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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선비의 '쌩얼' 피부과 의사의 진단은...

■이성낙 지음, 눌와 펴냄





영조 때 공조판서를 지낸 송창명의 초상화는 한쪽 볼 전체와 귀까지 하얗게 칠해져 있다. 그림이 훼손된 것으로 보일 정도다. 관모를 눌러쓴 이마 쪽도 허옇다. 피부과 의사이자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를 ‘백반증’으로 진단했다. 특히 그림에서는 하얗게 변한 피부의 가장자리가 약간 거뭇한 ‘경계과색소침윤’까지 묘사됐고 저자는 이를 독일의 피부과학 학술지에 발표했다. ‘송창명 초상’은 백반증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그림 기록이 됐다.

숙종 때의 문신 오명항의 초상은 유난히 시커멓다. 간질환이 악화돼 나타나는 흑색황달을 묘사한 것이다. 18세기 중엽에 그려진 ‘유복명 초상’도 낯빛이 거뭇하나 양상은 다르다. 저자는 그림을 분석해 안면 전체에 난 가는 털을 확인했고 다모증으로 진단을 내렸다. 터럭 하나까지도 똑같이 그리려 한 조선 시대의 초상화 원칙이 그대로 반영됐다. 여기에는 조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남겨 효를 실천하려는 유교 전통이 깔려 있었지만 저자는 이것이 조선을 이끈 정직하고 올곧은 ‘선비정신’이라고 분석한다.



그 원칙에서 왕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어진을 보면 오른쪽 눈썹 위에 사마귀까지 정교하게 그리고 있다. 나중에 19세기 말 ‘태조 어진’을 모사할 때도 눈썹 위의 혹은 그대로 그려졌다.

조선 시대의 초상화는 국보로 5점, 보물로 70여 점이 지정문화재가 될 정도로 많이 그려져 전한다. 피부병과 흉터까지 그려낸 화원들 못지않게 집요한 의지로 저자는 총 519점의 조선 초상화를 분석했다. 이 중 보존상태가 좋은 368점에서 피부 상태를 진단할 수 있었는데 무려 268점에서 20종의 피부병이 발견됐다. 저자는 “천연두 흉터가 73점이나 나타난 것은 조선 시대에 천연두가 얼마나 창궐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 했고 “만성간질환의 결과 나타나는 흑색황달이 9점이나 관찰된 것도 흥미롭다”고 밝혔다. 각각의 초상화에 얽힌 세세한 사연도 읽을거리일 뿐 아니라 스스로도 숨길 것 없고 한치의 부끄럼 없이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책이다. 1만8,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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