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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돼지에게 살해된 왕] 어린 왕의 죽음, 프랑스의 상징을 만들다

미셸 파스투로 지음, 오롯 펴냄





별일이 다 있다. 1131년 10월 13일, 지금의 프랑스로 이어진 카페왕조의 왕 루이 6세의 장남이자 2년 전 대관식을 올리고 공동 왕위에 올라있던 어린 왕 필리프(1116~1131)가 낙마 사고로 죽었다. 파리 근교를 지나던 그의 말 다리 사이로 돼지 한 마리가 뛰어드는 바람에 떨어진 것이 하필이면 돌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사건은 여기서 시작됐다. 사냥터에서 용맹스럽게 멧돼지를 쫓다가 죽었다면 그것은 전사다운 자랑스러운 죽음이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바이에른 공국의 군주 타실로 3세의 아들 군터는 멧돼지와 맞서다 죽었고, 그가 사망한 자리에 지어진 크렘뮌스터 수도원에는 지금도 군터의 무덤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농장에서 키우는, 불결함과 탐욕의 상징이던 돼지 때문에 열 다섯 살의 젊은 프랑스 왕이 목숨 잃은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신이 내린 벌’이라고 수군거렸다. 죽은 필리프 대신 왕위에 오른 루이 7세는 정치를 제대로 못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왕비와 함께 직접 2차 십자군전쟁에 나섰으나 원정은 실패하고 전쟁 중의 불화로 부인과도 이혼한다. 죽지 않았더라면 필리프와 결혼할 예정이던 알리에노르 왕비는 이혼 3개월 만에 잉글랜드의 왕이 된 헨리와 재혼한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서부지역 땅을 놓고 영국과 대립하게 되고 훗날 백년전쟁의 씨앗이 됐다.

왕국의 명예에 돼지 오물이 튄 격이니 왕과 그 측근들은 수치스러운 죽음을 지우고 위신을 다시 세워야 했다. 루이 7세의 자문이던 쉬제르 생드니수도원장 등은 예수의 어머니 성모마리아와 그 순결함을 상징하는 백합, 신성한 천상의 색으로 여겨진 파란색을 앞세워 ‘돼지 사건’의 흔적을 덮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저명한 중세사 연구자인 저자는 치욕적인 필리프 왕의 죽음을 발단으로 어떻게 백합과 파란색이 국가 상징이 됐는지를 파헤쳤다.

쉬제르는 프랑스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는 수도원 교회의 창을 파란 색유리로 장식하고 권위있는 주교들은 설교를 통해 성모와 백합의 관계를 설파했다. 파란 바탕에 백합꽃이 새겨진 문양은 1179년께 대관식을 치른 필리프 2세의 인장 등을 시작으로 왕실의 표상이 된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 왕당파와 맞서 사운 혁명군도 ‘레 블뢰(Les Bleus·푸른색)’이었고 ‘아트사커’로 통하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유니폼도 파란색이다.

우연인 것 같은 악연도 있지만, 필연일 것 같은 일이 사실은 의도치않은 우연일 수도 있다. 2만5,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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