개하려는 계획을 밝혔을 때, 회사 이사진도 크게 놀랐다. 아람코의 기업 공개는 이 32세 왕세자가 향후 14년간 사우디 아라비아를 개혁하기 위해 설계한 급진적 청사진인 ‘비전 2030’의 중심 계획으로 드러났다. ‘일 평균 1,000만 배럴 이상’에 달하는 아람코의 엄청난 석유 생산량은 국가 수입 90%와 해외 수입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업 공개를 통해 얻는 조달 자금-2조 달러의 5%인 1,000억 달러-은 사우디 정부의 국부펀드(Public Investment Fund)를 글로벌 금융업계의 강자로 키울 수 있다.

이 젊은 왕세자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세계 최강의 산유국-많은 서구 도시들에서 막대한 부를 입증해보였다-에서 다변화한 경제체제로 변화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수 백만 명의 젊은이들을 고용하고, 새로 오픈한 홍해 리조트에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육성하겠다는 포석이다. 민간 의료보험과 교육 시스템도 준비 중이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사우디 아라비아는 1932년 알사우드 왕조에 의해 건국된 이후 최초로 ‘평범한’ 경제 시스템을 갖춘 국가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람코 본사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동부 도시 다란 Dhahran에 위치해 있다. CEO 겸 사장인 아민 나세르 Amin Nasser는 필자와 함께 본사 집무실에서 신선하게 로스팅한 아라비아산 커피를 마시며, “비전 2030은 지속가능한 경제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변혁이다. 아람코가 그 중심에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아라비아는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당국이 계획대로 IPO를 진행한다면, 변혁의 여파는 실로 상당할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지난 수십 년 간 매우 엄격한 이슬람 규칙을 고수해왔다. (2017년 9월까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이 금지된 국가였고, 남성 친인척 허가 없인 여성이 여행을 할 수도 없는 나라였다. 아람코 지분 매각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사우디 정부의 기대치에 커다란 변화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폐쇄된 세계에 외부인을 받아들이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필요하다. 아람코가 작년 10월 초 포춘의 석유 시설 취재를 허락하고, 외부 감시를 피하기 위해 회사를 가렸던 장막을 걷어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아람코는 전 세계 석유 중 9분의 1을 생산하고, 매 시간 13만 배럴을 실어 나른다. 전쟁이나 자연 재해 등으로 세계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겼을 때, 석유 생산을 빠르게 늘릴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람코는 포춘에 석유 그 이상을 보여주려고 했다. 유전 방문이 부수적인 목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출입을 통제하는 다란 본사를 둘러 보면, 아람코를 IT 기업으로 착각할 만했다. 저층 빌딩에는 컴퓨터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고, 엔지니어들이 야자수 아래 포장 도로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람코 직원들은 이 본사를 “캠프”라고 부르는데, 이들 직원의 아이들이 이 캠프에서 자라고 있었다.

매니저들은 몇 시간 동안 진행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벽 하나를 가득 채운 스크린 위에서 최첨단 혁신 기술들을 뽐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의 목표가 사우디 아라비아의 자연발생적인 부를 지구상 그 어느 석유 회사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잠긴 문 몇 개를 통과하자 본사 중추부인 ‘석유 공급 계획 및 일정(Oil Supply Planning and Scheduling, OSPAS)’ 센터가 나왔다.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밀 정보가 보관돼 있는 곳이라 대부분 직원들은 접근할 수 없다. 축구장 한 면 길이의 벽을 따라 설치된 스크린에선 국내와 아라비아 만, 홍해의 해외 시설에서 이뤄지는 채굴, 파이프 수송, 정제, 선적 현황 및 모든 운영 사항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각각의 굴착 장치를 클릭하면, 현재 흐르고 있는 원유 양이 숫자로 표시됐다. 45일 전 미리 작성한 일정표는 각각의 주문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냈고, 유조선 이미지는 원유 등급과 행선지 등을 포함해 원유 배럴이 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도적 인물들 : 사우디 아람코의 CEO 아민 나세르(위)는 회사 매장량을 늘리기 위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MBS’라 불리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아래)는 아람코의 기업 공개에서 나올 자금으로 왕국의 경제를 개편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는 80년 가까이 원유를 대량 선적해온 기업에겐 쉬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보다 훨씬 어려운 건 아람코의 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단일 매장지에서 석유 추출 역량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으로, 잠재적으로 투자자들에게 기업 가치를 훨씬 높일 수 있다. 목표는 석유의 추출 비율(recovery rate)을 50%에서 70%로 증가시키는 것이다. 아람코는 이를 통해 현 매장량에 800억 배럴의 석유를 추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세르는 “10년 이내에 사우디 아라비아의 총 발견 매장량을 현재 8,000억 배럴에서 9,000억 배럴로 끌어올리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자신의 계획을 업계에 밝혔다. 이는 현재 기술론 채굴할 수 없는 원유를 포함한 수치다.

이 목표를 위해 아람코가 기울이는 여러 노력은 다란 본사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지질 조종 구역(geosteering)’의 벽면 스크린에선 한 번에 90개가 넘는 유정의 실시간 운영 현황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상황실에선 지구 과학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석유가 가장 풍부하게 매장 돼 있는 암석 틈부터 굴착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샤이바의 사막층 하부 5,000 피트까지 내려가는 생선 뼈 모양의 굴착기는 현장에서 약 460 마일 떨어진 이 상황실의 지시에 따라 가동되고 있다. 바로 옆 사무실에선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매장지를 분석, 어떻게 하면 최적으로 굴착할 수 있고, 또 굴착 자체에 경제성을 갖게 되는지를 판단하고 있다.

지난 2014년 배럴 당 108 달러였던 유가가 2017년 배럴 당 50달러까지 폭락하긴 했지만, 아람코는 새 매장지 탐색 노력을 배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가의 탐사 작업을 자제하는 다른 석유 기업들과는 다른 행보다. 아람코의 탐사 및 석유공학 센터(Exploration and Petroleum Engineering Center)는 최근 ‘테라파워즈 TeraPOWERS’라는 신기술을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이 기술을 통해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도로 수 많은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다. 나세르는 “우리는 하강기에도 탐사 자원을 계속 늘려갈 것”이라며, “우리가 계속 상당한 매장량을 확보하는 것이 세계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R&D 투자를 통해 사우디인들은 앞으로도 수 세대 동안 석유를 굴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전 세계적인 석유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보될지 여부다. 이는 유가 폭락으로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은 사우디 아라비아에겐 시급한 문제다. IMF의 추산에 따르면, 사우디의 2017년 경제 성장률은 거의 0%다. 게다가 여러 정부들이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어 석유 소비보다 재생 에너지 소비 속도가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5년 개최된 글로벌 기후변화 회의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는 태양 에너지 비중을 크게 늘리고, 가솔린 사용 의존도를 줄이는 데 동의했다. 사우디에선 석유로 가동되는 에어컨이 엄청난 더위 속에서 1년 365일 24시간 돌아간다. 사우디 산 석유 중 3분의 1이 국내에서 소비되고 있다. 각 지역은 대규모 지원금을 받아 매우 낮은 가격에 석유를 소비하고 있다. 미국 자문사인 스트래티지 앤드 Strategy& 의 리야드 사무소에 근무하는 파트너 히랄 할라오우니 Hilal Halaoui는 “사우디 아라비아는 변동성이 큰 원자재에 100% 투자를 받는 아주 부유한 개인과 같다”며 “자산 관리자들이 보기엔 어리석기 짝이 없는 투자”라고 지적했다.

아람코는 세계 에너지 소비 추세가 느리게 변화할 것이라 믿고 있다. 나세르도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이 걸릴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아람코는 미래의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 2년 간 천연가스 생산을 크게 늘렸다. 샤이바에 신규 건립된 발전소를 통해, 이 외딴 지역에도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또한, 아람코는 다우 케미컬 Dow Chemical과의 합작사를 통해 2016년 200억 달러 규모의 플라스틱 공장을 설립했다. 석유 생산에 국한되지 않는 다각화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중국의 시노펙 Sinopec과 공동 운영하는 홍해의 정유 공장도 확장했다. 작년 5월에는 텍사스 포트 아더에 소재한 미국 최대 정유공장(원래 로열 더치 셀 Royal Dutch Shell과의 합작사였다)의 운영권을 모두 확보하기도 했다. 다란 본사에서 근무하는 공학자들도 매연을 포집해 트렁크 내부에 저장한 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차 개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다른 팀은 원유를 정제 과정 없이 바로 에틸렌이나 폴리에틸렌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 같은 일들이 실현되면 수십억 달러 비용 감축이 가능해 아람코의 석유 사업이 훨씬 거대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신규 산업들을 가능하게 하려면, 더 많은 석유를 퍼내야 하고 신규 매장지를 더 추가해야 할 수도 있다. 아람코의 선임 석유 엔지니어 나빌 알-아팔레그 Nabeel Al-Afaleg는 “우리는 수백 년 동안 굴착 가능한 유전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유로 지은 빌딩 : 아람코의 수 많은 건설 프로젝트 중 하나인 문화 센터(오른쪽 사진)가 작년 9월 다란에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지금은 믿기 힘들겠지만, 초창기 탐사자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유전 찾는 일을 거의 포기한 적이 있다. 1933년 사우디 왕은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오일 Standard Oil(셰브론 chevron의 전신)에 아라비아 사막 탐사권을 부여했다. 이 지역은 텍사스 두 배 크기로, 제대로 된 지도는커녕 도로나 통신 시설도 없던 곳이었다. 미국인들은 베두인과 낙타의 안내를 따라 이곳을 탐색했지만, 오랫동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초창기 탐사자 중 한 명인 토머스 바거 Thomas Barger(훗날 아람코 CEO에 올랐다)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의 상사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지구 반 바퀴 떨어진 곳에 있는 쥐구멍에 돈을 갖다 버리고 있다”고 말했던 것을 훗날에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잘못했던 것일까? 스탠더드 오일이 1938년 다란 지역에서 찾은 첫 분유정(噴油井) 덕분에 사우디 아라비아 지역 유전은 다른 중동의 유전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 후 미국인들은 굴착권을 앞세워 아라비안 아메리칸 오일 컴퍼니 Arabian American Oil Company(줄여서 아람코로 부른다)를 설립했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지분을 서서히 늘려 1980년 전면 국영화했다(정부는 ‘아람코’라는 이름 앞에 ‘사우디’를 붙였지만, ‘아메리칸’의 ‘아’은 유지했다. 현재도 아람코의 고위직은 대부분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있으며, 다란 본사는 마치 작은 미국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롤링 힐즈 불러바드 Rolling Hills Boulevard’라는 길 이름이 있을 정도다. 외부의 삶과는 대조되는 풍경이다. 여성들은 운동복과 티셔츠를 입고 조깅을 하고, 가족 단위로 야구나 볼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텍스-멕스Tex-Mex *역주: 텍사스풍의 멕시코 요리’ 식당에서는 ‘템테이션즈 Temptations * 역주: 미국의 보컬 그룹’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아람코에 깃든 미국 색에도 불구하고, 석유 시장에서 사우디의 우선과제는 미국이 원하는 것(미국의 영향력은 막대하다)과 자주 상충하고 있다. 아람코의 거대 유전 중 하나인 가와르 Ghawar 유전은 현재 세계 최대 규모로, 하루에 500만 배럴의 석유를 퍼 올리고 있다. 엠티 쿼터 사막의 샤이바 유전 생산량 100만 배럴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다른 지역과 비해 샤이바의 생산량이 엄청난 규모인데도 말이다(이곳의 매장량은 무려 140억 배럴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모든 생산량을 합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중 생산량 2위인 이라크보다 3배나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하는 셈이다. 사우디는 1960년 OPEC를 공동 설립한 이후, 사실상 리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엄청난 생산 능력에도 불구하고, 아람코의 영향력은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셰일 가스 붐으로 약화된 상황이다. 2014년 미국이 하루에 추출하는 셰일 가스는 2014년 기준 900만 배럴. 아람코의 생산량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세계 유가는 다른 경제 대국들과 아람코의 주요 고객인 중국 경제가 하강함에 따라 폭락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돈방석에 앉는 것에 익숙했던 리디야 관료들은 이제 굉장히 드문 상황에 직면해있다: 바로 재정 적자다. 이들은 유가 부양책으로 감산을 하는 대신, 세계 석유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석유를 계속 퍼내는 길을 선택했다. IMF의 추산에 따르면, 사우디가 재정 균형을 맞추려면 유가가 배럴당 77달러는 돼야 한다. 현재 유가가 이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결국 사우디 아라비아는 작년 11월 감산을 하자고 OPEC 설득하기에 나섰다.



아람코 자체는 석유 생산에 대한 발언권이 크게 없다. 다른 많은 결정권과 마찬가지로, 생산량은 리디야 관료들의 몫이다. 아람코가 IPO를 준비하는 와중에도, 정부가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이 기업에 대한 많은 것들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IPO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투자자들이 객관적인 수치들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익명의 제보자는 파이낸셜 타임스 Financial Times에 아람코가 주식의 비공개 매각을 선호할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로이터가 ‘중국의 거대 에너지 기업 페트로차이나 PetroChina와 시노펙이 아람코에 지분 5%를 직접 인수할 의향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회사 입장에선 재무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람코 본사에 위치한 ‘번영의 우물’. 1938년부터 1982년까지 석유 굴착이 진행된 곳이다.



아람코가 질문 공세에 대응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회사는 포춘에도 여러 세부 정보 공개를 거절했다. 석유 굴착기 수, 매장량 중 이미 생산된 비율, 굴착할 양이 얼마나 남았는지 같은 내용들이다. 모두 주주들이 알고 싶어 할만한 세부 정보들이다.

호화빌딩 건설 프로젝트 관장 등 필수 분야가 아닌 사업에 자금을 얼마나 쏟아 붓고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오랫동안 해당 사업을 아람코에 맡겨왔다. 이 회사의 프로젝트 관리 역량이 우수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국 출신 사업 컨설턴트 샘 블래티스 Sam Blatteis는 “아람코 직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회사는 아랍에서 가장 성과지향적인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고(故) 압둘라 왕이 10년 전 제다에 사우디 첫 남녀 공학 대학교 건립을 결정했을 때, 그는 아람코에 200억 달러 규모의 이 건설 프로젝트를 맡겼다. 또한, 아람코는 리야드 외곽에 위치한 석유조사 연구소의 건설 프로젝트-유명 건축가 자하 하디드 Zaha Hadid가 디자인했다-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다란에선 아람코 직원들이 화려함을 자랑하는 신축 건물 ‘킹 압둘라지즈 세계 문화 센터(King Abdulaziz Center for World Culture)’를 자랑스럽게 안내했다. 아람코가 건설한 이 빌딩엔 극장과 서점,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기자들은 이 빌딩 건립에 8억 달러 비용이 들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회사는 비용 공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람코는 과거 이런 프로젝트에 드는 비용을 정부가 상환해 준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에 관한 재무 정보는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의문도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수십 년 동안 밝힌 것처럼, 과연 2,608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 가채매장량 *역주: 기존 채취 방법을 계속 쓰면서 현재 원가 및 가격 수준으로 캘 수 있는 매장량 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다. 이에 관한 세부 정보는 투자자들이 IPO 과정에서 아람코의 가치를 결정할 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칙에 따르면, 아람코는 자산에 대한 독립 감사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를 위해 회사는 텍사스에 있는 회계기업 2곳을 고용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아람코의 매장량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파리에 위치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에너지 분석가 케이트 두리언 Kate Dourian은 “수십 년간 매장량 수치가 변하지 않았다”며 “공식적으로 발간된 감사 정보가 있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도 없다”고 지적했다. 필자가 CEO인 나세르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그는 아람코가 석유를 추출하면서도 계속 신규 유전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에 수치가 변하지 않은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알아야 될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나세르는 “주주들에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다만 우리 주주는 단 한 명이다”라고 말했다. 사우디 국왕을 말하는 것이다(그는 다음날 모스크바에서 국왕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는 이어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이 상장되면, 모든 정보를 흔쾌히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모든 불투명성에도 사우디 아라비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사우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작년 9월 국영 방송국의 저녁 뉴스를 시청하던 사우디인들은 상상도 못했던 공식 발표를 지켜봤다. 올해 6월부터 여성 운전이 합법화된다는 소식이었다.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1주일 후 필자가 도착했을 때, 운전은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고자 하는 주제처럼 보였다. 27세의 헬스 강사 넬리 아타 Nelly Attar는 정부가 여성들에게 헬스장 운영을 허용한 이후, 지난해 체육관을 차렸다. 리디야에서 만난 그녀는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이 원대한 계획을 앞세워 이 변화를 이끌고 있다. 아람코는 그 계획에서 수익성 있는 핵심기업이다. 빈 살만 왕세자의 부친 살만 빈 압둘라아지즈 알 사드 King Salman Bin Abdulaziz Al Saud(82)는 곧 퇴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6월 그가 빈 살만을 왕세자로 선택했을 때, 좀 더 신중했던 기존 권력체제가 밀려나 이제 수많은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쇼핑몰을 짓고 있는 개발업체들은 “정부가 영화관을 합법화 하는 즉시 몰에 극장을 개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래티지 앤드의 파트너 할라오우니는 “처음으로 사회가 원하는 것과 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의 접점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욕구들은 긴급한 것들이다. 3,200만명의 사우디 아라비아 국민 중 무려 60%가 25세 이하다. 공식 실업률은 12% 정도지만, IMF는 청년 실업률이 그 두 배가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차세대 젊은이들의 해외 유출을 막으려면-혹은 지배층에 대한 반란을 방지하려면-정부는 민간 부문을 크게 확대해 수 백 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빈 살만 왕세자의 계획에 서구 민주주의는 포함돼 있지 않다. 정부는 가스 같은 기초 품목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하고, 비대해진 공공 분야를 간소화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아람코의 현금이 언제든 투입될 수 있어야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IEA의 애널리스트 두리언은 “경제 다각화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IPO의 성공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쇼핑몰과 여성 운영 헬스장이 들어서는 리디야는 외진 사막 지대 샤이바와는 동 떨어진 은하 같은 세계이다. 샤이바에선 1,200 여명의 아람코 직원들이 고립된 곳에서 고생을 하며, 눈부신 별빛 아래서 저녁을 먹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높은 모래 언덕 위를 오르고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이 두 세계의 미래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다. 엠티 쿼터의 뜨거운 사막에 거대 유전을 개척한 아람코는 어떤 상황에서도 석유를 굴착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 아람코는 심지어 이곳에 사막 가젤, 타조, 영양 등이 사는 야생동물 보호구역도 만들었다. 1998년 개관한 이 시설은 약 300개 유정으로부터 원유를 퍼내고, 397 마일에 달하는 송유관으로 황량한 오지에서 채굴한 원유를 운반해 세계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샤이바에서 근무하는 매니저 알 자미아 Al-Jame는 매일 퍼내는 석유 양을 계산하는 컴퓨터들을 가리키며, “우리가 필요한 돈을 저기서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돈이 아람코의 기업 공개와 함께,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도 변화를 불러 올지 모른다.




■ 간략하게 보는 아람코 역사


1945년



1933년 ▶ 사우디 아라비아를 건국한 압둘라지즈 왕이 캘리포니아 스탠더드 오일에 사막 지역 32만 제곱 마일 독점 굴착권을 60년 간 부여했다.

1938년 ▶ 석유 발굴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미국 탐사자들이 사우디 동부 도시 다란에서 첫 유전을 발견하고, ‘아라비안 아메리칸 오일 컴퍼니(아람코)’를 세웠다.

1948년 ▶ 뉴저지의 스탠더드 오일과 소코니-배큐엄 Socony- Vacuum이 아람코 지분을 매입해 엑손 모빌과 셰브론 간 합작 사업이 시작됐다.

1957년 ▶ 지질학자들이 사우디 아라비아 동부 사막 가와르 지역에서 거대 유전을 찾아냈다. 현재까지 발견된 전통 유전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다.

1980년 ▶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가 엑손 모빌과 셰브론의 아람코 지분을 전부 매입하고, 회사 이름을 ‘사우디 아라비안 오일 컴퍼니 Saudi Arabian Oil Company’로 개명했다.

2018년 ▶ 지난해 사우디 아라비아는 2018년 아람코 지분 5%를 매각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성사될 경우 이번 IPO는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과연 사우디 정부는 이를 계획대로 진행할까?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VIVIE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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