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두환의 집과사람] 아파트 택배 갈등이 남긴 씁쓸함

내 이익만 앞세우는 입주자

'쓸데없는 중재' 나선 국토부

표면적 갈등 원인은 단지설계지만

法 지킨 건설사에 책임추궁은 무리

택배사가 불편 떠맡는 것도 불합리





국토교통부가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최근 입주가 이뤄지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단지 주민과 택배 업체간 갈등에 섣불리 개입했다가 국민의 비난을 사면서 이틀 만에 중재안을 철회하고 발을 빼게 됐다.

사태의 발단은 해당 아파트 입주자들이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한데다 높은 차고 때문에 지하주차장 이용이 불가능해진 택배업체 기사들이 단지 입구까지만 물품을 배달하면서 생겼다. 주민과 업체간 갈등이 커지자 서둘러 중재에 나선 국토부는 단지 입구에서 각 가정까지 물품 배달을 실버택배가 맡고 이 비용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분담키로 했다는 중재 내용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낸 세금을 특정단지 주민들의 택배를 위해 쓴다는 비난 여론이 커지자 국토부는 이틀 만에 중재안을 철회하고 뒤로 물러났다.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표면적인 원인은 단지 설계다.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인데다 택배 차량이 지하주차장 진입도 물리적 불가능하니 빚어진 일이다.

그러면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가 책임을 져야 할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식과 맞지 않는 주장이다. 현행 법규상 지하주차장의 높이는 차량이동통로의 경우 2.3m이며 주차에 사용되는 부분, 즉 주차구획선은 2.1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규정에 맞게 지하주차장을 지었다면 이 높이를 넘는 차량이 지하주차장에 진입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를 건설사의 책임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면 각 가정이나 택배보관함까지 배달하지 않고 단지 입구에 물품을 쌓고 주민들에게 이를 찾아가도록 요구한 택배업체들은 잘못이 있을까. 이 문제 역시 아파트 단지의 설계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그들을 비난하기 어려워진다. 요즘 새 아파트 대부분은 이른바 ‘지상에 차가 없는 단지’들이다. 그런데 이 표현을 ‘지상으로 차량이 다닐 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화재 진압 등을 위해 아파트 단지 내에는 반드시 도로가 설치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단지내 도로에 소방차 등 긴급차량의 통행을 방해하는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는 것 역시 불법이다. 길을 막은 것은 주민인데 이에 따른 불편을 택배 기사들이 떠맡는 것은 불합리하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내 이익만 앞세울 뿐 그에 따른 불편은 감내하지 않겠다는 아파트 입주자들의 이기주의다. 물론 자녀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다만 주민들은 이를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할 불편, 또는 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 지불 조차 외면함으로써 주장의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언급되는 ‘명품 아파트’란 표현은 더 불편하게 들린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국토부의 개입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고민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혹시 특정단지 주민의 택배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에 실버택배를 활용하고 나랏돈까지 쓰는 것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사회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 역시 정부의 의무이지만, 상식을 벗어난 갈등까지 중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니다.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