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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김정일 딜레마와 김정은의 선택

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서경펠로

핵 사수하며 대화 병행한 김정일

김정은도 아버지와 같은 행보

北의 목표는 위기와 협상의 지속

회담 당사자들 헛수고할 가능성





세계경제포럼(WEF), 일명 다보스포럼에서는 대부분의 참석자가 국가원수든 다국적기업 회장이든 격식 없이 타이를 매지 않고 만나 얘기한다. 지난 2003년 다보스포럼에서 한 CNN 기자는 몇 분 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마주쳤다며 얘기 나눈 내용을 필자에게 전해줬다. 미국과 북한의 수교가 얼마나 가까이 갔었느냐고 기자가 묻자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정말 가까이 갔는데 시간이 요만큼 부족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0년 10월에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하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왜 시간이 부족했느냐고 묻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협상을 중재하느라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필자는 내심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중동 문제가 아니라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져 정신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르윈스키 스캔들이 없었더라면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을까. ‘이성(理性)’이 역사를 인도한다지만 ‘이성(異性)’ 문제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북핵 문제의 뿌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택이고 최근의 위기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선택의 결과다. 김정일은 세계 도처에서 독재자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핵 보유가 체제 유지의 담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핵무기 개발을 진행했다. 서방 강대국들의 안보 보증을 조건으로 비핵화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침략당했을 때 안보 보증의 실효성이 없었던 최근의 예를 보면 김정일의 선택에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 김정일은 또한 핵 개발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미국이 핵무기와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공격할 거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딜레마에 처한 김정일은 핵 보유 노력을 지속하되 협상을 병행해 파국을 면하는 생존 방식을 택했다. 그런데 김정은은 자국 안보를 위해 핵 보유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넘어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불사하겠다며 핵폭탄과 대륙간탄도탄 완성에 근접해가는 실험을 계속함으로써 스스로 국제사회가 용인하기 곤란한 위험인물이 됐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거론되는 이 시점에서도 ‘김정일 딜레마’는 여전히 유효하다. 김정일의 접근법에서는 핵무장도 비핵화도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에서 무엇을 얻어내려고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북한이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위기와 협상의 지속’ 자체가 북한의 목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일괄 타결은 북한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회담 당사자들은 헛수고만 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이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해보자. 한국은 개발독재를 거쳤지만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이룩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개방과 시장경제로 선진국 수준의 경제를 성취했지만 정치는 개발독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와 개방의 확대에 성공했다. 변화된 중국을 둘러본 김정일은 중국과 달리 시장경제와 개방의 확대는 북한 체제를 무너뜨릴 거라고 판단했다. 왜 그랬을까. 수많은 주민이 굶어 죽어도 꿈쩍하지 않고, 수많은 주민을 수용소에 가둬 관리하며 주민의 의사 표현을 철저히 통제해 지도자에게 절대복종하게 하는 스탈린식 체제를 반세기 이상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북한이 싱가포르나 중국보다 더 통제된 개방과 시장경제 확대를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

이유야 어쨌든 김정일의 선택은 경제개발이 아니라 핵 개발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현재 북한이 처한 딜레마다. 김정은은 다른가. 북한 내부에는 핵 보유와 경제개발 둘 다 하겠다고 말하고 외부에는 경제제재에도 핵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하다가 사세 불리하니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면서 협상을 제안하는 것을 보며 서로 다른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하나는 ‘역시 백두혈통’이라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사람이 어떻게 할지’ 잠시 두고 보자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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