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그녀의_창업을_응원해]"목소리 낼 곳이 없다면 만들면 되지" 닷페이스 조소담 대표

고교자퇴로 중도퇴장 경험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 창업

젊은 세대 모바일 스토리텔링

우리가 가장 강해요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사진제공=닷페이스




성소수자 축제에서 부모들이 다른 성소수자 자녀들을 안아준다. 그 장면은 여러 이들의 눈길을 멈추고 가슴을 찡하게 했다. 이윽고 보라색 바탕화면에 하얀색의 ‘닷페이스(.face)’가 나타난다. 성소수자, 청소년 성매매 등 우리 사회의 금기 아닌 금기를 정면으로 건드리며 제도 개선까지 이끌어낸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의 조소담(27·사진) 대표를 최근 서울 홍제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조 대표는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다. 친구들이 언론사에 입사해 기자가 됐을 때 언론사에서 내지 않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미디어를 만들었다. 노란 쇼트컷 머리스타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지난해 열린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의 첫 모임에서 ‘문재인 대통령 옆 노랑머리’로 신문 1면 사진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뽐냈다. 언론은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20대 여성을 대변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조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네가 유별난 애다”

조 대표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요구하는 데 서툴렀다.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다 보니 자기 의견을 내기보다는 묵묵히 따르는 편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유별나다’는 말을 들은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한 선생님이 여자아이들의 하복 상의가 터질 것 같다며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고 단추를 새로 달아야 할 위치를 직접 찍어줬다. 어떤 친구들은 수치스럽다고 울었고 어떤 아이들은 억울하다고 했다.

“‘왜 우리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단속해야 하는 거지’ 혼란스러웠어요. 남은 수업을 듣는 동안 계속 생각했어요. ‘이건 선생님이 사과해야 할 일이다’라고 결론 내렸어요”

교무실로 찾아가 생각을 말했다. 선생님이 받아들이지 않자 몇 달 동안 찾아가서 사과하시라고 말했다. 돌아온 건 “네가 유별난 애다”, “네가 이상한 애다”라는 말이었다.

그는 그때 처음으로 학교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학교라는 공간에 남아서 학교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더 많은 상처가 생길 게 두려웠다. 선생님인 어머니는 딸의 자퇴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 자퇴를 준비하면서 자퇴의 성공, 실패 유형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자신의 계획을 모아 200쪽 분량의 책을 만들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 생애 첫 중도퇴장의 경험이었다. 그는 이 경험을 두고 이같이 말한다.

“저는 중도 퇴장을 해본 경험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어요. 폭력적인 문화를 견디지 않고 박차고 나오는 경험은 중요합니다”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와 직원들이 서울 홍제동 유진상가에서 누워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무실에 걸린 이 사진은 ‘우리가 누워있는 걸로 보여? 세상을다르게 보는 방법, 닷페스타일’이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사진제공=닷페이스


◇ 미디어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다

그는 자퇴생 생활을 무사히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그룹으로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써서 연재해보는 게 어때” 어느 날 조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말했다. 미디어 ‘미스핏츠’의 공동창업자인 정세윤씨의 제안이었다. 평소에도 주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개인 SNS를 통해 의견 개진을 하는 조 대표를 눈여겨 봐온 것이다.

2014년 8월부터 ‘왕년이’, ‘썸머’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다. 20대들의 섹스할 장소에 대한 권리를 논하는 ‘붕가붕가의 방을 찾다’라는 시리즈가 데뷔작이었다. 또 ‘오빠 저 사실 ○갱이에요’, ‘이러나 저러나 닐리리 △년이래’ 등 도발적인 제목의 글로 여성을 향해 쏟아지는 편견에 일침을 날렸다. 본격적으로 그의 글이 알려진 건 그해 12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보낸 협박편지 ‘최씨 아저씨에게’부터였다. 미스핏츠에 발행됐던 글을 편지글의 형식을 살려 대자보 형태로 냈다. 이 글은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잘 표현했다며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고 그 결과 최 전 부총리가 대학생들과 대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인터넷 공간의 특성상 글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코멘트를 확인할 수 있는데 새로 알게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이전에는 적확한 글이라기보다 사람들의 반응을 얻기 위한 글들을 많이 썼는데 파급력이 커지다보니 더 많이 공부를 해서 정제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2016년 조소담 대표가 학교 졸업식에서 친구와 함께 기념 사진을 남기고 있다. 이후 같은 해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를 창업했다. /사진제공=조소담


◇틀 밖으로

처음부터 미디어 창업을 계획했던 건 아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했던 때도 있었다. 한 방송사의 사회부에서 스크립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방송 뉴스로 나오는 짧은 분량 외에 인터뷰 전체를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인터뷰가 된 전체 녹음 파일을 풀어쓰는 일이었는데 잠입취재를 가서도 인터뷰이를 설득하기 위해 윽박지르기보다는 인간적으로 설득하기도 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서 이야기를 듣는 일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때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멋있다고 느꼈습니다”

본격적으로 언론사 입사 준비를 시작했지만 상식, 작문, 논술 스터디가 주를 이루는 다른 언론사 준비생들과 달랐다. 오전에는 작문, 논술 스터디를 했지만 저녁 시간에는 서울시에서 마련한 ‘꿈꾸는 데이터 디자이너’ 과정을 들으며 언론사 준비생 이외의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와 뜻이 맞는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이야기와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디지털에서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뚜렷했어요”

팀원들과 모이면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당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거셀 때였다. 대학별로 반대 서명이 모이면 그게 얼마나 모이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는 데 아쉬움을 느꼈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아이디어를 낸 게 소셜 서명 사이트였다. 웹사이트로 서명을 한 뒤 SNS 상 친구들의 서명 현황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와 직원들이 서울 홍제동 유진상가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포스터가 떠올려지는 장면이다. /사진제공=닷페이스




◇ ‘너무 해보고 싶어서 야매로라도’

“그저 좋은 팀원들이 있으니까 시도를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함께했던 팀원들과 도전했던 게 그해 11월 열렸던 ‘SDF 넥스트 미디어 챌린지’였다. 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경기도와 SBS가 공동 주최한 경진대회였다. 당시 대회에 참여했던 팀 중에는 이미 제품까지 나오거나 준비한 지 몇 달 이상 된 팀이 상당수였다.

1박 2일 동안 밤새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발표하는 형태였다. 그의 팀이 낸 결과물은 ‘목격자들의 저널리즘’이라는 형태로 현장에 있던 사람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을 다룬다는 형태였다. 시위 현장의 경우 특정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시위 보도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를 참가자 각자의 시선을 합치면 더 진실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뜻밖의 대상을 수상했다. 닷페이스 창업의 씨앗이 됐다.

팀이 뭉치면 무엇이든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트니스를 할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주하는 장면을 전하고 싶었는데 창업을 준비하다 보니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았어요”

2016년 3월에 한두 달 정도 준비를 해서 본격적으로 5월부터 시작했다. ‘직면하다’, ‘얼굴’ 등의 뜻을 가진 ‘.face’로 이름을 짓게 됐다. 본격적으로 미디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에게 투자를 받게 된 건 10월이었다.

“일반적인 여론에 호소하기보다는 감수성과 라이프스타일이 같은 이들에게 말을 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빨리 전하는 것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해결방안은 무엇인지가 관심사지요. 이제 닷페이스는 모바일상에서 젊은 세대를 위한 스토리텔링을 제일 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자부해요”

실제 닷페이스는 갓 창업 일 년을 넘겼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화제가 된 미디어 업체다. ‘우리에겐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라는 영상으로 학교 내 페미니즘 교육 부재에 대해 논쟁의 불을 붙였다. 또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피해자의 1인칭 시점으로 포착해 질문을 던졌다. 개헌 설명 영상은 20대에게 어려운 주제인데도 페이스북에서만 조회수 160만회를 기록했다.

조소담(오른쪽 두번째) 대표가 미성년자를 성매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젝트 ‘H.I.M(Here I am)’를 펀딩을 한 금액을 한 복지재단에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조소담


◇성장을 꿈꾸는 개인주의자들의 공동체

기존 언론사에 입사하지 않은 데 후회는 없을까. 바로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닷페이스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더 나은 문화를 고민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게 있어요. 나중에 이 일을 그만하게 된다면 농사를 짓거나 독립책방을 열지 않을까요?”

그는 지금 무엇보다 조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닷페이스를 ‘성장을 꿈꾸는 개인주의자들의 공동체’로 만드는 게 그의 비전이다. 일반 직장처럼 못 하는 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닷페이스에는 없다. 잘 하고 싶은 건 확실히 잘 하고 싶다고 표현하고 못 하는 일에 대해서는 못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닷페이스의 문화다. 자신의 취약한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발전시키고 싶은 부분을 구성원들이 공유한다.

“문제를 잘 파헤치고 파고드는 사람, 인물을 만나서 가치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사람, 사소한 소재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등 잘 하는 부분은 다 다를 거예요. 저희는 개인이 잘 하고 싶은 부분에 집중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콘텐츠 창작자가 되는 게 꿈이예요”

지난 연말부터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중기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성소수자, 여성과 남성의 공존, 올바른 젠더 의식 등도 닷페이스가 집중하는 분야다. 미성년자를 성매수하려는 남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H.I.M(Here I am)’ 프로젝트를 세 차례에 걸쳐 내보냈고 페이스북에서만 162만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후 성매매에 이용된 아동·청소년이 피해자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아동청소년보호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진행했고 국회는 법안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과 대만의 방송사에서는 이 영상을 번역해서 내보내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 새로운 상식을 만드는 논픽션 채널

“자기 삶에서 어떤 게 잘 못 됐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걸 이야기하고 바꾸고 싶다는 감수성이 있는 분들이 많아요. 자기 삶과 옆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좋아지게 하고 싶은데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 주는 채널이 없는 사람들이죠”

닷페이스의 독자들은 18∼34세가 80% 정도이고 20대 여성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제 닷페이스는 페이스북 플랫폼에 집중했던 초기와 달리 플랫폼 기반을 유튜브로 옮기고 있다. 반응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수는 12만명이고 유튜브는 절반 수준인 6만 3,000명이지만 팬이 됐다는 게 극명하게 드러난다.

“펀딩 참여나 프로젝트 소개글을 올려도 관련 링크를 달아놓으면 각각 링크에 유입된 수치는 똑 같아요. 참여 비율에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죠”

닷페이스의 구독자 수 증가는 다른 미디어 스타트업에서도 참고하는 사례다. 지난 한 달 동안 구독자 수가 1만명이 넘게 증가했다.

눈에 띄는 성과지만 그는 아직도 갈증이 많다. “아시아 지역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있어요. 이들이 공감하는 새로운 상식을 만드는 멋있는 논픽션 채널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