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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한복디자이너 "단아함 입은 심청에 눈 뜰 준비 되셨나요"

국립창극단 '심청가' 의상 디자인 맡아

'소리에 집중' 손진책 연출 뜻 살려

"안 꾸며도 멋스런 청자·백자처럼

무대·인물에 스며드는 한복 방점"

상주지역 천연소재 생초 첫 활용

독특한 색감으로 새로움까지 더해

25일부터 명동예술극장서 공연





봄 햇살이 따사로운 21일 서울 한남동 한복 부티크 ‘차이 김영진’. 김영진 한복 디자이너의 작업실에는 만당추수의 홍련화, 암향부동 월황혼, 한매화와 국화꽃, 은행꽃 등 온갖 꽃들이 내려앉았다. 하얀 공간을 빛내던 색색의 단아한 한복과 원단은 오는 2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심청가’를 빛낼 의상들이다.

안숙선 명창을 비롯해 이자람 등 숱한 소리꾼들이 김영진이 지은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판소리 무대 의상이면 몰라도 십 수 명의 출연자가 무대에 오르는 창극 의상 디자인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성녀 예술감독 부임 후 국립창극단의 창극은 빼놓지 않고 봤어요. 내용이나 형식, 모든 면에서 새로운 지평선이 열렸달까요. 이런 작품들이라면 나도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던 차에 손진책 연출에게서 제안을 받았어요. 김 감독이 추진해온 ‘판소리 다섯 바탕 현대화’ 작업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죠.”



국립창극단은 2012년 시즌제 도입 이후, 6년여간 ‘판소리 다섯 바탕의 현대화 작업’을 이어왔다.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2011·2012),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2014), 이소영 연출의 ‘적벽가’(2015), 고선웅 연출의 ‘흥보씨’(2017) 등 판소리 다섯 바탕 중 네 바탕을 선보인 국립창극단은 올해 그 마지막 순서로 ‘심청가’에 도전하게 됐고 김 감독의 남편이자 국내 최고의 연출가 손진책이 연출을, 명창 안숙선이 작창·도창을 맡았다.

김영진은 정구호 디자이너의 소개로 연극 ‘햄릿’(2016)에서 손 연출과 연을 맺었다. “손 선생님과는 다시는 작품을 안 할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또 의상을 맡아버렸다”며 김영진은 농담 반쯤 넣은 볼멘소리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완벽주의자인 손 연출의 주문이 쏟아지면서 김영진은 처음 구상했던 디자인을 모두 버렸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 무대 리허설 직전까지 겨우 의상 제작을 마무리했을 정도다.

그는 “손 선생은 작품과 타협할 줄 모르는 진정한 연출가”라며 “개막 직전까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마는 분이라 공연 스태프 누구든 언제라도 전면 수정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렇게 탄생한 의상은 ‘우리 소리의 미학에 집중하겠다’는 손 연출의 바람대로 두드러지기보다는 무대와 인물에 스며들고, 앞서기보다는 받쳐주는 데 치중했다. 김영진의 작업실에서 엿본 무대 의상들은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화폭 속 여인들이 현신한 듯 ‘상박하후’의 멋을 살렸다. 그러나 전통 답습에만 머문다면 김영진이 아니다. 이번 무대에서 천연 소재인 생초 직물을 활용한 의상을 처음으로 선보이는데 특히 생초에서 구현될 독특한 색감을 즐기는 것이 이번 공연 속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그는 “한복은 어떤 물질을 쓰느냐에 따라 색감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번 공연을 앞두고 운 좋게 상주 지역의 천연소재인 생초를 발견했고 어렵사리 직조 기계를 복원해 원단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며 “다양한 전통소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무대를 꼼꼼하게 즐겼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무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연극배우 출신답게 김영진은 무대 등·퇴장을 최소화하며 캐릭터 변형을 시도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더했다. 도포의 끈을 묶어 선인으로 역할을 바꾸거나 쓰개치마를 머리에 둘러 선녀로 변신하는 식이다.

영화 ‘해어화’ ‘조선마술사’부터, 국립오페라단의 ‘동백꽃 아가씨’ 등 다양한 작품에서 세련되고 관능적인 한복을 선보여 온 김영진에겐 뚜렷한 철학이 있다. 의상을 입을 사람을 모르면 의상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자인 작업의 시작은 ‘알기’예요. 연습 때부터 참관하며 내 의상을 입을 배우들을 파악해야 그들에게 맞는 의상을 만들 수 있어요. 이자람을 예로 들면 순수하면서 인간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집요함과 여성스러움을 도시에 가지고 있죠. 그래서 사치스럽거나 겉보기에만 화려한 의상은 이자람에게 맞지 않아요.”

심청가 역시 디자인 구상 단계 전부터 배우들의 연습을 참관했다고 한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최고의 소리꾼들에겐 화려한 색채나 그림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는 “꾸미지 않아도 멋스러운 청자, 백자처럼 단아한 멋을 강조한 무대가 될 것”이라며 “특히 이번 작품의 눈대목을 소리꾼들이 합창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들이 한 무대에 올라 만들어내는 미장센을 눈여겨 봐달라”며 웃었다. 25일부터 5월6일 명동예술극장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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