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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포트:강요된 돈거래도 '미투']월100만원 대학원생 연구인건비도 갈취...음대선 고가 악기 강매

■대학사회의 '갑질 그늘

'정부서 받는 인건비 '눈먼 돈' 인식...매달 절반 상납 만연

"교수는 제왕적 존재" 앞길 막을까봐 문제 제기조차 못해

학생들에 수필집 구매 강요까지...착취 구조 방지장치 시급





# 서울 소재 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A씨는 지난 학기 지도교수로부터 자기 명의의 공금통장을 만들어 제출하라는 갑작스러운 지시를 받았다. 공금통장 개설의 목적은 금세 드러났다. 해당 교수는 A씨를 비롯한 연구실 대학원생들에게 “매달 정부로부터 받는 인건비 중 50만원씩을 공금통장에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A씨는 공금의 용처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다음 과제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연구실에서 교수는 제왕적 존재나 다름없기에 대학원생은 주인의 말을 잘 듣는 현대판 노예”라며 “인건비는 학생에게만 지급되는 몫이기 때문에 교수 계좌로 이체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학생 명의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 제기를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 컴퓨터공학 분야 박사과정생인 B씨도 지난해 이 같은 교수의 금전 요구에 부당함을 느꼈다. 박사과정 학생의 경우 연구실에서 종일 근무하기 때문에 연구인건비 외에는 생활비를 확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교수가 빼돌렸다. 문제 제기로 교수에게 밉보일 경우 학계에 남지 못하는 최악의 수도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담당 교수가 확보한 국책연구사업에 참여한 후로 자신의 인건비를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다고 학교 측에 폭로했다. 학교 측은 문제점을 즉각 파악하고 지난 가을학기 해당 교수에게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 공공기관 국책사업 29개를 수주한 서울의 한 사립대 C 교수의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공부 중인 D씨는 인건비 절반을 상납해야 했다. C 교수는 매달 인건비 입금일이 되면 직접 보관하던 연구실 대학원생들의 개인 체크카드를 나눠주며 전체 인건비를 현금으로 인출할 것을 지시했다. 이 중 자신에게 가져와야 할 액수까지 정해줬다. D씨는 매달 90만~100만원가량을 C 교수에게 전달했다. C 교수가 빼돌린 학생 인건비만 6억4,000만원이다. 그는 또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문구점에서 연구비 신용카드를 이용해 거짓으로 사무용품을 사들인 후 문구점 사장에게 본인이 원하는 신발과 의류 등을 사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대학원생에게 정당한 인건비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갑질 행태까지 포함하는 범죄”라고 설명했다.

권력에 의한 성범죄 문제가 사회 전반에서 불거지는 가운데 대학가에서도 교수들이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를 착취하는 갑질 관행이 만연한 실정이다. 정부지원 국책연구과제가 몰려 있는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교수의 인건비 횡령이 흔한 일이라는 분위기다. 정부출연금인 연구인건비의 경우 산학협력단을 통해 개별 학생 계좌에 입금된 후에는 개별적으로 사용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눈먼 돈’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비를 횡령한 교수들은 연구에 사용할 공공의 비용을 만든다는 이유로 인건비를 요구하지만 사실상 용처를 밝히지 않고 사적으로 사용한다는 게 문제다.



교수의 부당한 금전 요구를 학생들이 묵과하는 것은 교수의 권력에 섣불리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 권위자인 교수의 지시사항을 듣지 않을 경우 구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박사과정인 대학원생의 경우 졸업 후에도 교수나 연구원 등으로 학계에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교수에게 찍혀서 득이 될 게 없다는 의견이다. 교수에 의해 강요된 금전 요구 행태가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의 이공계 분야 박사과정 학생인 E씨는 “많은 이공계 랩실에서 교수들의 인건비 횡령이 이뤄지고 있다”며 “학교 측에서 횡령 문제를 인식하고도 걸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라 여기고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강요된 금전 요구만큼이나 교수들의 강매 사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한 대학 강사는 F대에 처음으로 수업을 나간 후 전임교수로부터 자신이 매매를 중개하는 바이올린을 학생들에게 팔아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바이올린 가격이 원가보다 2배 정도 비싸 학생들에게 차마 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의 한 사립대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G씨도 “지난해 전임교수가 자신이 저술한 수필집을 학생들에게 구매할 것을 강요한 적이 있다”며 “구입하지 않으면 졸업할 때 영향이 있을까 지레 겁을 먹고 구입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후학을 양성하고 국가 성장동력을 연구개발하는 대학 연구실에서 권력에 의한 압박과 요구는 지양하는 분위기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 안에서도 깊게 뿌리내린 교수를 상위에 둔 수직적 구조, 권력에 의한 부당한 지시 등은 최근 사회적 흐름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며 “대학원생들이 석박사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최소한 생활비인 인건비가 제대로 사용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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