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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칼럼]민족사 최악의 재앙...'인구 절벽'

산아제한에서 인구절벽 경고로

불과 30년 새 인구정책 극과 극

위기 공감·적극 타개 노력으로

항구적 저성장구조 고착 막아야





베트남과 터키·이집트·이란. 하나같이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떨어지는 나라들이다. 터키만 1만달러선을 갓 넘었을 뿐이다. 나머지 세 국가는 2,000∼3,000달러 수준이다. 현재 소득은 낮지만 이들이 한국보다 많은 게 있다. 인구. 남북한을 합친 인구 7,630만명보다 많다. 베트남과 이집트 인구는 곧 1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네 나라의 공통점은 또 있다.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분명 이들의 소득은 한국에 못 미치지만 앞으로도 그럴까. 회의적이다. 젊은 연령대가 압도적인 이들 네 나라의 미래는 동트기 직전의 새벽과 비슷하다. 반면 한국은 저녁노을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속도다. 태양은 어디서나 뜨고 지는 시간이 똑같지만 인구 시계의 속도는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우리는 출산 격감과 초고속 고령화라는 두 가지의 ‘과속’에 구속된 상태다.

인구가 적어지는 가운데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통계청이 엊그제 발표한 ‘2017년 출산·사망 통계 잠정 결과’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이 1.05명으로 떨어졌다. 여성이 임신 가능한 기간(15~49세)에 낳는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에서 한국은 대만과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낮다. 연간 신생아도 35만7,700명에 그쳐 40만명선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전년도 신생아(40만6,300명)와 비교하면 41일 동안 아이가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셈이다. 우려했던 것보다 빠르게 출산 기피 풍조가 퍼지며 인구 전망까지 바뀌는 판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총인구 감소 시기가 오는 2029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2027년으로 앞당겨진단다.

혹자는 인구가 줄어도 큰 걱정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생산성 향상’이 전제됐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역사적으로 인구 감소가 풍요로 이어진 적은 흑사병에 시달린 중세 유럽의 경우 딱 하나뿐이다. 토지의 평균 소유 면적이 커짐과 동시에 ‘로테르담 삼각 쟁기’ 도입 등 농업혁명이 진행돼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생산이라고 해야 농업이 거의 전부였던 시대와 요즘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인구가 줄면 생산과 소비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게 뻔하다. 나랏돈의 씀씀이 총량이 줄어들 뿐 아니라 지출의 내용까지 나빠질 수밖에 없다. 급증하는 노인들의 병을 고치고 최소한의 의식주를 제공하느라 재정의 생산성 저하가 불가피하다.



인구 구조가 지금과 같이 변해가는 한 한국 경제는 영원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인구 감소의 함정은 불과 9년밖에 안 남았다. 대학 신입생들이 20대의 마지막을 맞게 되는 시기부터 한국 경제는 항구적인 마이너스 요인에 직면한다. 무엇보다 걱정인 게 있다. 절체절명의 처지에 빠졌다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쭈이샤(醉蝦·drunken shrimp)’라는 중국 요리가 떠오른다. 물에 술을 조금 풀어 새우를 넣으면 육질이 연해지고 나쁜 불순물도 쉽게 빠져나가 맛이 좋아진다고 한다. 서서히 취해가며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새우와 우리가 무엇이 다를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청년들에게 이런 환경밖에 제공하지 못한 책임에서 우리 세대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보다 앞선 세대도 마찬가지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도 모자라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산아제한 구호 속에서 자라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피임 수술을 받으면 귀가 조치시켜주던 게 불과 몇십 년 전이다. 어느 누구 하나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못한 게 오늘날 인구절벽의 위기의 근본이다. 청년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고 청년은 순식간에 노인이 된다. ‘헬 조선’ 의식에 빠질 게 아니라 위기를 공감하고 보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부작용은 앞으로 더 심각해진다. 늦둥이 딸이 수명 100세를 넘길 2100년이면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2500년에는 한민족이 한 명도 남지 않는다’는 불길한 전망까지 나왔다. 출산율이 더 떨어진 만큼 민족의 소멸시기는 이보다도 빨라질 수 있다. 긴 호흡으로 본다면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를 살았던 한국인은 민족사에 가장 큰 재앙을 안긴 집단으로 기억될 수 있다. 민족이 사라져가는 전환점에서 술 취한 새우처럼 지냈으니.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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