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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진단] 김정은, 과거 핵 폐기 언급없어...'봄 왔다' 환호 말아야

[北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핵·경제병행'서 '경제 우선' 선회

개발 끝난 핵무기·ICBM은 안꺼내

北 변할것이란 기대감에 빠진채

함정 간과하는 '확증편향' 경계를

비핵화 지렛대로 단계마다 보상 요구할수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앞으로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한다”고 선언했다./연합뉴스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핵(核), 서울 불바다’를 외치며 대한민국을 위협했던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도 중단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북한 정권의 생명줄인 핵·경제 병행 정책도 수정할 모양새다. 앞으로는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한마디로 개과천선(改過遷善)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1일 전날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내용을 보도했다. 통신은 “오늘부터 핵과 ICBM 시험발사를 중단할 것”이라며 “이를 투명하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풍계리)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국가에 대한 핵 위협이나 핵 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터럭만큼도 건드리지 않겠다는 복선을 깔았다.

청와대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조만간 있을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매우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라면서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중국과 일본 역시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며 호응했다.

정말 봄이 왔을까. 결코 아니다. 이제부터 비핵화 협상을 위한 메인 이벤트가 펼쳐진다. 북한은 이미 개발 완료한 핵무기와 ICBM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앞으로 아슬아슬한 협상 줄타기를 하겠다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시로 선제공격 위협을 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도 강해지는 현실에서 일단 소나기를 피해 보자는 심리도 작용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우선 핵 동결을 선언해 미국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인 뒤 이후 신고→불능→검증→폐기 등 단계마다 보상을 얻어내겠다는 뜻을 교묘하게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이 2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휘말려 보상은 보상대로 주고 비핵화 성과는 없는 ‘잃어버린 2년’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조야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 발표는 핵보유국의 모든 측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이는 비핵화 선언이 아니며 북한이 책임 있는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겉으로는 비핵화라고 교묘하게 포장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핵보유국을 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은 △핵실험 중단 △선(先)사용 금지 △핵무기 이동 금지 등을 발표문 곳곳에 넣어 우월적 지위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이른바 CVID 원칙을 휘두르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북한의 과거 핵 제거를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상태다. 연이은 정상회담 협상 테이블이 풍성한 성찬으로 끝날지, 아니면 얼굴만 붉히는 싸움장이 될지는 과거 핵 해결 여부에 달려 있다.

양치기 소년이었던 북한의 버릇을 이번에 고치지 못하면 남한은 북한의 핵 인질이 되고 만다. 북한은 2005년 6자회담에서 비핵화 로드맵인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지만 그해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2007년 2·13합의에서는 ‘동결-불능화-폐기’ 등 3단계로 북핵을 해결하기로 했지만 중유만 공급받고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정책을 수정했다는 섣부른 진단을 내놓고 있다. 과거 핵이 제거되지 않는 한 성립되지 않는 방정식이다. 핵은 이미 완성한 만큼 이제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북한의 낯 두껍고 속이 검은 ‘후흑(厚黑)’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서둘러 경제제재 고삐를 풀거나 불나방처럼 경협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감에만 기댄 채 숨어 있는 함정을 간과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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