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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_창업을_응원해] 동물 가죽 사용 않고 패션 가방 만든 사연

박진영, 신하나 '낫아워스' 공동대표

‘동물 착취 없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는 낫아워스의 박진영(오른쪽) 대표와 신하나 대표.




겨울철 패딩이나 코트의 장식재로 많이 쓰이는 라쿤은 대부분은 중국의 공장식 사육시설에서 생산된다. 비좁고 더러운 시설에서 각종 질병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가죽이 벗겨지는 잔혹한 과정을 거친다. 최근 글로벌 패션업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동물 착취 없는 패션’이다. 지난해 구찌의 전문경영인(CEO) 마르코 비자리가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하는 등 명품 패션업체들의 ‘퍼 프리’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선 윤리적 생산을 거친 패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다. 너무 비싸거나 너무 저급해 시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동물 착취 없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모토로 내걸고 도전장을 내민 두 명의 젊은 여성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가을 선보인 신생 패션 브랜드 ‘낫아워스(Not ours)’ 박진영(37) 대표와 신하나(36)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비건으로 맺은 인연, 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지다

디자이너인 박 대표와 브랜드 마케터인 신 대표는 패션디자이너 업체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였다. 규모가 작은 회사였던 만큼 또래인 둘이 통하는 게 많았고, 각자 회사를 나온 후에도 종종 만나 안부를 챙기며 우정을 키웠다.

박 대표는 어릴 적부터 고기류보다는 채소류를 선호하는 식습관 탓에 자연스럽게 채식주의자가 됐고, 대학 시절 동물 착취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후에는 의식적인 ‘비건’으로 거듭났다. ‘비건(Vegan)’은 우유와 달걀까지 완전 채식주의자로, 우유는 허용하고 달걀은 안 먹는 ‘락토(Lacto)’나 달걀을 허용하고 우유를 안 먹는 ‘오보(Ovo)’보다 엄격하다. 채식은 박 대표가 먼저 시작했지만 윤리적 패션에 대해 눈을 뜬 것은 신 대표다.

“지난해 추석 전에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비건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얘기를 나눴어요. 먹는 건 가능한데 옷이나 신발 등 가죽이나 동물의 털로 만들어진 제품까지 사용하지 않으면서 스타일링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서로 하소연을 했던 거죠. 그러다가 비건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처럼 신고 입는 것까지 동물 착취 없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그게 ‘낫아워스’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업에 나서게 된 ‘우연인 듯 필연의 순간’을 떠올리던 두 대표는 서로를 바라 보며 활짝 웃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필요로 해서 시작하는 사업이라면 후회도 없을 것 같았다. “우리가 입을 만한 옷을 하나만 만들어보면 어떨까”라고 농담처럼 주고 받다가, 추석 명절이 지나자마자 실행에 옮겼다. 겨울 시즌 아이템 선정에 돌입했다. 겨울철에는 모피 수요가 많은 만큼 페이크퍼(fake fur·인조털)로 만든 아우터가 시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우리 것이 아닌 것 ‘낫아워스’의 탄생

낫아워스의 철학을 담은 첫번째 도전작 ‘페이크퍼 코트’는 ‘비건의 완벽한 겨울 아우터, 페이크퍼 하프 코트’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낫아워스의 철학을 담는 첫 제품인 만큼 퀄리티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요소였다. 폴리에스터 100%로 만든 페이크퍼 아우터는 부드러운 털이 엉덩이까지 덮는 포근한 디자인으로, 페이크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밍크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지난해 11월 소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 ‘비건의 완벽한 겨울 아우터, 페이크퍼 하프 코트’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가격은 32만 5,000원, 홈쇼핑이나 온라인몰에서 10만원 내외에 판매되는 페이크퍼 제품도 많았던 만큼 가격이 적지 않았지만 최소 수량(35벌)을 넘어선 40벌을 판매하며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신 대표는 “비건 중에는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고, 텀블벅이 트위터를 메인 채널로 운영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면서 “단기간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옷을 팔아야 하는데, 우리의 철학을 이해해줄 이들이 많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첫 스타트였지만 홍보는 제대로 하고 싶었다. 코트 착장샷을 찍어 올리는 것은 물론 홍대 인근 스튜디오를 빌려 쇼룸도 열었다. 지인들만 찾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 외로 트위터나 지인의 소개로 찾은 이들도 적지 않다. 매장도 없고, 브랜드조차 생소한 제품에 30만원이 넘는 고가의 코트를 제안한 것이 무모한 도전 같았지만, 오히려 ‘동물 착취 없는 윤리적 생산’의 의미를 되새긴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직접 제품을 만지고 걸친 고객들은 모피 못지 않은 푹신한 감촉이라고 호평을 쏟아냈다.

박 대표는 “인조 소재로도 얼마든지 천연 모피 못지 않은 촉감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자 했다”면서 “그 동안 수요가 없기 때문에 생산되지 않았을 뿐 기술만 뒷받침된다면 인조 소재의 활용 영역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옷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전 과정에 고민을 담다

낫아워스의 두 번째 도전작은 ‘낫아워스’의 로고를 선명하게 새겼다.


첫 번째 도전에서 성공의 단맛을 본 박 대표와 신 대표는 지난 1월 두 번째 도전작 스웻셔츠를 내놓았다. 검정과 회색 두 가지 컬러로, 가슴 부분에 ‘낫아워스’의 로고와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진 제품이었다. 인터뷰 당일에도 스웻셔츠를 입고 나온 이들은 페이크퍼 코트 때보다 많은 후원자가 몰리면서 160장이 넘게 팔렸다며 활짝 웃었다. 가격은 장당 5만 9,000원으로 일반인들이 느끼는 가격 부담은 덜었고, 브랜드 홍보에도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스웻셔츠가 면 소재 제품인 만큼 제작 과정이 쉬웠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복병이 나타났다며 후일담을 들려줬다. 샘플 제품의 프린트 잉크 성분이 PVC(Polyvinyl chloride·폴리염화비닐)이라는 점 때문에 폐기 처분하고, 수성 고무 성분으로 바꾼 것이다.



동물이 털이나 가죽만 안 쓰면 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표는 단호하게 “윤리적 생산이라는 우리의 철학을 오롯이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가능하면 포장지까지 환경 오염이 덜한 소재를 찾는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우리의 것이 아닌 것들’이라는 의미인 ‘낫아워스’도 ‘우리의 털이 아닌 털’이라는 뜻과 함께 ‘우리의 것이 아닌 미래 세대의 자원’이라는 철학을 담았다. 박 대표는 “동물을 착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옷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전 과정을 가능하면 윤리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이는 소재에 대한 고민에서 더 나아가 환경 오염에 대한 고민, 노동 착취에 대한 고민까지 포괄한 개념이다.

싼값에 패션 의류를 구매할 수 있는 패스트패션에 대해서도 고민의 여지를 남겼다. 신 대표는 “패스트패션은 저개발국가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옷값을 낮추는 한편으로는 저렴한 옷값 때문에 사람들이 한 시즌 입고 버리는 옷으로 인식되면서 쓰레기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 의식 때문에 낫아워스를 100% 주문 생산 방식으로 운영, 불필요한 쓰레기와 재고를 만들지 않으려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낫아워스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

최근 내놓은 페이크 레더 크로스 백, 그동안 채식주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방이 에코백에 한정됐던 만큼 새로운 시장을 연다는 야심찬 목표다.


이들은 최근 3번째 도전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번에는 가방이다. 처음에 비건들이 입고, 신고, 맬 것이 없다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한 만큼 이번에는 매는 가방에 도전한 것이다.

박 대표는 “에코백을 매는 경우도 많지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나 회사에 출근할 때 맬 수 있는 가방이 없다는 이유로, 상당수 비건들도 가방만큼은 철학을 유예할 수 밖에 없다”며 “페이크퍼 코트처럼 페이크 레더(Fake leather)지만 오히려 진짜 가죽보다 퀄리티를 갖고 있는 제대로 된 가방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숄더백과 크로스백 두 가지 스타일링이 가능한 가방으로, 최근 텀블벅에 26만 7,000원의 가격으로 내놓았다. 컬러는 블랙과 오트밀로, 페이크 레더 가방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게 1차적인 목적이다. 소재는 폴리우레탄이다.

박 대표는 “PVC는 생산 공정부터 화학 물질을 통해 다이옥신이 나와 환경에 남고, 태워도 공기 중으로 방출되면서 제2, 제3의 오염원이 된다”면서 “폴리우레탄으로 대체하면 아무래도 PVC보다 원료 가격이 올라가지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이 환경 이슈로 등장하면서 대체 소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식품 유통을 위해 사용되는 대부분의 용기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으로 플라스틱 소재다. 스티로폼 컵과 쟁반, 수조, 장난감 블록은 폴리스티렌(PS)으로 역시 플라스틱이다. 수액·혈액 팩, 파이프, 배수로, 전선, 플라스틱 양동이도 폴리염화비닐(PVC)로 플라스틱에 포함된다. 실험 결과 PVC는 간과 신장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밝혀져 2005년부터 병원의 수액·혈액 팩으로 PVC 팩을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까지 받은 상태다. 치약과 세정제로 사용되고, 피부에 직접 바르는 화장품에도 폭넓게 사용될 정도다. 세계적인 패션기업인 샤넬은 지난해 환경오염원 중 하나인 PVC를 주제로 한 패션쇼를 진행했다가 논란에 휩싸였을 정도로 환경은 패션업계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낫아워스는 여름과 가을, 겨울 시즌 아이템을 구상 중이다. 특히 캐시미어 니트를 대체하는 신개념 니트는 꼭 하고 싶은 아이템이다. 신 대표는 “캐시미어는 인도의 카슈미르나 티베트 등지 염소의 연한 털로 만드는데 염소의 네 발을 묶고 억지로 빗질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며 “공장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 역시 시간 단위로 임금을 받는 만큼 빨리 깎으려 하다 보니까 양이 다치는 것을 무시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설립 1년이 채 안 된 스타트업으로 패션업계에 작지만 강한 돌풍을 몰고 오는 ‘낫아워스’, 이들이 꿈꾸는 낫아워스의 미래는 무엇일까.

“거창하게 사명감 같은 걸로 창업한 건 아니에요. 저희처럼 다른 생물에 해를 끼치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 대한 노동 착취의 대가로 소비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선한 마음에 기대서 사업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선한 마음이 보답 받을 수 있도록 퀄리티로 보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저희의 소명이자 나아갈 방향이겠지요.”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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