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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 Market] 빅데이터 연구 급할수록 돌아가라

이레나 이화여대 의대 의공학교실 교수

빅데이터 연구 앞다퉈 나서지만

성과에만 집착하면 실패 불보듯

인프라 육성·기관 조율에 힘쓰길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서두르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거나 신중하게 진행할 때보다 오히려 더 느려지는 경우를 경계한 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지금은 선두 그룹의 지위를 노린다. 그러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제천·밀양 화재사고는 다시 한 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구조적 부실을 떠올리게 한다. 복잡성이 한층 더해지는 4차 산업혁명에서도 앞만 보고 달리는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몇 년 새 과학계에서는 빅데이터가 중요 화두로 떠올랐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꽤 익숙한 용어가 됐다. 정부도 연구자들의 과제 제안 항목으로 빅데이터 분야를 추가했다. 연구 주제도 ‘유행’을 탄다. 정부 역시 유행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고 그것이 미래에 큰 발전을 이룰 거의 확실한 기술이라 하더라도 국가 재정의 투입은 신중해야 한다. 지나친 조급증으로 실패를 경험한 예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자 스티브 잡스’로 불리던 엘리자베스 홈스는 혈액 몇 방울을 이용한 간단한 진단 기술을 개발한다면서 테라노스를 창업했다. 하지만 투자 유치 후 예상했던 시기까지 기대했던 기술들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고 여러 소송에 휘말리면서 테라노스는 지금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오히려 제널라이트와 같은 후발 기업들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충분한 과학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시장을 선점하고자 했던 성급함 때문에 테라노스는 경쟁사들에 아이디어만 제공한 채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우리에게도 뼈아픈 예가 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논문조작이라는 윤리적 문제 이외에도 줄기세포 연구에서 피실험자에 대한 윤리적 보호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 경쟁 심화로 각국 연구소마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오로지 성과만을 강요한 탓에 벌어진 일이다. 황우석 사태로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연구가 큰 시련을 겪는 동안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는 2006년 역분화줄기세포주를 만들었고 그 공로로 2012년 노벨상까지 수상했다.

빅데이터 산업의 핵심은 기술보다는 사용 가능한 포맷으로 데이터를 획득하는 것과 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다. 미리 기획된 구조 없이 무조건 빅데이터를 얻었다가 이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면 결국 그 데이터는 쓰레기밖에 되지 않는다. 제대로 사용 가능한 포맷의 데이터들이 수집돼야만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프라 구축 없이 사업을 확장하면 너무 빨리 심은 씨앗에 줄 양분과 물이 없어 오히려 씨앗을 죽이는 결과를 부른다. 인프라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연구·산업 생태계가 자생적으로 커지기 어렵다. 인프라 육성을 지원하되 부족한 인프라 내에서 비슷한 연구를 하는 기관을 서로 연계해주거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융합·조율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선점 콤플렉스’는 후발주자의 필연이다. 빨리 뛰어든 자들이 시장을 독식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빨리 진입하는 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 되는 경우는 어디까지나 그것이 옳은 진입이었을 때다. 특히 빅데이터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초창기 과정이 산업 진행의 100%에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가운 머리로 냉철하게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날로 고도화되는 초기술사회에서 역설적이게도 ‘빨리빨리’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지반을 다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빅데이터로 우리나라 기술 산업이 발전을 넘어 성숙의 단계로 도약하려면 서둘러야 할 부분이 과연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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