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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24시]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임무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

변수 가득한 남북관계·국제정치

제안자·관리자 역할 동시 준비

회담 이후 상황 예측·대비해야





오는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최근 한반도 관련 상황 변화는 실로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다. 김정은 위원장의 유화정책은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것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미대화를 전격 수용한 것은 각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크게 당혹스럽게 했다. 상대의 예측 범위를 넘어 허를 찌르는 ‘트럼프다운’ 대응이었다. 측근들마저도 놀랐을 것이다.

그래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크게 고조되던 얼마 전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진전이다. 이 결과는 그간 ‘한반도 평화’를 대외정책의 최우선순위로 놓고 북한과 미국을 일관되게 설득해온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팀에 공을 돌려야 한다. 일단 새로운 진전에 국제사회와 우리 국민 모두 크게 환영하면서 고무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긴 여정의 입구에 들어섰을 뿐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 북한에는 정권의 생존이, 미국에는 현 국제질서의 유지와 패권적 위신이 걸려 있다. 미국과 북한 사이, 혹은 강대국들 간에 정치적 거래로 타협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중국·러시아·일본도 언제든 이 과정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이 비핵화 과정은 현 국제정치 질서 전체의 판을 흔들면서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거나 혹은 혼돈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질서’에 다가간다고 생각했던 상황이 사실상 ‘지옥’의 문을 너무 빨리 열어젖힌 것일 수도 있다. 우리를 포함한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준비가 잘돼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모두가 서로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정중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 스스로의 역량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변수들로 가득 차 있어 그 결과에 대한 낙관은 금물이다. 국제정치에서 낙관과 환호 뒤에 이어지는 실망과 분노는 종종 더 큰 재앙을 초래한다.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보수든 진보든 국내 최정예 전략가와 정책가들을 모아 국가의 집단지성 역량을 결집하고 ‘현 상황’ 이후 잉태될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검토와 대비를 추진해야 한다.



미국이든 북한이든 혹은 주변의 어떤 강대국이든 현 상황을 타개할 합당한 안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 단지 ‘중재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안자’ ‘촉진자’ ‘관리자’의 역할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문 정부가 가용할 최정예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미국과 북한에 오가게 하면서 우리의 ‘창의적인’ 안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그들의 안과 조율하면서 미국과 북한이 합의할 공간을 최대한 넓혀줘야 한다. 중국·일본·러시아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협상 진행 시 최대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북핵 문제는 3단계(Three-Level) 게임이다. 북한과 국내 정치,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다.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단기적 성과나 과시, 국내정치적 고려로 역사적인 임무를 망칠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대응 역시 보다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록 강력한 권력을 지녔다고는 하나 절대권력은 아니다. 그 역시 북한 당과 관료집단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지나치게 김 위원장의 절대권력을 부각하고 집중하는 우리 측의 언사는 오히려 그의 입지를 보수적으로 가져가게 할 수 있다.

남북관계와 국제정치의 불확실성은 항상 스스로에게 겸손하고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할 것을 요구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남북한 간의 합의가 깨졌을 때, 그리고 이 평화추진을 위한 여정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 넘겨진 결과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응역량을 강화하는 국방개혁이 꾸준히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문 대통령의 최근 입장을 보면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보수층에서도 이러한 문 대통령의 태도를 대체로 실용적이면서 균형을 잘 잡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가지 않을 수는 없는 길에 들어섰다. 지나친 비관론도, 지나친 낙관론도 배제하자. 신중하고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분명히 스스로의 안보와 평화를 추진해나가자. 그래도 추구하는 자만이 이를 획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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