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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전리품 ‘포스코’의 악순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지난 18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갑자기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권 회장은 이날 임시 이사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포스코의 새로운 100년을 위해 최고경영자(CEO)의 변화가 필요하다. 저보다 더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젊은 분에게 회사의 경영을 넘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포스코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내린 결단임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권 회장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역대 포스코 회장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업 주역인 박태준 회장이 집권여당과의 불화로 물러난 것을 시작으로 역대 회장들이 떠난 시기는 대부분 정권 교체기와 맞물립니다. 4대 회장인 김만제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자진 사퇴했으며 유상부 전 회장(5대)은 노무현 정부, 이구택 전 회장(6대)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중도에 물러났습니다. 정준양 회장(7대)도 2008년 선임 때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불린 박영준 전 차관의 개입 의혹이 제기된 뒤 2014년 초 박근혜 정부 때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더군다나 그간 권 회장의 행보를 고려하면 석연치 않은 점이 많습니다. 우선 작년 초 연임에 성공한 권 회장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로 아직 2년 가까이 남았습니다. 또 전임자들인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회장도 모두 정권 교체와 맞물려 물러나긴 했지만 이들은 모두 주주총회 전에 물러났습니다. 이와 달리 권 회장은 지난 3월 주총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아울러 지난달 31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포스코의 차세대 성장 동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CEO 얘기가 나오는데 포스코가 건전한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한민국에 기여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달라”며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이사회를 마친 뒤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 회장은 이날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사진=연합뉴스




권 회장 퇴진은 예정된 수순..문 대통령 네 차례 해외순방에도 한 번도 끼지 못해

문 정부도 과거 정권 답습하며 권 회장 내쫓아..비판의 목소리 커져

포스코 지분 없는 정부, 정권 바뀔 때마다 사정기관 수사로 회장 압박

이처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는 교체설에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던 권 회장이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은 포스코에 대한 정권의 압박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 최근 검찰은 시민단체가 포스코건설 등 전·현직 경영진 7명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권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최근 황창규 KT 회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도 권 회장의 심경변화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옵니다. 황 회장의 소환 시기와 맞물려 권 회장이 모든 일정을 취소한 점도 이 같은 추측에 힘을 실어줍니다.

사실 권 회장이 중도 하차할 것이라는 예상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꾸준히 나왔습니다. 권 회장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데다 문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도 계속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권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리튬 사업과 관련해서도 계속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권과 결이 맞지 않은 권 회장이 자리를 오래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권 회장의 공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다만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권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포스코 회장을 쫓아낸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정부도 포스코의 인사권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정부가 포스코 지분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포스코의 경우 확실한 대주주가 없다 보니 매번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과거 포스코가 지분 소유를 분산시키면서 좋은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질적인 지배주주가 없다 보니 정부가 오히려 그 점을 이용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포스코 지배구조 설계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에 눈길

장 실장, 과거 포스코에 외압 있을 때 마다 권력에 쓴 소리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 투명하게 진행되고 코드 인사 없어야

사실 문재인 정부가 포스코를 대하는 방식은 지난 정권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장하성 청와대정책 실장이 과거 포스코 지배구조를 직접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포스코에 외압을 행사하는 권력에 대해 수차례 경고장을 날려온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장 실장과 포스코의 인연은 깊습니다. 장 실장은 지난 2003년 고려대 기업지배구조개선연구소장 시절 이구택 포스코 6대 회장의 요청으로 포스코의 지배구조 개선안 작업을 이끌었습니다. 과거 정권과의 갈등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가 흔들렸던 사태가 재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포스코는 장 실장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007년 전원(7명)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최고경영자 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했습니다. 회장 선임 절차에 외부 입김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장 실장은 그간 권력이 포스코에 외압을 행사할 때마다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장 실장은 2009년(고려대 경영대학원 학장 시절) 이구택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이후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정치권 외압 논란이 불거지자 “포스코 인사 파동은 지배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며 “시장도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지만 권력이 탐욕을 부리면 더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기업은 최고경영자가 가장 중요하다. 세계적 기업인 포스코의 최고경영자가 회사 내부와 시장에서 모두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치명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2012년 6월 대선을 앞두고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집권할 경우 포스코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이 어떤 의지와 철학을 갖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그간 포스코 지배구조에 개입하는 권력에 대해 소신 발언을 했던 터라 그가 문 정부의 정책실장에 임명되면서 이번 정권에서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포스코 내부적으로도 장 실장이 있는 만큼 정부가 권 회장과 포스코를 흔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결국 이번에도 과거의 사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제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포스코가 새로운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정권과 색깔이 맞는 코드 인사를 앉힌다면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계속되는 포스코의 악순환은 영영 끊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과거 적폐 세력과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포스코 차기 회장 선임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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