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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포트:강요된 돈거래도 '미투'] 승진 운운하며 급전 빌리고..돈갚을때 되면 '배째라'식 버티기

[강요된 돈 거래도 '미투'] 직장 내 만연한 '질 나쁜 선배'





“괜히 찍혀 불이익 받을라” 상사 뜻 거절하기 어려워

고발·신고 거론해야 겨우 변제..“더 꿔달라” 압박도

금전거래 금지 규정있지만 온정주의 문화 탓 쉽지않아



30대 직장인 최지훈(가명)씨는 같은 회사 팀장이 한 달만 사용하겠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해 여유자금 3,000만원을 빌려줬다. 돈을 갚기로 한 날짜가 지났지만 해당 팀장은 변제를 차일피일 미루며 돈을 주지 않았다. 최씨는 속앓이를 하다 직장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직장선배는 “나 역시 팀장에게 1,000만원가량을 빌려줬는데 돈 받기를 사실상 포기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는 이후 돈을 돌려받기 위해 팀장에게 월급날이 돌아올 때마다 읍소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한 뒤에야 겨우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최씨는 “해당 팀장의 경우 부하 직원들이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돈을 빌린 뒤 제대로 갚지 않는 등 아랫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 않았다”며 “하지만 팀장이 최근 임원으로 승진하는 등 윗사람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허탈했다”고 말했다.

금융사에 근무하는 한준호(가명)씨는 직장 초년생 시절 ‘질 나쁜 선배’ 박 대리를 뚜렷이 기억한다. 박 대리는 워낙 붙임성이 좋고 성격이 쾌활해 신입사원들에게는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그는 병원비 등 급전이 필요하다며 신입사원들에게 수십에서 수백만원의 돈을 빌린 후 제대로 갚은 적이 없다. 한씨 역시 박 대리에게 200만원가량을 빌려줬다. 매몰차게 거절할 경우 인간관계가 흐트러질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리는 “돈을 갚겠다”는 말만 반복적으로 한 후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한씨가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거칠게 항의하자 박 대리는 돈을 내놓았다. 한씨는 “나중에 들어보니 박 대리가 나에게 돌려준 돈은 다른 신입사원에게 또 빌린 돈인 것 같았다”며 “박 대리는 본인에게 거절하기 어려운 신입사원들에게 자금 대여를 요구하는 질 나쁜 선배였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대형마트에 근무하는 이정호(가명)씨는 어느 날 점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점장은 이씨와 둘만 있는 자리에서 대뜸 “앞으로 인사철이 다가오는데 승진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잘하고 못하고는 네 행동에 달려 있다”는 말을 꺼냈다. 그러더니 본인이 현재 난처한 상황에 처했는데 4,000만원만 대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씨는 승진에 대한 욕심도 생겼지만 돈을 주지 않을 경우 업무 분배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돼 이곳저곳에서 돈을 끌어와 점장에게 돈을 빌려줬다. 이씨가 돈을 마련하자 점장은 이후 “자금을 조금 더 융통해달라”며 수백만원씩 수차례 더 빌렸다. 이렇게 빌려준 돈이 무려 6,400만원에 달했다. 점장은 이후 돈을 갚겠다는 날에도 돈을 돌려주지 않았고 이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화를 냈다. 이씨는 결국 본사에 고발했지만 점장은 이미 자금을 탕진해 돈을 돌려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대부분의 직장이 취업규칙 등을 통해 직무관계자와의 금전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산다는 온정주의적 문화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어 이 같은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특히 직장 내에서 선후배 간 돈거래에 대해서는 직무관계자와 거래인지조차 불확실한 경우도 많다. 감사실에서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개인 간의 일로 치부할 뿐이다. 이 같은 강요된 금전 거래를 방치하다 보니 돈 문제가 직장 내 병폐로 변질하고 있다. 부하 직원의 경우 속앓이를 하며 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상급자가 금융기관이 아닌 부하직원 등 사적 이해관계자에게 금전을 차용하는 것은 상당수가 도박·유흥 등 부정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경제센터실행위원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출금리가 부담스러워 직장동료에게 저금리로 돈을 빌리는 문화가 확산됐는데 이게 직장공동체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제신문이 취재한 결과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주로 두 가지 이유에서 돈을 건넸다. 돈을 빌려주며 친근감이 유지될 경우 승진 기회 등 호의를 얻을 수 있다는 측면이다. 돈을 빌려준 대상이 조직의 책임자인 경우 이런 이유가 두드러졌다. 또 다른 이유는 거절했을 경우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조직 내 높은 지위를 지닌 사람과 개인적으로 마찰이 생길 경우 과다한 업무 배정, 승진 누락 등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일종의 두려움이다. 또 조직 내 윗사람과 괜히 불편해지기 싫다거나 찍히기 무섭다는 이유도 작용했다. 이유야 어떻든 “윗사람이 먼저 돈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좋겠다”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최근 미투 운동 등 권력자의 횡포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사회고발 운동이 활발한 이 시점에 수직적 관계의 조직문화에서 발생하는 ‘강요된 돈거래’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온다. 박성우 노무사는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의 돈거래는 자유의사에 기할 수 없다”며 “조직 내 돈거래는 온정주의적 문화가 아니며 사라져야 할 적폐”라고 평가했다. 안 위원 역시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상으로 돈을 빌리는 행위는 강요가 될 수 있다”며 “조직 내 수직관계에서의 금전대차 행위를 원칙적으로 근절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강동효기자 부산=조원진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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