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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세계에서 가장 독하고 질긴 노예제도를 둔 나라

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신분은 출생으로 정해지지만 계약은 자유로운 의사표시의 합치로 이뤄지는데, 인류의 역사는 신분사회에서 계약사회로 진화하면서 발전했다. 따라서 신분이 중요한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의 자유가 억압받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자. 신라는 골품에 얽매여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핏줄이 다르면 실력과 포부를 펼칠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실력주의가 쇠퇴하고 정치의 부패가 만연해 고구려와 백제를 차지하고도 나라를 유지 못해 스스로 국권을 고려에 넘겼다.

그 후 고려는 신라의 실패를 교훈삼아 백성들에게 자유를 줬다. 골품제를 없애고, 종교의 자유를 확대했다. 노비안검법으로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를 구제해 노비의 수를 인구의 5푼 남짓 줄였다. 그리고 노비의 인격을 인정하고 노비매매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로써 중세 시대 고려 백성들의 자유와 인권은 세계 최고였다. 이 때문에 고려의 문화는 노비출신인 이의민이 최고권력자에 오르고 로마교황과 사절을 교환할 정도로 활기찼으며, 과학기술문명은 세계최고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고려 백성들의 인권의식이 높다 보니 노예해방을 요구하는 집회(혹자는 ‘노비반란’이라고 하지만 사회질서 문란이나 주동자 처형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반란’이라는 말은 조선에서 붙여진 것이다)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다 당시의 세계제국인 몽골은 고려에 노예폐지를 지속적으로 권유했다. 거주이전과 집회결사의 자유가 당연한 유목민의 특성상 같은 민족끼리 신분으로 나눠 차별하는 제도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려왕조는 노예해방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은 기득권의 조직적 반발을 부르기에 이른다. 그들은 노비해방을 내정간섭으로 몰아 노예를 인정하는 명과 손잡고 몽골을 축출했고, 내친김에 고려왕조를 뒤엎어 버렸다. 더 나아가 백성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나누고, 사(士)에게 온갖 특권을 주는 대신 공상(工商)을 노비로 삼았다. 또 노비의 인격을 부인해 인간대우를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가 법을 이용해 점령지 백성이나 전쟁포로가 아닌 자국의 백성 다수를 노예로 삼는 일은 세계사적 유례가 드문 패륜의 극치였다.

이 때문에 조선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먼저 인구의 3할이 넘는 노비가 국가가 아닌 1할의 특권층에 봉사하다보니 인구의 절반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조선은 만성적 재정고갈로 외적의 침입을 뻔히 알면서도 대비를 못하는 극빈국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다 농(農)은 뼈빠지게 일해봤자 양반과 양반의 위세를 업은 노비의 배를 불리는 격이라 생산의욕을 잃고, 권력의 눈치를 보았다. 또 상공(商工)은 열심히 해봤자 자식들까지 천대받는 삶에 희망을 잃고, 세상을 비관했다. 그러다보니 세계적으로 찬란했던 고려의 과학문명은 물론 문학, 예술 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급속도로 후퇴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심각한 현상은 패륜에 따른 양심과 도덕의 붕괴였다. 그리고 양심과 도덕의 붕괴를 메우려고 법을 강제하다보니 이성과 인간미를 외면한 법이 날뛰고, 위선과 가식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

이를 보면 노예야말로 나라를 망치는 원흉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예를 고집하다가 1894년에 이르러 겨우 그것도 외세의 힘으로 노예를 폐지했으니 세계 문명국가 중 가장 늦도록 노예를 유지한 나라다. 그런데다 제도가 폐지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폐습에서 벗어나지 못해 ‘갑질’이니 ‘금수저 흙수저’란 말이 회자되니 참으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다행히 우리는 지금 세계가 놀랄 빠른 속도로 폐습을 벗어 던지고 있다. 지금처럼 이면 우리의 자유와 인권은 곧 중국이나 일본을 넘어 세계 으뜸 수준에 이를 것이다. 김지하 선생은 40여년 전 ‘한국으로 건너 온 아테네의 봄’을 예고했다. 그리고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100년 전 우리의 노비문화 타파와 고려문화의 부흥을 예견하고,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로 찬미했다. 또한 현대사의 흐름을 볼 때, 그 등의 심지에 불이 당겨진 사실을 알 수 있으니, 이제 곧 그 등불은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자유와 인권의 DNA를 갖고 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갖자.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자유의 적에게 자유를 넘기는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와 인권이야말로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귀중한 유산이자 최고의 공공재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문성근 법무법인 길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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